해외산&여행

중국 강서성 천주봉과 명월산-양사모 트레킹

산따라(Sanddara) 2025. 5. 21. 11:29

>>>中國 江西省 천주봉,명월산-양사모 트레킹<<<

- 의풍고목마을,천주봉,명월산-양사모,명월천풍경구,고정천가,만재고성-

0. 기간: 2025. 5.16.(금) ~ 5.20.(화/4泊 5日)  * 최사장 첫 동행/혜초 12인

0. 이동:(갈때)집-인천공항-청도공항-남창국제공항/(올때)의춘공항-상해홍교공항-김포공항-집

0. 주요일정  

   1일차(5.16.): 집-인천공항(08:30/MU2044)→청도공항(09:20/MU6595) 남창국제공항(13:40):5시간10분

   2일차(5.17.): 의풍,천주봉,만재고성,불꽃축제,온탕진

   3일차(5.18.): 의춘 명월산-양사모트레킹,온천욕

   4일차(5.19.): 명월천고정풍경구,온탕진 고정천가,명월천고정 관람

   5일차(5.20.): 의춘명월산공항 출발(10:10/8L2044) 상해홍교공항 출발(16:55/MU8601) 김포공항                              (19:35) 서울역 집(11:45)

                              * 오는날 경유때 대기시간이 넘 길어 공항에서 긴 시간을 무료하게 보낸다.

(들어가기)

2025년 한해의 해외산 나들이 행사로 뱅기에 몸을 싣는다. 원래 예정지는 티벳 라샤였었는데.....다른 산악회의 추천이 있는 곳 宜春市의 明月山-洋獅慕 트레킹에 나선다. 도시를 경유해서 긴 여로를 지나 현지에 도착하니 한 여름 날씨다. 더위에다 습기가 많아 숨이 막힐듯 답답하다. 둘쨋날 천주봉을 올라가는날은 온통 땀범벅이면서 옷은 전부 물에 빠진격이다. 할수없이 점심 먹을무렵 옷을 갈아 입을 정도로 더운열기인지라 더위에 약한 필자는 한참을 헤멘다.셋째날 명월산엔 도착하니 짙은 안개와 비가 오는 일기로 아름다운 경관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 마음이 상한다.하지만 하늘이 하는일인지라 어쩔도리가 없다. 양사모에선 비를 겨우 피하면서 안개반 구름반으로 일정을 마무리한다. 큰 기대를 하고 출발했지만 생각보다 트레킹(산타기)가 넘 적은게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주변 다른 산도 병행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중국에 가면 늘상 애를 먹는게 먹는것이 문제인데 특히 남쪽지방의 모든 음식이 짜고 매워 먹기가 힘들어 간단하게 요기를 하다보니 체력 저하현상이 나타난다. 모처럼 동거동락한 최사장도 즐거움과 기쁨을 찾았는지가 궁금하다. 또 다른 곳에서 모자란 기쁨을 찾길 기대해본다.

 

* 천주봉과 명월산-양사모 한바꾸한 흔적들

 

0. 가고 오는길(5.16./5.20.):인천공항-청도공항-남창공항/의춘공항-상해공항-김포공항-서울역

 (넘 많은 시간을 길에서 허송스럽게 보내야만 했는데 아쉽다.)

* 좌-우로: 인천역(132탑승구)-공중뱅기-청도공항-남창공항-의춘공항-상해공항-김포공항-서울역

 

0. 1일차(5.16.) 의풍 복계고목마을

   500백년 넘은 고목들이 계곡을 따라 나열하듯이 자라나고 있으며 주변 논엔 2모작 벼농사 준비가 한창이다.

0. 2일차(5.17.) 천주봉과 구룡폭포

 엄청 더운 날씨속에 천주봉을 오른다. 출발지에선 저멀리 보이는 천주봉 정상이 한폭의 그림같이 보이지만 막상 올라서니 많은 힘이 든다. 오늘따라 날씨도 흐려 비가 올락말락을 반복하지만 땀으로 인하여 옷은 물로 변했다. 겨우 겨우 정상에 도달하니 주말인지라 현지인들이 많이 보인다. 정상에서 내려보는 천주호는 넘 아름답고 시원스럽게 보인다. 하산후 구룡계곡을 거처 구룡폭포의 조형물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물 썰매를 타니 시원함의 극치를 이뤄 그 더웠던 열기를 단숨에 잊게 만든다.(정상가: 98원, 50%할인: 50원/우리돈 1만원)

* 한때 전세계적으로 큰 이목을 끈 이쁜녀이자 바람녀로 유명한 "마를린 먼로"조각상과 함께

* 같이 동행한 최사장과 한장-초입지인지라 아직까지는 얼굴이 생생하지만...나중은 기약할 수가 없음.ㅎㅎㅎ

 

* 천주봉 정상이지만 울 나라처럼 정상석은 전혀 없고 빨간 리본으로 정상표시를 대신하고 있다.

* 천주봉 아래  암굴에 있는 절과 부처상이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만든다.

* 구룡폭포 용아가리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쉼없이 떨어지고~

* 시원스런 물썰매타기-올라갈적엔 엄청 덥고 힘들었는데 내려오는 물썰매는 구절양장 길이지만 시원스럽고 신나고 손쌀같이 내려온다. 먼저 내려간 최사장이 흔적을 남겨준다.ㅎㅎㅎ

* 리조트 온천욕탕에서-춥지도 덥지도 않은 온천수에 낮에 흘린 땀을 씻어낸다.(최사장 초상권 침해는 아니지 싶은데....)

 

0. 3일차(5.18.) 명월산과 양사모

강소성 명월산엔 왜 가냐고 묻길래 "황진이"를 찾으로 간다고 애기를 했다. 이유인즉은 황진이의 詩 "청산리 벽계수야~~(중략)~~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가 떠올라서다. 중국의 중심부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장시성(江西省)은 후난성과 푸첸성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장강을 따라 문물이 모여들던 문장절의 고장이자 '만물의 정수'라 불리던 아름다운 천혜의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달의 여신 '항아(姮娥)'의 전설(* 姮娥 와 后羿 의 러브 스토리는 후예(后羿)가 사냥을 떠난 사이 姮娥 는 2마리 두꺼비의 유혹에 빠저 선단을 먹었고, 姮娥 와 1마리 두꺼비는 명월산에서 하늘로 올라가고 나머지 두꺼비가 后羿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姮娥 의 이야기를 들은 后羿는  삶의 의욕도 없이 병이 들어 두꺼비가 알려준 데로 중추절에 산 정상에 香案을 차리고 제를 올리면서 달을 향해 " 姮娥 .돌아와!"를 외치었고 그러자 달에서 姮娥 가 내려와 后羿 와 하루밤을 보낸뒤 돌아갔다는 전설이다.)이 서려 있는 명월산,작은 황산이라 불려지는 양사모 그리고 기이한 수직 벼랑 잔도를 따라 소나무 군락과 운해가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명월산-양사모 트레킹과 천주봉 국가삼림공원이 존재하고 있다.의춘시에 위치한 명월산은 1,000m가 넘는 산봉우리가 12개로 최고봉인 태평산(1,736m)의 봉우리가 반달처럼 보인다하여 "명월산"이 되었다고한다.특히 수직,기암절벽, 폭포, 운해, 고산 초원 등 다양한 경관이 어우러지는 산으로 유명하고 천주봉 국가삼림공원은 하늘을 떠 받치는 듯한하게 자리잡아 유람선을 타고 풍광을 유람할 수가 있어 더 자세하게 볼 수가 있다. 이춘 온탕진은 온천수는 지하 470m의 바위틈에서 사계절 끊임없이 68~72도를 유지하고 있어 중국 최초 셀레늄 온천으로 유명하다.셀레늄은 노화지연과 항산화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지며 면역건강,피부재생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펀글)

 

(명월산)

 강서성 서부에 자리한 의춘시는 인구 550만 명의 도시로 명월산과 온천이 유명한 곳이다. 의춘시에서 서남쪽 15km 지점에 솟은 명월산은 국가 5A급 여유경구로 선정될 만큼 중국에서는 그 풍광이 널리 알려진 산이다.명월산은 최고봉 태평산(太平山, 1,736m)을 중심으로 해발 1,000m가 넘는 12개 봉우리가 반달과 같은 반원형을 이룬다. 명월(明月)이란 산 이름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래서인지 산 이름인 달(月)을 주제로 한 관광문화가 발달돼 있다. 명월산의 여러 지명과 기암괴석들 이름 대부분에도 달(月)과 관련이 있다.명월산 입구에 들어서니 반달 위에서 춤추는 여성의 조형물이 눈길을 잡아챈다. 앞서 말했던 남송 두 번째 황제의 황후의 모습이다. 이와 더불어 명월산에는 달과 관련된 여러 전설이 전한다. 중국 사람들에게는 달 속에 계수나무와 토끼가 산다는 설화보다 달의 여신 항아(姮娥)와 두꺼비 이야기가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 항아의 전설이 유래한 곳이 바로 이곳 명월산이다. 또한 날씨가 맑은 날에 산에 올라가면 달이 가깝게 보여서 명월산이라 불린다고도 한다.(펀글) 출발할때 입구에선 날씨가 괜찮았는데 정상에 올라서니 짙은 안개로 시계가 10m정도인지라 구경은 택도 없는 소리가 되었지만 그래도 한달음에 걸을수가 있음에 감사함을 전하면서 즐겁게 걷는다.

* 가는곳곳마다 환영한다는 글귀가 한글로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혜초와 의춘시가 많은 신경을 쓴것 같은 느낌이 확든다. 외국에서 한글 글귀만봐도 가슴이 찡하게 느끼는것은 우리글의 소중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산,호텔 등에서 수시로 등장한다.

* 물이 추적추적 떨어지는 어두운 동굴속을 손쌀같이 지나간다.

* 청운잔도(靑云棧道)-허공에 떠 있는 듯한 모양새로 구름을 밟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관경대(觀景台)라 불리는 전망대에 도착하니 .한참을 걸어가니 잔도가 널찍해지면서 잔도 한가운데에 2미터쯤 되는 바위가 불쑥 튀어나와 있다. 한 소녀가 상처를 치유했다는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전설 속의 돌, 전운석(이다. 몇몇 중국인들이 돌을 어루만지며 두어 바퀴를 돌다 간다. 곧이어 해돈맹월(海豚望月)이라는 기암괴석도 보인다. 달을 응시하는 돌고래의 형상이다.산서리를 돌자 지릉이 뻗어 나온 곳에 멋들어진 전망대가 놓여있다. 항아분월지(嫦娥奔月地)다. 해석하자면 항아가 달로 올라갔다는 곳일까. 성월동에서 중간지점인 항아분월지까지 잔도가 1,600m, 이곳부터 월량호까지는 1,300m에 이른다. 길은 이곳부터 벼랑을 벗어나 산으로 들어선다. 수려한 소나무가 절벽 위에 선 황산송림(黃山松林)을 끝으로 더 이상 눈길을 잡아채는 광경은 없고 지속 안개랑 연속적인 싸움이 지속되어 아쉬움만 남긴다.

* 최사장이 구도를 넘 잘 잡아줘서 댐제방을 손바닥으로 하늘로 들어올린다. 으----라차차차--------------------차!!!!

 

(양사모)

산정에서 관광차가 다니는 것만 해도 신기할 따름인데, 미니 기차까지 다닌다고 하니 놀랄 따름이다.열차는 산의 터널을 관통해 또 다른 산으로 순간 이동을 한다. 구름이 사방을 뒤덮어 마치 구름 속을 달리는 듯하다. 한참을 달려 내린 곳은 무공산에 속하는 양사모역이다. 양사모(羊獅慕)는 강서성 지안시에 자리한 4A급 풍경구다. 이곳 역시 국가급 풍경구로서 자연유산지이며 지질공원이다. 이 지역은 총 면적이 37.5km2이며 최고봉이 석필봉(, 1,766m)이다. 양사모라 불리는 까닭은 구름과 안개가 마법을 부린 듯 현란하게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이 마치 양 같기도 하고 사자 모양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양사모대주점참(羊獅慕大酒店站)의 상운각 승차역에서 관광차를 타고 백복광장(百福廣場)으로 이동, 능운잔도(凌云棧道)를 향해 산길로 올라선다. 이곳 역시 협곡을 사이에 끼고 양쪽으로 잔도가 나 있다. 먼저 우측에 침봉을 이룬 일월봉(一月峰)을 구경하고, 능운대(凌云台)에서 협곡 건너편을 조망한 후 길을 되돌아 나와 건너편 잔도로 붙는다. 멀찌감치 보이는 잔도가 허리를 타고 가는 깎아지른 침봉의 모습이 수려하기 짝이 없다. 주옥같이 아름답고 수려한 거대한 돌기둥이 줄지어 솟아있다. 양사모의 능선잔교를 타니 명월산의 청운잔도는 머릿속에서 금세 지워지고 만다.(펀글)  이런 깊은 산속에 기차역이 자리하고 있어 이채로운 느낌이 든다. 넘 아쉽게도 비와 안개로 인해 더 많은 비경을 감상할 수가 없음이 심히 안타깝게~~~

* CTX기차안에서는 날씨가 시원하니 새로운 기운이 확 올라온다.ㅎㅎㅎㅎ

* 산 기차에 내려 본격적인 잔도 출발하기위한 입구에서 한장을 남긴다.

* 필자뒤로 올라서면 정상인데 비도 오고 날씨도 흐려서 올라가는걸 아쉽지만 미련없이 포기하고 지나친다.

 

□ 만재고성과 대완차(5.17.夜)

고성은 도시마다 비슷하지만 대완차는 큰 그릇에 여러가지 약재를 넣어 물로 우려내는 그런 약차의 한 종류인듯 먹어보니 시원하지만 주변 날씨가 넘 더워서 흥미가 반감된다.

* 만재고성에서 매주 토 야간 폭죽축제와 음악 공연이 화려하게 열린다.

 

0. 4일차(5.19.) 온탕진 고정천가 및 명월 천고정 관람 (감독:황교영)

명월 천고정( 송성가무쇼)는 원래 산신제 의식에서 비롯되어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이 소나무 아래 모여 기우제를 지내며 춤을 추었는데 이 전통이 2008년 문화재로 지정되며 관광공연으로 재탄생했다. 가무쇼는 눈으로 보는 공연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명월산의 역사로 솔바람에 실린 선조(한유)들의 기원이 당신의 발걸음에 스며들때 진정 복장명월산 여행의 의미를 깨닫게 하며, 막이 오르면서 가방을 멘 22세기 현대인 여학생이 무대에 오르면서 영상에 나타나는 당나라 학자인 8세기"韓愈(주1)"를 불러서 (你是谁啊? 我是愈~) 만나면서 천고정 연기가 시작된다. 들어가보니 첫장은 "명월왕후"에선 명월산의 전설적인 여왕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랑과 희생의 감동적인 서사를 펼치며, 둘째장에선 "청자,불타오르다"는 장시성의 전통 청자문화를 현대적인 무대기술과 시각적인 환상을 보여주며, 셋째장은"십송홍군"에서는 중국 혁명시기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춤과 음악으로 표출하여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넷째장에선"유정인 종성권속"은 고전적인 사랑 이야기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모든 연령층에 커다란 감동을 주는 가무쇼로 재작된것같다. 수시로 바뀌는 무대배치와 많은 배우들의 열띤 공연이 눈을 사로잡는다.무용수들의 옷의 비밀은 소나무껍질에서 추출한 천연 염료로 물든 옷을 입고 옷자락에 수놓은 달과 구름은 명월산의 상징성을 담았다고 한다.중국에서 여러편의 가무쇼를 즐겼지만 또 다른 색동감을 느낄수가 있다.

* 황진이를 찾아서-고가에서 전통복을 입고 안내와 홍보를 겸하고 있는 배우들이 있어 15세기 황진이(조선 중종때)를 찾아나서던 중  22세기 현대인 황진이를 여기서 조우한다.한국에 가자니 시간이 안된다고 한다.ㅎㅎㅎ

* "명월천고정" 공연중의 여러 장면

 

* "강서성 산해진미"-보기엔 넘 먹음직스러웠는데 넘 짜고 넘 메워서 눈으로만 요기하고 코로만 냄새 맡은 현지 음식차림상

(주1)

한유(韓愈, 대력 3년(768년)~장경 4년(824년))는 중국 (唐)을 대표하는 문장가 · 정치가 · 사상가이다. 당송 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자(字)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이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등주(鄧州) 하내군(河內郡) 남양(南陽, 지금의 하남 성 맹주 시) 출신이나 그 자신은 창려(昌黎, 河北省) 출신으로 자처했다.한유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어머니를 잃었다. 3세에 아버지를 14세에 형 한회(韓會)를 잃고 형수 정씨에 의해 길러졌다. 7세 때부터 독서를 시작한 한유는 13세에 문장에 재능을 보였다. 정원(貞元) 2년(786년)부터 장안에서 과거에 응시했으나, 이렇다 할 문벌도 뒷배경도 없었던 그는 세 번이나 낙방하고서 8년(792년)에 진사과에 합격하였다. 다시 이부시(吏部試)에 응시하였을 때에도 다시 세 번이나 낙방한 그는 정원 11년(795년) 세 번이나 재상에게 글을 올리고서야 가까스로 천거된다.정원 12년(796년) 변주(汴州) 선무군(宣武軍)에서 난이 일어나자 절도사 동진(董晉)을 따라 부임하여 관찰추관(觀察推官)을 맡아 지내는 동안에 시인 맹교(孟郊)와 서로 교유하였고, 이고(李翱), 장적(張籍)이 그 문하에 들었다. 동진이 죽은 뒤에는 무령절도사(武寧節度使) 장건봉(張建封) 휘하로 옮겨 절도추관(節度推官)이 되었다가, 장건봉이 죽은 뒤 낙읍(洛邑)으로 옮겨 살았다.정원 17년(801년)에 국자감(國子監)의 사문박사(四門博士)가 되고, 이듬해 《사설(師說)》을 지었다. 19년(803년)에는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되었는데, 이때 관중(關中)에서 대화재가 일어난다. 한유는 《어사대상론천한인기장(御史臺上論天旱人饑狀)》을 지어 당시의 경조윤(京兆尹) 이실(李實)의 폭정을 규탄하지만, 거꾸로 자신이 연주(連州) 양산현(陽山縣) 현령으로 좌천되고, 1년이 지나자 조카 노성(老成)을 잃었다. 이때 그가 지은 글이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이다. 원화 6년(811년)에 국자박사(國子博士)가 되어 「진학해(進學解)」를 지었다. 당시의 재상 배도(裴度)는 이에 대한 치하로서 그를 예부낭중(禮部郎中)으로 삼았으며, 원화 10년(815년)에는 배도를 따라 회서절도사(淮西節度使) 오원제(吳元濟) 토벌에 공을 세워 형부시랑(刑部侍郞)이 되었으며, 이때 『평회서비(平淮西碑)』의 글을 짓는다.원화 14년(819년) 정월, 독실한 불교 신자이기도 했던 헌종 황제는 당시 30년에 한 번 열리며 공양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여 신앙을 모으고 있던 봉상(鳳翔,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법문사(法門寺)의 불사리가 헌종(憲宗)를 장안의 궁중으로 들여 공양하고자 하였다. 반불주의자인 그는 이듬해 「불골을 논하는 표(諫迎佛骨表)」를 헌종에게 올려 과거 양 무제(梁武帝)의 고사를 언급하며 "부처는 믿을 것이 못된다(佛不足信)"고 간언했고, 헌종은 대노하여 그를 사형에 처하려 했지만 재상 배도와 최군(崔羣)의 간언으로 사형을 면한 채 조주자사(潮州刺史, 조주는 지금의 광동 성)로 좌천당했다.이듬해 헌종이 죽고 목종(穆宗)이 즉위하자 다시 중앙으로 소환되어 국자제주(國子祭酒=대학 학장)에 임명되었다. 그 뒤 병부시랑(兵部侍郞), 이부시랑(吏部侍郞), 경조윤 겸 어사대부(御史大夫)의 직을 역임하였는데, 이부시랑으로 있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를 「한이부(韓吏部)」로 불렀다고 한다. 57세에 병으로 죽었다.사후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추증되었다. 송의 원풍(元豐) 연간에 창려백(昌黎伯)으로 추증되었다.(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