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도 쉬어가는 월악산

2019. 4. 28. 08:24대한민국 山/충청도

>>> 달도 쉬어가는 月嶽山 <<<

0. 일시: 2019.4.27.(토) 10:04 ~ 15:03(4시간 59분) * 드림

0. 코스: 송계교-보덕암-하봉-중봉-월악산(영봉)-만수릉3거리-마애불-덕주사-송계리

0. 거리: 10.5km정도

   어제 비가 온 후라 날씨는 넘 좋고, 공기는 한층 맑다. 덕주골 계곡엔 많은 물이 흘러 내려 여름산행인가를 착각할 정도다. 그래선지 미세먼지도 잠시는 잊을 수가 있었다. 송계2교부근에서 초입지 시작부터 4km정도가 지속 오르막인지라 땀은 많이 뿌렸지만 잠시나마 산행의 진맛을 느낄수가 있는 그런 산길이다. 우리나라 3대 악산 중의 하나인 월악산. 참 오랫만에 다시 올라본다. 한 15년이되었지 싶은 시간이 세월속으로 사라졌다. 그동안 정상부근의 데크도 많이 보강을 해놔서 안전문제가 많이 좋아진듯하다. 하산후 하산주를 마시면서 애기를 하다보니 고향사람을 만난다. 무척이나 반갑다. 고향에 대해  도란도란 애기를 나눠보니 향수에 젖어 드는 느낌이다. 또 담산행에서 만나서 여러 산을 동행하자는 그런 말을 남겨본다.  아무튼 월악산 암릉 산길 시원스럽게 즐기고 온 산행 나들이였다.(같이 한 일행에게도 감사)


# 월악산 영봉(1,097m)-"하늘엔 조각 구름 떠 있고 산위엔 산꾼들이 모였고"~ ♪ 의 노랫구절이 확 떠오르는 영봉 정상은 시원한 공기가 산꾼을 맞이해준다.


#1 초입지 월악산 통나무집-처음부터 지속 오르막길이 나오지만 산길이 희미하게 보이고~

#2 아름다운 꽃도 담아보고

#3 층층석-산 전체가 이런 형태의 층층석이 많이 보인다.

#4 보덕굴- 겨울철이 되면 逆 고드름이 나온다는 굴이지만 지금은 많은 물이 밖으로 배출시키고 있다. 기회가 되면 역고드름을 보러 겨울산행을 해야겠다.

(보덕굴속의 역 고드름):아마도 물이 위에서 떨어지면서 생겨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5 보덕암-보덕암(寶德庵)의 연원은 신라 시대 왕리조사(王利祖師)가 수행한 보덕굴에서 비롯한다. 왕리조사가 수행한 곳에 1918년 보덕암을 축조하였다고 전하며, 지금의 사찰은 1979년 무허가 사찰이 헐린 후에 조성된 것이라 한다. 보덕암은 관음도량이며, 왕리조사가 수행하였던 곳에서 연유하였다고 하여 왕리사(王利寺)라고도 한다. 현재의 보덕암은 주지가 1984년 입산한 이래 천일기도하면서 1986년에 자연스럽게 지금의 가람을 증축하였다.기암 층벽 위에 있던 고탑 3기는 멸실되어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다만 대웅전(大雄殿)을 신축하면서 절터에 흩어져 있는 약 150매의 정방형과 장방형 전탑 부재가 수습하여, 항아리에 사찰 연기를 넣은 다음 미완성 전탑을 축조하여 대웅전 뜰에 세웠다. 사찰에 있었던 신령각과 칠성각(七星閣)은 삼성각(三聖閣)으로 대체하였다. 보덕암은 옛날에 부유한 사람이 고질병으로 병환이 위독하자 가마를 타고 지금의 경내에 와서 약수를 마시고 완쾌한 곳으로 전한다. 이처럼 중생의 병환을 쾌유시키는 암자로 정평이 나면서 약수터 위에 약사여래불입상을 안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6 층층석

#7 하봉으로 오르는 무수히 많은 데크 계단과 계단의 연속

#8 하봉에서 충주호를 풍경삼아

#9 올라아할 중봉과 영봉


#10 중봉오르는 중 하봉과 충주호를 뒤로하고- 여기서 서서 보니 2014년도인가 혼자 잔차를 몰고 충주댐100마일 레이스를 했던 기억이 난다. 충주호 뒷편엔 비포장길이 엄청 많아서 진짜로 큰 고생을 한 적이 있었는데.....


#11 중봉부근 돌사이에 돌이 박혀 있는 듯한 굴을 지나 위로 올라선다.

#12 중봉-높이 오름 오를 수록 경치가 더 압권이고 날씨도 시원해서 산행의 진맛을 느낄수가 있어 넘 좋다.


#13 월악산 영봉(1,097m)-월악산 정상에 발을 올리니 우리나라 3岳이 왜 그렇게 불러지는지를 체감할 수가 있다.(설악,치악,월악),,출발후 2시간 22분만에 4.2km지점 통과.

#14 영봉에서 덕주사로 하산방향의 급내리막 데크길 주변

#15 헬기장 주변으로 내려와 영봉을 배경잡아 본다.

#16 마애봉(960봉)이지 싶다.

#17 암릉과 소나무의 공존

#18 암벽과 운해-위를 처다보니 하늘엔 그림같은 구름이 둥실 흘러가고 있어 얼른 캄에 이 한장을 담아 본다.


#19 덕주사 마애불상-당시 불교문화의 한 부분을 잠시나마 볼 수가 있었다. 이런 형태의 불상은 전국 여러군데서 본 기억이 난다. 경주 남산, 도명산 부근 등이 내 기억에 남아 있다. 1000여년의 세월속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움 모습으로 후손들에게 남겨줄 문화유산이 아닐런가?

注)덕주사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의 누이 덕주공주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사찰 내 거대한 암벽에 조각되어 있다. 높이는 무려 13m나 되는데 얼굴부분은 도드라지게 튀어나온데 비해 신체는 선으로만 새겼다. 과장된 얼굴의 표현은 고려시대의 거대한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이다. 선으로 조각한 몸부분은 인체의 조형적 특징을 살리지 않고 왜곡한 표현법이 보인다. 고려 초기의 거대한 불상 조성 추세에 힘입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살찐 얼굴과 하체로 내려갈수록 간략해진 조형수법과 평면적인 신체는 당시 불상의 주된 특징이다. 덕주사에는 이외에도 다양한 불교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덕주산성과 하늘재, 미륵사지 등 가볼만한 곳이 많이 있다.(펀글)

(도락산 磨崖佛)


(경주 남산 磨崖佛)


(남해 금산 부소암 磨崖佛)

#20 아름드리 고목

#21 월악산 입구 영봉 안내석

#22 덕주사 경내-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法住寺)의 말사로 서기 587년(진평왕 9)에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창건자 및 창건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신라의 마지막 공주 덕주공주(德周公主)가 마의태자(麻衣太子)와 함께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마애불이 있는 이곳에 머물러 절을 세우고, 금강산으로 떠난 마의태자를 그리며 여생을 보냈다는 전설이 전한다.

원래의 덕주사는 보물 제406호인 덕주사마애불(德周寺磨崖佛) 앞에 있었는데, 1951년 군의 작전상 이유로 소각하였다. 창건 당시의 절을 상덕주사, 지금의 절을 하덕주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상덕주사는 지금의 덕주사에서 1.7㎞ 지점에 있었는데, 1951년 무렵 까지만 해도 고색창연한 기도사찰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상덕주사는 1622년(광해군 15)에 중수되었음이 옛 극락전 자리에서 발견된 명문기와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지금의 덕주사에서는 1206년(희종 2)에 조성된 금구(禁口)가 발견되어 고려시대 덕주사의 정황을 짐작할 수 있다. 1963년에 중창되었고, 1970년과 1985년에 각각 중건하였다. 덕주사에는 어느 때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우탑(牛塔) 1기와 조선시대의 부도(浮屠) 4기가 있으며, 우탑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이 절의 승려들이 건물이 협소하여 부속건물을 지으려고 걱정할 때 어디선가 소가 나타나서 재목을 실어 날랐다. 소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니 현재의 마애불 밑에 서므로 그곳에다 부속건물을 지었고, 소는 재목을 모두 실어다 놓은 다음 그 자리에서 죽었으므로 죽은 자리에 우탑을 세웠다고 한다.또, 부도에는 환적당(幻寂堂)·부유당(浮遊堂)·용곡당(龍谷堂)·홍파당(洪波堂)이라고 음각된 명문이 기록되어 있다. 1985년 중창 당시에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는 한수면 역리에 있던 고려시대 석조 약사여래 입상을 덕주사로 옮겨 봉안하였다. 이밖에도 덕주사 전방 약 2㎞ 지점에 있는 빈 신사 터에는 보물 제94호로 지정된 사자빈신사지석탑(獅子頻迅寺址石塔)이 있으며, 덕주사 주변의 덕주계곡·송계계곡(松界溪谷)·월악계곡(月岳溪谷) 등은 풍치가 좋다(펀글)



#23 덕주산성-월악산 남쪽 자락 일대는 남과 북을 잇는 도로의 길목으로 예로부터 전략적, 군사적 요충지였다. 신라 경순왕의 제 1공주 덕주공주가 이곳 월악산에 머물면서 지세를 이용하여 이 산에 성을 쌓고 훗날을 기약하였다고하고, 그 후 이 성을 덕주공주가 쌓은 성이라 하여 덕주산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덕주골로 들어가서 처음 만나는 성벽이 외성이고 하덕주사에서 마애불을 향해 올라가다가 도중에 보이는 성벽이 내성이다.이 산성은 고려 때 몽고의 침입과 조선조 임진왜란, 병자호란으로 인해 수차례 파괴되어 현재는 홍문관만 남아있다


#24 덕주골 월악산 국립공원 안내도앞

#25 대로에 설치된 영봉 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