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랑문(한유)-설명

2017. 10. 15. 11:35한시와 명언 보기

祭十二郞文-韓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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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愈가 조카 十二郞(名 老成)을 당하고 지어 보낸 祭文으로, 그의 抒情散文 名作이다. 祭文本來 韻文騈語形式을 빌어 썼으나, 이 글은 散文體로 썼다는 데 特色이 있다. 十二郞과는 叔姪間이지만, 어려서부터 서로 의지하면서 자란 처지이기에, 十二郞의 죽음은 韓愈에게 形言할 수 없는 悲痛을 안겨 주었다. 字字句句純樸하고 懇曲하여 讀者한테 肺腑를 찌르는 哀感을 느끼게 한다. 옛 사람들은 이 글을 指稱하여 祭文中千古絶調라고 極讚한 바 있다. 祭文은 본시 祭奠을 올릴 때 읽는 文章으로, 一般的으로 鬼神祭告하는 것과 死者哀悼하는 것의 兩種이 있다.

 

[本 文]

年月日, 季父愈, 聞汝喪之七日, 乃能銜哀致誠, 使建中遠具時羞之奠, 告汝十二郞之靈.(년월일, 계부유, 문여상지칠일, 내능함애치성, 사건중원구시수지전, 고여십이랑지령.)

모년,모월,모일에 막내 숙부 韓愈가 너가(십이랑)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7일 만에 이에 슬픔을 머금고 정성을 다하여, 建中()으로 하여금 멀리 제철에 맞는 제사 음식을 구비하여, 十二郞의 영전에 고한다.

 [硏究]

年月日 : 祭文에 따라서는 년월일을 밝혀 쓰는 경우도 있고,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季父 : 막내 숙부. 위에 3형이 있었고, 한유는 막내였으므로 季父라 자칭하였음.

銜哀致誠 : 슬픔을 머금고 정성을 다하다.

建中 : 十二郞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파견한 하인의 이름.

時羞 : 그 시절에 나는 식품. : 祭需.

十二郞 : 韓老成. 같은 형제 항렬 중, 12번째였으므로 그렇게 불리었다. 한유의 次兄 韓介의 아들로 長兄 韓會繼子. 唐人들은 남자를 ’, 여자를 이라 일컬었음.

 

嗚呼! 吾少孤, 及長不省所怙, 惟兄嫂是依.(오호! 오소고, 급장불성소호, 유형수시의.)

! 나는 어릴 때 고아가 되어 나이가 들 때까지 부친을 기억하지 못하고, 오직 형님과 형수님만을 의지하였다.

及長 : 나이가 들다. 不省 : 알지 못하다. 기억하지 못하다.

所怙 : 부친. 자식이 가장 의지 할 바는 부친이므로 이른 말.

惟兄嫂是依 : 형과 형수한테 의지하다. 한유는 형 韓會와 형수 鄭氏(즉 십이랑의 부모) 밑에서 자랐으므로 이른 말.

 

中年, 兄歿南方, 吾與汝俱幼, 從嫂歸葬河陽.(중년,형몰남방,오여여구유,종수귀장하양.)

중년에 맏형(韓會)이 남쪽지방(韶州)에서 돌아가시자, 나와 너(십이랑)는 모두 어려서 형수를 따라서 河陽땅으로가서 장례를 치렀다.

  [硏究]

兄歿南方 : 韓會大曆 125, 韶州刺史가 되었고, 수년 후 임지에서 42세로 죽었으며, 당시 한유는 15세였음. ‘歿은 죽다. ‘南方韶州(지금의 廣東省 曲江縣)를 가리킴.

歸葬 : 돌아가서 매장하다. 河陽 : 지금의 河南省 孟縣으로 韓氏 집안의 선영이 있는 곳.

 

旣又與汝就食江南, 零丁孤苦, 未嘗一日相離也.( 기우여여취식강남, 영정고고, 미상일일상리야)

얼마 안가서 또 너와 더불어 江南(宜州)에서 생계를 꾸려갔는데, 의지할 곳 없이 외로워서, 일찍이 하루도 서로 떨어져 본 적(떠난 적)이 없었다.

: 얼마있다가, 얼마 안가서 就食江南 : 강남으로 가서 생활을 하다. 唐 建中 2(781)에는 북방이 多難하여 한유와 십이랑은 宣州(지금의 安徽省 宣城縣)에서 피난생활을 하였음.

零丁 :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모양. 未嘗 : 일찍이 ~~한 적이 없다.

 

吾上有三兄, 皆不幸早世.(오상유삼형, 개불행조세.)

내 위에 세 형님이 계셨으나 모두 불행히도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硏究]

三兄 : 長兄韓會, 次兄韓介, 세째형은 未詳. 早世 : 일찍 죽다.

 

承先人後者, 在孫惟汝, 在子惟吾; 兩世一身, 形單影隻.(승선인후자, 재손유여, 재자유오. 양세일신, 형단영척.)

선친의 대를 이어줄 사람으로는 孫子중에는 오직 너뿐이고, 아들 중에는 오직 나하나 뿐이었는데, 兩代에서 () 하나만 남게 되었으니, 고독하고 처량한 처지가 되었다.

承先人後者 : 先人의 뒤를 이을 사람. ‘先人은 한유의 부친인 韓仲卿을 가리킴.

兩世一身 : 兩代에 한사람씩만 있다. 形單影隻 : 짝이 없이 고독하고 처량한 모습.

 

嫂常撫汝指吾而言曰: 韓氏兩世, 惟此而已.(수상무여지오이언왈, 한씨양세, 유차이이.)

형수는 항상 너를 어루만지고 나를 가리키면서 말씀하기길 韓氏 집안 兩代에 걸쳐 오직 너희들(韓愈十二郞) 뿐이다.” 라고 하였다.

: 한유와 십이랑을 가리킴. 而已 : ~뿐이다.

 

汝時尤小, 當不復記憶; 吾時雖能記憶, 亦未知其言之悲也.( 여시우소, 당불부기억, 오시수능기, 역미지기언지비야.)

너는 그때 더욱 어렸으니, 당연히 다시 기억을 못할 것이고, 나는 당시를 비록 기억은 할 수 있어도 또한 아직 그 말의 비통한 뜻을 알지 못했다.

[硏究]

: 당시에. : 더욱.

 

吾年十九, 始來京城, 其後四年而歸視汝. 又四年, 吾往河陽省墳墓, 遇汝從嫂喪來葬.(오년십구, 시래경성, 기후사년이귀시여. 우사년, 오왕하양성분묘, 우여종수상래장)

내 나이 19살 되던 해에 비로소 京城(長安)에 오게 되었고, 그 후 4년 되던 해에(23) 돌아와 너를 보았고, 4년 후에(27), 내가 河陽에 성묘하러 갔다가 형수의 영구를 호송해와서 장례를 치르는 너를 만났었다.

[주해]

始來京城 : 겨우 장안으로 돌아오다. 宣城에서의 피난생활 끝에 19세 되던 해에 이르러서야 장안으로 돌아오게 됨을 이름.

省墳墓 : 묘소에 참배하다. 嫂喪 : 형수의 靈柩. : 安葬하다.

 

又二年, 吾佐董丞相於汴州, 汝來省吾, 止一歲, 請歸取其孥.

(우이년, 오좌동승상어변주, 여래성오; 지일세, 청귀취기노. )

2년 후에, 내가 변주에서 董丞相을 보좌하고 있었는데

네가 그때 나를 만나러 와, 1년을 머물다가 처자식을 데려오기 위해 돌아갈 것을 청했다.

: 보좌하다.

董丞相 : 董晉. 그가 貞元 12宣武軍節度使 汴州刺史로 출임한 것임. 재상을 역임한 적이 있어 董丞相이라 지칭하였음.

汴州 : 지금의 河南省 開封市. 來省 :만나로 오다. : 데려오다 : 妻子.

 

明年丞相薨, 吾去汴州, 汝不果來.(명년승상훙, 오거변주, 여불과래.)

다음 해에 董丞相이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자, 나는 汴州를 떠나게 되어서, 너도 올 수가 없었다.

[硏究]

丞相 : 董晉을 가리킴. : 公侯가 죽는 것을 말함. 去汴州 : 변주를 떠나다. : ‘의 뜻.

 

是年, 吾佐戎徐州, 使取汝者始行, 吾又罷去, 汝又不可來. (시년, 오좌융서주, 사취여자시행, 우파거, 여우불가래)

(같은) 해에 나는 徐州에서 軍務를 보좌하게 되었다. 너를 데리러 보낸사람이 방금 출발하자마자, 내가 또 관직을 그만두고 (서주를) 떠나게 되어, 너는 결국 오지 못하게 되었다.

[硏究]

佐戎 : 군대의 일을 보좌하다.

徐州 : 지금의 江蘇省 銅山縣. 한유가 武寧節度使 張建封 밑에서 節度推官이 되었음을 이름.

取汝者 : 너를 데리고 올 사람.使:보내다 파견하다.: 맞이하다. 데려오다.

始行: 방금 출발하다.罷去 : 사직을 하고 떠나다. 貞元 16, 장건봉이 죽어 관직에서 물러남.

吾念汝從於東, 東亦客也, 不可以久. 圖久遠者, 莫如西歸, 將成家而致汝.

(오념여종어동, 동역객지, 불가이구, 도구원자, 막여서구, 장성가이치녀)

나는 네가 나를 따라 동쪽(客地)에서 지낸다 해도, 동쪽은 역시 객지이니, 오래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오래 지내기를 도모한다면, 西(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만 못해, 장차 가정을 이루고 나서 너를 불러오려고 생각했다..

: 객지. 나그네 신세. : 도모하다. 꾀하다. 莫如: ~하는 것만 못하다. ~하는 것이 낫다.

西歸 : 서쪽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다. 致汝 : 너를 데려오다. 너를 초치하다.

 

嗚呼! 孰謂汝遽去吾而歿乎?(오호! 숙위여거거오이몰호)

! 너가 갑자기 나를 떠나 죽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

[硏究]

孰謂 : 누가 알았겠는가? 遽去 : 갑자기 떠나다.

 

吾與汝俱年少, 以爲雖暫相別, 終當久相與處. 故捨汝而旅食京師, 以求斗斛之祿. (오여여구년소, 이위수잠상, 종당구상여처. 고사여이여식경사, 이구두곡지록.)

나와 너가 모두 나이가 젊어서, 비록 잠시 서로 헤어질 수는 있겠지만, 끝내는 당연히 오랫동안 서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너를 버려두고 長安에서 객지 생활을 하며, 얼마 안 되는 봉록을 구했었다.

以爲 : --라고 생각하다. 終當 : 틀림없이. 與處 : 더불어 생활하다.

旅食 : 객지생활을 하다. 斗斛之祿 : 얼마 안 되는 俸祿. ‘은 고대의 도량단위로서 10.

 

誠知其如此, 雖萬乘之公相, 吾不以一日輟汝而就也.(성지기여차, 수만승지공상, 오불이일일철여이취야 )

정말로 이와 같을 줄(죽게될 줄) 알았다면, 비록 天子의 나라에서 公卿宰相의 벼슬이라도, 나는 하루라도 너를 버려두고 부임하지 않았을 것이다.

[硏究]

: 진실로. 如此 : 세상을 떠난 사실을 가리킴.

萬乘之公相 : 천자의 공경, 재상. 높은 관직을 이름, :멈추다, 그치다. 그만두다. 여기서는 버리다. 떠나다.’

 

去年, 孟東野往, 吾書與汝曰: ‘吾年未四十, 而視茫茫, 而髮蒼蒼, 而齒牙動搖, 念諸父與諸兄, 皆康强而早世, 如吾之衰子, 其能久存乎? 吾不可去, 汝不肯來, 恐旦暮死, 而汝抱無涯之戚也.(거년, 맹동야왕, 오서여여왈: 오년미사십, 이시망망, 이발창창, 이치아동요, 념제부여제형, 개강강이조세, 여오지쇠자, 기능구존호? 오불가거, 여불긍래, 공단모사, 이여포무애지척야.)

지난해에 孟東野(그 곳에) 부임할 때에 내가 너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길 내 나이 아직 40이 되지 않았는데 시력이 어둠 침침 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齒牙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러 伯父叔父들과 뭇 들이 모두 건장하셨는데도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을 생각하면, 나같이 쇠약한 사람이 어찌 능히 오래 살 수 있겠느냐? 내가 (경성을 떠나 강남으로) 갈 수도 없고, 네가(경성으로) 오려고 하지 않으니, 머지않아 내가 죽어서, 너에게 한없는 슬픔을 안겨줄까 두렵다라고 하였다

 [硏究]

去年: 지난 해 孟東野 : 孟郊. 東野. 한유의 친구로서 中唐代 시인. 貞元 18, 강남 漂陽縣尉로 출임했음.

書與 : 편지를 써 주다, 보내다. 視茫茫 : 보는 것이 어둠침침하다. 髮蒼蒼 : 머리가 희끗희끗하다. 諸父 : 叔父,伯父를 통들어 이름. 康强 : 건장하다. 원기왕성하다.

: 어찌, 其能久存乎 : 어찌 능히 오래 살 수 있을까 ? 不肯:~하려 들지 않다.

旦暮死 : 아침과 저녁의 눈 깜박할 사이에 죽다. 無涯 : 한없는. 가 없는. : 슬픔.

 

孰謂少者歿, 而長者存, 强者夭, 而病者全乎?( 숙위소자몰, 이장자존, 강자요이병자전호?)

젊은 사람이 죽고, 나이가 많은 사람이 살며, 튼튼한 사람이 夭折하고, 병든 사람이 살아 있으리라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

[硏究]

: 요절하다.

 

嗚呼! 其信然邪? 其夢邪? 其傳之非其眞邪?(오호 ! 기신연야? 기몽야? 기전지비기진야?)

! 그것이 정말 그런가? 그것이 꿈인가? 그 소식이 사실이 아닌가?

[硏究]

信然 : 정말로 그러하다

 

信也, 吾兄之盛德, 而夭其嗣乎?汝之純明, 而不克蒙其澤乎? (신야, 오형지성덕, 이요기사호 ? 여지순명, 이불극몽기택호?)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의 형의(맏형 韓會) 그 훌륭한 덕행이 오히려 , 그 후사를 요절 시켰단 말인가? 그리고 너의 그 순수하고 총명함이 오히려 그의 은택을 입을 수 없었던 것인가?

夭其嗣 : 後嗣를 요절케 하다.純明 : 순결하고 총명하다. : ‘과 뜻이 같음.

不肯: 不能, ~할 수 없다.: 받다. 혜택을 입다.

 

少者强者而夭歿, 長者衰者而存全乎?(소자강자이요몰, 장자쇠자이존전호,)

젊고 건강한 사람이 일찍 죽고, 나이 많고 쇠약한 사람이 온전히 살아야 하는 것인가?

 

未可以爲信也. 夢也, 傳之非其眞也, 東野之書, 耿蘭之報, 何爲而在吾側也? ( 미가이위신야, 몽야, 전지비기진야, 동야지서, 경란지보, 하위이재오측야?)

사실로 여길 수가 없구나. 만일 이것이 꿈이요,, 전해온 소식이 사실이 아니라면, 孟東野의 편지와 耿蘭(韓愈의 하인)의 통보가 어찌해서 내 곁에 있단 말인가?

[硏究]

傳之非其眞 : 십이랑이 죽었다는 소식이 사실이 아닌 것이 틀림없겠지만.

耿蘭 : 한유의 하인 이름

사실로 여길 수가 없구나. 만일 이것이 꿈이요,, 전해온 소식이 사실이 아니라면, 孟東野의 편지와 耿蘭(韓愈의 하인)의 통보가 어찌해서 내 곁에 있단 말인가?

傳之非其眞 : 십이랑이 죽었다는 소식이 사실이 아닌 것이 틀림없겠지만.

耿蘭 : 한유의 하인 이름

嗚呼! 其信然矣! 吾兄之盛德, 而夭其嗣矣; 汝之純明宜業其家者, 不克蒙其澤矣!(오호! 기신연! 오형지성덕, 이요기사의; 여지순명의업기가자, 불극몽기택의! )

! 그것이 사실이구나! 나의 형의 훌륭한 덕행이 오히려 그 후사를 잃었고, 너는 그 순수하고 총명하여 마땅히 家業을 이어야(계승) 해야 할 사람인데, 아버지의 은택을 입을 수 없었구나!

[硏究]

:요절하다.일찍죽다. 여기서는 잃다의 뜻 其信然矣:십이랑이 죽은 것이 사실이구나.

: 동사로 사용되어 꾸려가다, 또는 일으키다. 의 뜻. : 가업. 가문.

 

所謂天者誠難測, 而神者誠難明矣! 所謂理者不可推, 而壽者不可知矣!(소위천자성난측, 이신자성난명의! 소위이자불가추, 이수자불가지의! )

이른바 천명이라는 것은 진실로 헤아리기가 어렵고, 神意라는 것은 진실로 밝히기가 어렵구나! 또 이른바 도리라는 것은 가히 미루어 알 수 없고, 수명이라는 것은 가히 알 수 없구나!

[硏究]

天者 : 하늘의 뜻. 神者 : 천지신명. 理者 : 하늘의 이치. : 미루어 알다. 壽者 : 수명.

 

雖然, 吾自今年來, 蒼蒼者或化而爲白矣, 動搖者或脫而落矣.(수연, 오자금년래, 창창자혹화이위자의, 동요자혹탈이낙의.)

비록 그렇다 해도, (한유 자신)는 금년부터 희끗희끗하던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고, 흔들거리던 치아가 빠졌다.

[硏究]

蒼蒼者 : 희끗희끗 하던 것. 머리를 가리킴. 動搖者 : 흔들리던 것. 이를 가리킴.

 

毛血日益衰, 志氣日益微.幾何不從汝而死也?( 모혈일익쇠, 지기일익미, 기하불종여이사야? )

체력이 날마다 더욱 쇠약해지고, 의지와 원기가 날로 쇠미해지니 너를 따라 죽을 날도 그 얼마 남지 않았구나.

毛血 : 즉 체력. ‘는 머리카락. ‘은 혈기. 志氣 : 의지와 원기. 幾何不: 얼마 남지 않다.

幾何不從汝而死也 : 너를 따라 죽지 않을 날이, 즉 살아 있을 날이 얼마나 되겠는가. 멀지 않아 너를 따라 죽을 것이라는 뜻.

 

死而有知, 其幾何離, 其無知, 悲不幾時, 而不悲者, 無窮期矣!(사이유지, 기기하리; 기무지, 불기시, 이불비자, 무궁기의!)

죽어서도 지각이 있다면, (우리가) 떨어져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죽어서) 지각이 없다고 한다면 슬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반면, 슬퍼하지 않을 날은 기한이 없을 것이다.

[硏究]

: 지각. 其幾何離 ; 떨어져 있는 동안이 얼마나 되겠는가. ,‘其離幾何의 뜻.

悲不幾時 : 슬퍼하는 동안이 얼마 아니되다. 無窮期 : 끝없는 기간.

汝之子始十歲, 吾之子始五歲;(여지자시십세, 오지자시오세)

(십이랑) 아들이 이제 겨우 10살이고, (한유)의 아들이 겨우 5살이다.

汝之子 : 십이랑의 아들 韓湘. 吾之子 : 한유의 아들 韓昶.

 

少而强者不可保, 如此孩提者, 又可冀其成立耶? 嗚呼哀哉! 嗚呼哀哉!

 (소이강자불가보, 여차해제자, 우가기기성립야 ? 오호애재! 오호애재!)

젊고 건장한 사람이 (목숨을) 보전할 수 없는데, 이와 같은 어린아이의 경우, 또한 가히 성장해서 독립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아 슬프도다! 아 슬프도다!

: 목숨을 보전하다. 孩提者 : 어린이. 한창과 한상을 가리킴. : 바라다. 기대하다.

 

汝去年書云: ‘比得軟脚病, 往往而劇. 吾曰:‘是疾也,江南之人常常有之.’ 未始以爲憂也

(여거년서운: 비득연각병, 왕왕이극. 오왈: 시질야, 강남지인상상유지, 미시이위우야. )

네가 작년에 보낸 편지에 말하기를 근래에 각기병에 걸려, 자주 심하게 아픕니다.” 라고 하여, 나는 말하기를이 병은 강남에 사는 사람이, 자주 앓고 있다,”라고 말하며, 그것을 걱정거리로 여겨본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것을 근심거리로 여기지(간주) 않았다.

[硏究]

: 요사이. 근래. 軟脚病 : 오늘날의 각기병을 말함. : 심하다. 未始 : ‘未嘗의 뜻. ~한적이 없다.

 

嗚呼! 其竟以此而殞其生乎? 抑別有疾而至斯乎? (오호! 기경이차이운기생호? 억별유질이지사호? )

! 마침내 이로(연각병) 인해 너의 목숨을 잃었단 말이냐? 아니면 달리 병이 있어서 이 지경에(죽게) 이른 것이냐?

 

: 마침내. 以此 : 각기병으로 인하여.

殞其生 : 사망하다. ‘은 떨어지다. 죽다. : 아니면. 至斯 : 이 지경에 이르다.

汝之書, 六月十七日也. 東野云: 汝歿以六月二日; 耿蘭之報, 無月日.(여지서, 육월십칠일야. 동야운: 여몰이육월이일; 경란지보, 무월일. )

네가 보낸 편지에는 617일로 쓴 것으로 되어있는데. 孟東野의 편지에는 네가 62일에 죽었다고 했고, 耿蘭(韓愈의 하인)의 통보에는 날짜가 없었다.

汝之書 : 십이랑이 한유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 ‘의 뜻. 無月日 : 날짜의 기술이 없다.

 

蓋東野之使者, 不知問家人而月日, 如耿蘭之報, 不知當言月日. 東野與吾書, 乃問使者, 使者妄稱以應之耳. 其然乎? 其不然乎?(개동야지사자, 부지문가인이월일; 여경란지보, 부지당언월일. 동야여오서, 내문사자, 사자망칭이응지이, 기연호? 기불연호?)

아마도 孟東野의 하인이, 이 집안(十二郞)식구들에게 죽은 날짜 묻는 것을 몰랐거나, 耿蘭의 통보처럼 마땅히 날짜를 말해야 하는 것을 몰랐거나. 孟東野가 나에게 편지를 써 보내면서, 비로소 하인(使者)에게 물어, 하인이 아무렇게나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하냐? 그렇지 아니하냐?

[硏究]

: 아마도 不知問家人而月日 : 가족들에게 날짜 물어 볼 줄을 모르다. : ‘의 뜻.

乃問 : 그 때 비로소 使者에게 물어보다. 妄稱 : 되는대로 말하다.

 

今吾使建中祭汝, 弔汝之孤與汝之乳母.(금오사건중제여, 조여지고여여지유모.)

지금 내가 建中(韓愈의 하인)으로 하여금 너에게 祭祀 지내게 하고, 너의 아들 과 너의 유모를 위로했다.

: 조문하다. 위로하다. : 십이랑의 아들.

 

彼有食, 可守以待終喪, 則待終喪, 而取以來. 如不能守以終喪, 則遂取以來; (피유식, 가수이대종상, 즉대종상, 이취이래, 여불능수이종상, 즉수취이래)

그들이 먹을 식량이 있어서, 喪期를 지키며 탈상을 기다릴 수 있다면 , 탈상을 기다렸다가 데려올 것이고, 만일 그들이 탈상 때까지 喪期를 지킬 수 없다면, 즉시 가서 그들을 데려올 것이다.

[硏究]

彼有食 : 저들이 먹을 것이 있어서.

可守以待終喪 : 喪期가 끝날 때까지 지키어 기다릴 수 있다면.終喪 : 脫喪, 解喪

取以來 ; 데려오다. : 즉시로.

 

其餘奴婢, 竝令守汝喪. 吾力能改葬, 終葬汝於先人之兆 然後惟其所願. (기여노비, 병령수여상. 오력능개장, 종장여어선인지조 연후유기소원.)

나머지 노비들은 모두 너(十二郞)喪期를 지키게 할 것이다. 나의 힘으로써 능히 개장할 수만 있다면 마지막에 너를 조상의 묘소 부근에 장사 지고 그렇게 한 연후에야 오직 그들이 원하는 바(改葬)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

[硏究]

: 모두. 先人之兆 : 조상의 묘소 부근. 先塋. 惟其所願 : 오직 그들이 원하는 바에 따르다.

 

嗚呼! 汝病, 吾不知時; 汝歿, 吾不知日. 生不能相養以共居, 歿不能撫汝以盡哀; 斂不憑其棺, 窆不臨其穴.(오호! 여병, 오부지시; 여몰, 오부지일. 생불능상양이공거, 몰불능무여이진애, 염불빙기관, 폄불림기혈. )

! 너가 병든 것에 대해서 나는 그때를 알지 못했고, 네가 죽었어도 내가 죽은 알을 알지 못했다. 살아있을 때에 서로 봉양하면서 함께 살수 없었고, 죽어서도 너의 屍身을 어루만지며 슬픔을 다하지 못했으며, 염을 할 때도 그 관 가까이 있지 못하고, 하관할 때에도 너의 무덤에 가보지 못했다.

[硏究]

不知時: 때를 알지 못하다. 相養: 보살피다. 돌보다. 撫汝以盡哀 ; 시신을 안고 슬픔을 다하다..

: , 시체를 거두어 입관하는 일. 不憑其棺 : 너의 관 옆에 기대어 서지 못하다.

: 가까이 다가 가다. : 매장할 때 하관하는 일. 不臨其穴 : 너의 묘혈에 가 보지도 못하다.

 

吾行負神明, 而使汝夭, 不孝不慈, 而不得與汝相養以生, 相守以死. (오행부신명, 이사여요.불효부자, 이부득여여상양이생, 상수이사)

나의 행실이 천지신명을 저버려, 너를 요절케 했고, (어른들께) 효도를 다하지 못하고 (아래사람들에게)자비를 베풀지 못했으며. 너와 더불어 서로 봉양하면서 살고, 또 죽을 때까지 지켜주지도 못했다.

[硏究]

: 저버리다. 神明 : 천지신명.

 

一在天之涯, 一在地之角. 生而影不與吾形相依, 死而魂不與吾夢相接.(일재천지애, 일재지지각. 생이영불여오형상의, 사이혼불여오몽상접.)

한 사람은 하늘 끝에 있고, 한 사람은 땅의 모퉁이에 있으니, 살아서는 너(十二郞)의 그림자와 나의 몸이 더불어 서로 의지하지 못했고, 죽어서는 너의 혼령과 나의 꿈이 더불어 서로 만나지 못했다.

[硏究]

天之涯 : 하늘 끝. 地之角 : 대지의 모퉁이. 影不與吾形相依 : 같이 살지 못하다는 뜻.

死而魂不與吾夢相接 : 꿈에서도 만나보지 못했다는 뜻.

 

吾實爲之, 其又何尤? 彼蒼蒼者天, 曷其有極? 自今以往, 吾其無意於人世矣! (오실위지, 기우하우? 피창창자천, 갈기유극? 자금이왕, 오기무의어인세의!)

내가 진실로 그러한 일(十二郞의 죽은 것이 나 때문인 것)을 저질렀으니, 또 무엇을 원망하랴?, 하늘이여, 나의 슬픔이 언제 끝이 나리오! 오늘 이후부터 나는 인간세상에서 아무것도 추구하고 싶은 생각이 없구나!

吾實爲之 : 실제로 내가 했다. 즉 죄는 다 나한테 있다. : 원망하다. 탓하다.

彼蒼蒼者天 : 저 푸르디 푸른 하늘이시어. 원통함을 못 이기어 하늘을 부르는 것임.

曷其有極 : 어찌 끝이 있겠는가. 언제 슬픔이 끝나리오! : 언제 : .

以往 : 以後. : 아마. 추측을 나타내는 어기사. 無意 : 생각이 없다.

 

當求數頃之田於伊潁之上, 以待餘年, 敎吾子與汝子, 幸其成; 長吾女與汝女, 待其嫁; 如此而已.( 당구수경지전어이영지상, 이대여년. 교오자여여자, 행기성; 장오여여여여, 대기가. 여차이이.)

마땅히 伊水潁水(韓愈의 고향에 있는 )근처에 몇 이랑의 밭을 구입하여 여생을 보내면서, 나의 아들과 너의 아들을 가르쳐, 그들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내 딸과 너의 딸을 길러서 그들이 시집가는 것을 기다릴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이 할 뿐이다.

[硏究]

數頃之田 : 약간의 전답. 伊潁之上 : 伊水,潁水가 있는 근처. 한유의 고향을 이름.

: 바라다. 희망하다. : 양육하다.

 

嗚呼! 言有窮, 而情不可終. 汝其知也邪? 其不知也邪? 嗚呼哀哉! 尙饗.( 오호! 언유궁, 이정불가종. 여기지야야? 기부지야야? 오호애재! 상향 )

! 말은 다할때가 있지만, 애통한 심정은 끝이 없다. 너는 그것을 (나의 이러한 애통한 마음을) 아느냐? 모르느냐? ! 歆饗하기 바라노라.

[硏究]

其不知也 : 나의 이러한 애통을 모르느냐 ?

尙饗 : 제문의 끝에 붙이는 말. ‘은 바라다. ‘은 신명이 음식을 먹다. 신명이 와서 제물을 흠향하기를 바란다는 뜻.

 

 

주)

한유(韓愈) 대력 3(768)~장경 4(824)), 중국 당()을 대표하는 문장가 · 정치가 · 사상가이다. 당송 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자()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이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등주(鄧主) 하내군(河內郡) 남양(南陽, 지금의 하남 성 맹주 시) 출신이나, 그 자신은 창려(昌黎, 하북 성河北省) 출신으로 자처했다.

한유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어머니를 잃었다. 3세에 아버지를, 14세에 형 한회(韓會)를 잃고 형수 정씨에 의해 길러졌다. 7세 때부터 독서를 시작한 한유는 13세에 문장에 재능을 보였다. 정원(貞元) 2(786)부터 장안에서 과거에 응시했으나, 이렇다 할 문벌도 뒷배경도 없었던 그는 세 번이나 낙방하고서 8(792)에 진사과에 합격하였다. 다시 이부시(吏部試)에 응시하였을 때에도 다시 세 번이나 낙방한 그는 정원 11(795) 세 번이나 재상에게 글을 올리고서야 가까스로 천거된다. 정원 12(796) 변주(汴州) 선무군(宣武軍)에서 난이 일어나자, 절도사 동진(董晉)을 따라 부임하여 관찰추관(觀察推官)을 맡아 지내는 동안에 시인 맹교(孟郊)와 서로 교유하였고, 이고(李翱), 장적(張籍)이 그 문하에 들었다. 동진이 죽은 뒤에는 무령절도사(武寧節度使) 장건봉(張建封) 휘하로 옮겨 절도추관(節度推官)이 되었다가, 장건봉이 죽은 뒤 낙읍(洛邑)으로 옮겨 살았다. 정원 17(801)에 국자감(國子監)의 사문박사(四門博士)가 되고, 이듬해 사설(師說)을 지었다. 19(803)에는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되었는데, 이때 관중(關中)에서 대화재가 일어난다. 한유는 어사대상론천한인기장(御史臺上論天旱人饑狀)을 지어 당시의 경조윤(京兆尹) 이실(李實)의 폭정을 규탄하지만, 거꾸로 자신이 연주(連州) 양산현(陽山縣) 현령으로 좌천되고, 1년이 지나자 조카 노성(老成)을 잃었다. 이때 그가 지은 글이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이다. 원화 6(811)에 국자박사(國子博士)가 되어 진학해(進學解)를 지었다. 당시의 재상 배도(裴度)는 이에 대한 치하로서 그를 예부낭중(禮部郎中)으로 삼았으며, 원화 10(815)에는 배도를 따라 회서절도사(淮西節度使) 오원제(吳元濟) 토벌에 공을 세워 형부시랑(刑部侍郞)이 되었으며, 이때 평회서비(平淮西碑)의 글을 짓는다.

원화 14(819) 정월, 독실한 불교 신자이기도 했던 헌종 황제는 당시 30년에 한 번 열리며 공양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여 신앙을 모으고 있던 봉상(鳳翔, 지금의 섬서 성陝西省) 법문사(法門寺)의 불사리가 헌종(憲宗)를 장안의 궁중으로 들여 공양하고자 하였다. 반불주의자인 그는 이듬해 불골을 논하는 표(諫迎佛骨表)를 헌종에게 올려 과거 양 무제(梁武帝)의 고사를 언급하며 "부처는 믿을 것이 못된다(佛不足信)"고 간언했고, 헌종은 대노하여 그를 사형에 처하려 했지만 재상 배도와 최군(崔羣)의 간언으로 사형을 면한 채 조주자사(潮州刺史, 조주는 지금의 광동 성)로 좌천당했다. 이듬해 헌종이 죽고 목종(穆宗)이 즉위하자 다시 중앙으로 소환되어 국자제주(國子祭酒대학 학장)에 임명되었다. 그 뒤 병부시랑(兵部侍郞), 이부시랑(吏部侍郞), 경조윤 겸 어사대부(御史大夫)의 직을 역임하였는데, 이부시랑으로 있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를 한이부(韓吏部)로 불렀다고 한다. 57세에 병으로 죽었다. 사후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추증되었다. 송의 원풍(元豐) 연간에 창려백(昌黎伯)으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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