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고석정, 월정리역, 직탕폭포) 나들이(1)
>>>철원 나들이(1)<<<
-고석정, 제2땅굴,평화전망대,월정리역,백마고지역,도피안사,직탕폭포-
0. 일시: 2018. 5. 6.~ 5. 7. (1박2일)
0. 코스: 고석정-제2땅굴-철원평화전망대-월정리역-노동당사-백마고지역-전적비-도피안사-직탕폭포
강원도 중부전선 철원은 집에서는 넘 먼거리다. 네비로 384km가 나온다. 오늘은 첫번째 휴가 나온 아들의 귀대일이다. 며칠전부터 같이 동행하기로 마음먹고 간단하게 준비를 하고 출발한다. 가는 도중은 비가 엄청 내려서 차가 진행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춘천을 들어서니 날씨가 넘 화창하다. 저녁 먹을 식사시간이 남아서 소양강댐에 잠시 올랐는데 주차공간이 없어서 사진 한장 찍는데도 차를 치우라고 난리다. 곧장 돌아서 내려와 춘천닭갈비와 춘천막국수로 이른 저녁을 먹고 아들 부대가 있는 화천 00지역으로 출발
현지에 도착하니 육군 모부대 사병들이 외출갔다 돌아오는지 부대입구가 인산인해이다. 한낮 시골의 조금한 마을엔 화천 *번 버스는 완전히 군인들로 가득하다. 아들은 그 와중에 간단하게 먹을것을 구입하여 부대관사로 들어가고 2달후 부초행사때 만날날을 기약하면서 작별인사를 한다. 우리는 차량을 몰고 철원 방향으로 기수를 돌려본다. 가는중에 "수피령"도 지난다. 수피령은 6월 한북정맥때 이곳에서 남쪽으로 출발하는 지점인데 먼저 와보니 감개무량하다.기념촬영도 해본다. 주변이 아들근무하는 곳인데 높은 산에 가려져 있어 아들의 근무지는 보이질 않는다. 산위에 올라가면 관제대가 있어서 잘 보일텐테~~또 조금 지나다보니 38도 선이란 글귀도 보인다. 차는 달리고 달려 3사.6사단을 지나 저녁 늦게 철원 고석정 주변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내일을 위하여 휴식에 들어간다. 비가 온 관계로 이동시간이 8시간 정도 걸린것 같다.(물론 저녁먹는 시간,휴게실 휴식시간 포함) 새벽에 동이 트면서 간단하게 아침을 요기하고 주변 고석정을 찾아 나선다. 여러곳을 둘러 보지만 고석정(TV에서 나오는곳)을 찾을려다 제대로 찾지 못하고 주변만 빙글빙글 돌다 말고 제2땅굴로 가는 투어차에 올라 제2땅굴, 철원평화전망대,월정리 역사를 돌아본다. 제2땅굴을 들어가면서 보니 전체가 철책이고 차량 다니는 길만 겨우 만들어 놓은것 같다. 지나면서보니 백마고지 전투 지역도 보인다. 투어 관람후 고석정을 찾아 제대로된 장면을 구경하고, 백마고지 역 및 백마고지 전적비,철원 노동당사,도피안사 마지막으로 직탕폭포의 장엄한 물줄기 장면을 보고 귀가길에 오른다. 오후 4시에 출발 네비를 돌리니 차가 포천으로 안내를 한다. 이게 아니다 싶어서 다시 춘천을 맞추고 춘천을 지나서 집에 도착하니 8시 반을 넘어서고 있다. 휴~~먼길을 돌고 돌아왔다. 그렇지만 뜻깊은 철원 나들이 길이었다. 참...白馬高地는 9사단의 이정표 같은 곳이다. 필자도 9사단을 출신 벌써 군대 문을 나온지가 35년이 지난다. 군생활 땐 와보지 못한곳인데 35년 세월 후에 부대표시 마크를 보니 과거를 회상함에 가슴이 메어져 온다. 9사단歌의 첫 구절이"""♬철원뜰 백마고지 싸움터로 삼고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 제2땅굴- 우리나라 4개의 땅굴을 이제서야 전부다 관람한것 같다.(제2땅굴 안내도) 땅굴.hwp
#1 소양강 다목적댐- 해저문 소양강에~차를 빨리 치우라는 말때문에 사진 한 장 찍기가
무척 급하다.얼른 한 장만 찍고 저녁 먹으로 출발한다. 메뉴는 유명한 춘천 닭갈비
#2 수피령(780m)-6월이 되면 이곳에서 파주까지 내달린다. 이름하여 한북정맥 종줏길 여기가 출발점이다. 원래 출발점은 북한땅 추가령인데 북한땅과 비무장지대엔 들어갈 수가 없다. 필자가 도착하자 주변이 어둠이 깔리고 있고 아들은 여기서 북쪽으로 4km지점 정상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첫 나들이 길이라 기념 촬영후 철원으로 출발한다.,,,,아들은 이곳 산 정상에서 관제근무를 한다고 한다.
2018.5.7.(철원 관광)
#1 고석정(孤石亭)은 철원읍 동송읍 장흥리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 진평왕 때 한탄강 중류에 세워진 정자로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의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다. 고석정은 한탄강 변에 있는 정자이다. 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과 고려 충숙왕(재위 1294∼1339)이 여기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 외에도 고려 승려 무외(無畏)의 고석정기와 김량경의 시 등이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적 임꺽정이 고석정 앞에 솟아 있는 고석바위의 큰 구멍 안에 숨어 지냈다고 하는데, 이 바위에는 성지, 도력이 새겨져 있고 구멍 안의 벽면에는 유명대, 본읍금만이라고 새겨 있다. 현재 2층 정자는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져 1971년에 콘크리트로 새로 지은 것이다. 순담은 고석정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는 계곡을 일컬으며, 조선 영조(재위1724∼1776) 때 영의정을 지낸 유척기(1691∼1767)가 요양하던 곳이다. 이름의 유래는 순조(재위 1800∼1834) 때 우의정을 지낸 김관주(1743∼1806)가 20평 정도의 연못을 파고 물풀인 순채를 옮겨다 심고서 ‘순담’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곳은 기묘한 바위와 깎아 내린 듯한 벼랑 등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계곡에서는 보기 드문 하얀 모래밭이 천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다.(펀글)
#2 고석정 주변 경관들-한탄강 물이 쉼없이 내려가고 있다.
#3 한탄강 孤石亭-이 바위가 홀로 서 있어서 고석정이라고 한다고 함.
#4 과거 1박 2일에도 나온 고석정 모래밭과 관광배가 다니는 나루
#5 철원 승일교(鐵原 昇日橋)-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東松邑) 장흥리(長興里)와 갈말읍(葛末邑) 내대리(內垈里)를 잇는 한탄강의 다리로 지방도 제463호선에 속해 있다. 고석정인근에 있으며,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다.[1] 교량의 노후화로 현재 차량은 1999년 개통된 한탄대교를 이용해야 한다. 일제 패망 직후, 철원군 일원이 소련군정을 거쳐 북한의 실효 지배 영역에 속하던 1948년 한탄교(漢灘橋)라는 이름으로 착공되었다.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장이었던 김명여의 설계로 러시아식 공법의 아치교로 설계된 이 다리는 동송읍 쪽의 아치교각만 완성된 상태에서 한국 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952년 주한 미군 79공병대와 대한민국 국군 62공병대가 갈말읍 쪽 교각과 보를 완성, 1958년 개통하고 승일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철원군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김일성이 시작하고 이승만이 끝냈다고 하여 이승만의 '승(承)'자와 김일성의 '일(日)'자를 한자씩 따서 승일교(承日橋)라 했다는 설과 '김일성을 이기자'고 해서 승일교(勝日橋)라고 했다는 설이 전해지나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한국 전쟁 중 큰 공을 세우고 인민군에게 포로로 끌려간 박승일(朴昇日, 1920년 ~ ? ) 연대장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승일교(昇日橋)라고 지어졌다는 것이며, 1985년 세워진 승일교 입구의 기념비에도 이를 정설로 소개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로 같은 시기에 포로로 끌려간 고근홍 연대장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의 근홍교가 있다.
#6 승일교 옆 한탄대교-
#7 철원 평화 전망대- 전망대 아래가 DMZ로 접근이 금지된곳이고 아래 철책주변엔 군인들이 경계근무에 여념이 없고 농민들이 모내기 일로 기계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어 보인다.
#8 북볔땅을 배경으로-흰모양의 산이 북녘 산하 평강고원이라고 한다.
#9 전망대 모노레일 승차장 입구-대인2,000원으로 오르는데 5분정도 걸리는 듯하다.
올라서 보면 DMZ와 북한군 초소가 선명하게 보인다.
#10 월정리 역사- 월정리역은 비무장지대(非武裝地帶) 남쪽 한계선에 가장 가까이 있는 마지막 기차역이다. 월정리역에 가면 ‘철마(鐵馬)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 옆에 멈춰선 열차를 볼 수 있다. 6.25전쟁(六二五戰爭 , Korean Conflict) 당시 북한군이 철수(撤收)하면서 열차 앞부분만을 가져가 지금은 객차로 쓰이는 뒷부분만 일부 남아 있다. 6.25전쟁(六二五戰爭 , Korean Conflict)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이루어졌던 철의 삼각지에 위치한 월정리역의 멈춰진 기차는 한국의 분단역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상징물이다. 경원선(서울-원산)의 기찻길로 지금은 역사와 다 훼손되고 부러진 열차만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으나 지나간 역사속으로 깊이 빠저들어가보고, 4.27정상회담으로 철로가 연결되면 금강산으로 가볼날이 있지 싶다. 여기서 금강산까지가 100여km라고한다.
#11 월정리 기찻길 이정표
#12 철마는 달리고 싶다--간절한 소망인데 철길은 여기서 더 진행할 수가 없다. 안타까움이~
원산까지가 123km라고 적혀 있고 서울까지는 104km로 경원선의 가운데쯤되는가 보다.
#13 뒷쪽으로 진행하면 금강산으로 가는 길이지만 커다란 장벽으로 더 진행이 안된다.
높은 둑이 남방한계선이라고한다.
#14 철원 노동당 당사-강원도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노동당사(勞動黨舍)는 1946년에 완공된 3층 건물이다. 6.25전쟁(六二五戰爭 , Korean War)이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의 노동당사로 이용되었다. 현재 이 건물은 6.25전쟁 때 큰 피해를 입어 건물 전체가 검게 그을리고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게 나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6.25전쟁과 한국의 분단현실을 떠올리게 해서 유명가수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나 유명 음악회의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현재 철원 노동당사는 철원군(鐵原郡)이 안보관광코스로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2001년 2월 근대문화유산에 등록되면서 정부 차원의 보호를 받고 있다.
#15 제2땅굴-제2땅굴은 북한군이 남한을 침략하기 위해 파놓은 땅굴로 1975년 3월 24일 발견되었다. 제2땅굴은 지하 50~160m 지점에 있고 총 길이 3.5Km, 남쪽으로 1.1Km, 북쪽으로 2.4Km. 그 중 견학할 수 있는 거리는 500m이다.
땅굴 내부에는 대규모 병력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 있고, 출구는 세 개로 갈라져 있다. 제2땅굴이 발견 될 당시 수색하던 한국군 7명이 북한군에 의해 희생되었다. 이 땅굴을 이용하면 1시간에 약 3만 명의 무장병력이 이동할 수 있으며 탱크까지 통과할 수 있다. 현재 제2땅굴은 철원군(鐵原郡)이 안보관광코스로 운영하고 있으며,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16 백마고지 역사- 지금은 경원선이 여기까지만 다니고 있다.
#17 백마고지역
#18 철도 종단점-"철마는 달리고 싶다" 하루빨리 철도가 연결되어서 기차나 차를 몰고 북한을 거쳐 러시아 중국 그리고 유럽으로 가는 날이 오겠지? 기대를 ---기대를~~~~
#19 백마고지 전투(승전비)-백마고지 전투는 6.25당시 보병 제9사단이 철원평야 북단의 요충지인 395고지(백마고지)에서 중공군과 벌인 전투로 휴전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져들고 1952년 10월 초 판문점에서 포로회담이 해결되지 않자, 중공군의 공세로 시작된 1952년도의 대표적인 고지쟁탈전이었다. 백마고지(395고지)전투는 회담이 난항을 겪고 있던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철원 북방 백마고지를 확보하고 있던 한국군 제9사단이 중공군 제38군의 공격을 받고 거의 열흘 동안 혈전을 수행하였고 결국 적을 물리치고 방어에 성공한 전투이다.백마고지에 대한 중공군의 공격은 1952년 10월 6일 시작됐다. 이날 아침부터 사단의 전 지역에 집중적인 공격준비 사격을 퍼부은 중공군은 북쪽 5㎞ 전방에 있는 봉래호의 수문을 폭파해 아군의 후방을 관통하는 역곡천을 범람시켰다. 이에 따라 아군의 증원과 군수지원이 차단된 것으로 판단한 중공군은 집요한 공격을 감행했다. 중공군은 고지 주봉에서 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능선으로 1개 대대를 투입하고, 1개 대대를 주봉으로 각각 투입하였다. 그러나 국군 제9사단은 이날 밤 적과 3차에 걸쳐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적에게 많은 피해를 주면서 격퇴하였다. 그러나 며칠 동안 5차에 걸친 밀고 밀리는 치열한 공방전에서 제28, 제30 양 연대는 거의 재편성이 불가피할 정도로 많은 병력 손실을 보았다. 10월 11일 밤 고지는 다시 중공군의 수중으로 넘어갔으나, 12일 아침 반격 제30연대가 제29연대를 초월 공격함으로써 이를 재탈환하였으며 다시 적의 반격을 받아 피탈되었다. 이에 제28연대가 다시 밀고 밀리는 육탄전을 10월 15일까지 계속한 끝에 마침내 탈환에 성공하였다. 이어 제29연대가 기세를 몰아 395고지 북쪽 낙타능선상의 전초진지를 탈환하게 됨으로써 적을 완전히 격퇴하였다. 결과적으로 국군 제9사단은 10월 6일부터 중공 제38군의 공격을 받아 연 10일 간 12차례의 쟁탈전을 반복하여 7회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을 수행한 끝에 백마고지를 확보하였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제38군은 총 9개 연대 중 7개 연대를 투입하였는데, 그중 1만여 명이 전사와 부상 또는 포로가 된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국군 제9사단도 총 3,5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 전투로 국군 제9사단은 ‘상승백마’라는 칭호를 얻었다. 백마고지전투는 1952년 10월 철원평야의 요충지인 395고지에서 벌인 전투로서 지역전투로서는 세계전사 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치열하였다. 이 전투에서 백마부대는 중공군 1만 3,000여 명을 격멸하는 전과를 거둠으로써 한국군의 전투능력과 지휘관들의 부대지휘능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국군 제9사단은 1966년 5월 맹호부대에 이어 파월부대로 선정되었으며 그해 8월 월남으로 이동, 닌호아·투이호아·캄란지역에서 부여된 작전임무를 수행하였다.
# 20 백마고지 전승비-9사단의 표상인 백마부대 마크, 오늘 다시보니 감회가 새롭다.
필자도 9사단 29연대 출신~~~
#21 백마고지 전적지 안내판에서
#22 위령비 올라가는 입구에서-태극기가 나란히 도열해 있다.
#23 백마고지 위령비-잠시 묵념
#24 뒷편으로 보이는 산이 백마고지(395m)- 손에 잡힐듯한 거리에 있는 6.25의 격전지인 백마고지 전투 현장이지만 지금은 보병제5사단이 관리하고 있다.
#25 도피안사 일주문-통일신라 경문왕 5년(865년) 도선국사가 높이 91cm의 철조비로사나불좌상을 제조 철원읍 율리리에 소재한 안양사에 봉안하기 위하여 여러 승려들과 같이 가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 이 불상이 갑자기 없어져 그 부근 일대를 찾다가 현위치에 그 불상이 안좌한 자세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이 불상을 모셨다 한다. 당시 철조불상이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에 이르러렀다 하여 절 이름이 도피안사로 명명되었으며 절내에는 도선국사가 제조한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사나불좌상과 보물 제 223호로 지정된 높이 4.1m의 화강암 재료로 된 3층 석탑이 보존되어 있다.
#26 도피안사 입구에 피어있는 할미꽃
#27 직탕폭포- 직탕폭포는 한탄강 하류에 형성된 폭포로 철원8경의 하나로 꼽히며, 직탕폭포(直灘瀑布)는 한국의 나이애가라 폭포라고도 불린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특이한 형태의 '一'자형 폭포로 높이 3.5m, 길이 80m의 거대한 암반을 넘어 강 전체가 폭포를 이루며 쏟아져내린다.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해 원시 그대로의 비경이 시원한 폭포소리와 함께 이국적인 아름다움과 신비경을 연출한다. 여름뿐만 아니라 겨울철 얼음 속으로 폭포가 떨어지는 모습도 장관을 이룬다. 직탕폭포에서 떨어져내린 물은 동쪽으로는 승일교 아래에서 남쪽으로 꺾어지면서 고석정을 휘감아 흐르고, 남쪽으로는 1.5㎞ 떨어진 순담계곡에 이르며 일대 절경을 이룬다.폭포에서 남동쪽으로 2㎞쯤 떨어진 곳에는 경관이 특히 좋은 고석정이 있다. 고석정은 신라 진평왕이 정자를 세워놓고 쉬던 곳으로, 조선시대 임꺽정의 본거지로 유명하며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있다. 이 일대의 지역은 추가령구조곡을 따라 신생대 제4기 홍적세 때 용암이 분출해 만든 200~500m 높이의 평평한 철원용암대지를 한탄강이 침식하며 흐른다.임진강의 지류인 한탄강은 침식력, 특히 하방침식이 활발하여 무려 40m 깊이에 이르게 깎아내린 수직단애를 비롯해 주상절리(柱狀節理)의 절벽 등 용암대지의 유년기지형을 보이는 특이한 경관지대로 천혜의 관광지를 이룬다. 또한 휴전선의 인접지역으로 전쟁의 수난지였던 만큼 전적비와 전공비가 산재해 있다.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계곡에는 디스토마균이 없다고 하는 민물고기가 30여 종 서식하고 있어, 낚시와 즉석 생선요리를 즐길 수 있다. 철원-의정부를 잇는 국도에서 갈라진 지방도로 연결된다.
[직탕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