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종주1구간(오륙도-신선대-정공단-부산대교)1구간

2020. 6. 29. 14:21두발로 한반도 종주(4,500여km )/남해안둘레길(남파랑1,463km)

如 犀 角 獨 步 行

>>>남해안(남파랑)종주(1구간)<<<

-오륙도-신선대-UN공원-증산공원-부산대교-

0. 전체: 부산 오륙도공원 ↔ 전남 해남 땅끝마을(1,463km)

0. 일시: 2020. 6.28.  09:25 ~ 16:17 ( 6시간 52분) * 남파랑종주팀 

0. 코스: 오륙도 해맞이공원-신선대-UN기념공원-대연동-문현곱창마을-부산진시장-정공단-증산공원-168계단-

           초량성당-부산역-추억의 40계단-부산대교

0. 거리: 23.3km (총:1,463km 진행:23.3k 누적:23.3k  진행율:1.59%)

 

대한민국  종주 코스 4,600여 km 중 해안선이 많기로 유명한 남해안 해안길(남파랑길)에 도전한다. 전체 코스는  부산 오륙도에서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이어지는 길로 1,463㎞로 국내 최장을 자랑하는 명품 코스다. 각 구간별 특징을 고려해 5가지 주제 길을 정해져있다.  1. 영화와 한류의 도시, 대도시와 자연의 매력을 함께 보유한 ‘한류길’(부산∼경남 창원),  2. 한려해상국립공원 해안 경관을 담은 ‘한려길’(고성, 통영, 거제, 사천, 남해),  3. 섬진강의 꽃 경관을 볼 수 있는 ‘섬진강 꽃길’(하동∼광양), 4.  다도해의 생태환경을 부각시킨 ‘남도 낭만길’(전남 여수, 순천, 보성, 고흥),  5. 남도 유배문화와 다양한 순례 자원을 체험할 수 있는 ‘남도순례길’(장흥, 강진, 완도, 해남) 등이다. 5가지 주제 길은 해안길과 숲길, 마을길, 도심길 등 모두 90개 구간으로 나뉜다. 구간은 대중교통 접근성을 고려, 여행자가 하루 정도 이동하기 적당하게 정해저 있다. 한구간별 길이는 10~30㎞로 문체부는 구간 가운데 인문·지리·문학·역사·종교 등 주제별 걷기여행길을 발굴하고 이를 활용한 관광상품도 추진하고 있으며 또 ‘나만의 인생사진 명소 걷기’, ‘길 위에서 만나는 내 인생의 인물’, ‘남도 식도락 여행’ 등 관광콘텐츠도 발굴한다. 남파랑길 안내 체계를 구축하고 주제별 걷기여행 등을 시범 운영하고 2020년 하반기 이를 정식 개통할 예정이라고한다. 남파랑길은 2016년 개통한 ‘해파랑길’에 이은 두 번째 코리아둘레길 노선이다. 남해의 지역성 ‘남쪽’과 ‘쪽빛 바다’의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퍼온글)아무튼 시작이 반이라고 또 커다란 이정표를 향하여 발을 디뎌본다. 남파랑 1코스는 바닷길보다 산길이 넘 많고 부산 좌천동,수정동,초량동 산 주변을 모두 지나온 길이다. 첫 발을 옮겼으니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개인과 시간과의 싸움이지만 해남까지 쭈욱 걸어볼예정이다.

 

#1 남파랑 출발선-해파랑과 남파랑의 갈림길인 오륙도 공원으로 SK뷰아파트에서 직진하면 이기대공원으로 진행하면 해파랑길, 우리가 진행해야할 남파랑길은 좌틀하면서 해남을 향한 대망의 첫발을 내딛여본다. 또 먼훗날 동파랑길 출발때가 되면 여기에 나타날것이다.

# 오륙도스카이워크

# 스카이 워크-뒷편 오륙도와 발아래 푸른 파도가 저 아래서  왔다갔다를 반복한다.

* 오륙도 섬

# 해파랑길(동파랑길)의 첫 어귀인 이기대 공원과 저멀리 해운대 센텀시티가 흐릿하게 보인다.

* 해파랑길과  남파랑의 시작 포인트

# 남파랑을 같이 할 트레킹꾼들

#2 백운포 체육공원 진입로 주변

#3 분홍빛 수국이 트레커의 마음을 휘잡지만 가는길이 멀어서 향기만 맡고 바로 출발----

#4 신선대 입구와 안내판

#5 신선대 정상- 뒤로 부산대교와  부산항이 코앞에 보인다.

#6 영국 브로우던 함장광 부속선을 타고 용당포에 상륙 기념비- 신선대 정상 아래 공터에는 한국과 영국의 국기가 나란히 게양된 채 하나의 기념비가 있다. 기념비에는 “1797년 10월 윌리엄 브로우턴 함장과 승무원들은 영국 해군 소속 ‘프로비던스’호의 부속선을 타고 이곳 용당포에 상륙하여 주민들과 접촉을 가졌던 최초의 영국인들이었다”고 명기돼 있다.기념비의 표기처럼 1797년 10월 14일 영국 해군 대령 브로우턴 함장은 프로비던스호를 타고 일본 지역 주변의 해도 작성을 위해 항해하던 중 부산항에 상륙 열흘 동안 머무른 게 두 나라 사이의 최초의 접촉이 된다. 부산과 영국과의 관계는 1797년부터 시작되어 이는 부산과 영국과의 관계를 넘어 한국과 영국의 최초의 접촉이 된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국군이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1885년부터 2년간 전남 거문도를 점령한 거문도사건 보다 훨씬 앞서는 것이다.

#7 신선대 부두위의 어마어마한 컨테이너

#8  현대아이파크 아파트앞을 지난다.

#9 UN공원- 안에 들어가서 보니 한국전쟁때 대한민국의 자유수호를 위하여 왔다가 돌아가신 젊은 군인들의 무덤을 보는 순간 전쟁의 참혹함을 세삼 느끼게 만들었고, 대부분의 비석의 나이를 보니 20대 초반이 대부분이어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한참동안 앉아서 다녀간 흔적을 남겼지만 깊은 고마움을 가슴 가득히 안고 정문을 나설수 밖에 없었다.

* 터키군 묘지앞

* 프랑스군 묘지앞

 

#10 코리아 둘레길 거인산악회 시그널을 담았다. 선답자로써 나중에 도움이 될까해서다.

#11 부산공고앞

#11 부산 대연동 재개발지역 현장- 주변은 이사후 버려놓은 온갖 쓰레기들이 가는길을 막고 있다.

#12 갈맷길 안내판에서-문현4동파출소 앞

#13 문현동 곱창골목 표지판에서

#14 부산진성-부산진성은 신동국여지승람에 부산포성(富山浦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석성으로 둘레 511.8m, 높이 4m라고 했다.임진왜란 때 부산첨사(釜山僉使) 정발(鄭撥)이 왜군의 선봉과 싸워 장렬하게 전사한 첫 격전지로서 1592년(선조 25) 음력 4월 13일 일본의 조선원정군 제1진 1만 8700여 명이 부산 앞바다에 쳐들어오자 정발은 부산진성을 굳게 지켰다.왜적은 14일 새벽 짙은 안개를 틈타 지금의 우암동쪽으로부터 일시에 상륙하여 부산진성을 포위한 뒤 삼면으로부터 공격을 개시하였다.이에 정발은 성 안의 군민과 더불어 끝까지 항전하다가 전사했으며 마침내 부산진성은 함락되었다 한다. 현재 부산진성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며 자성대(子城臺)라고 부르는 부산진지성만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15 정공단-‘정공단’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부산진성을 지키며 군민과 함께 일본군과 싸우다 성과 운명을 같이한 부산첨사 정발(鄭撥)과 그를 따라 순절한 군민들의 충절을 기리는 제단이다.
단의 중앙에는 ‘정공단(鄭公壇)’이라고 새긴 비를 세우고, 서쪽에는 정발의 막료였던 이정헌(李庭憲), 동쪽에는 정발의 첩인 애향(愛香), 남쪽에는 군민들을 모셨으며, 남쪽 층계 밑에는 충직한 노복이었던 용월(龍月)의 단이 마련되어 있다.
1766년 부산첨사 이광국이 이들이 순절한 장소인 부산진성의 옛터에 이 제단을 만들었다.

#15-1 동구 "독립운동을 기억하다" 기념관 앞

 

#16 급경사지를 실어나르는 삭도

 

#17 증산공원-증산 공원부산광역시 동구 성북로 36번길 46번에 있다. 증산이라는 지명은 산의 모양이 시루와 가마솥처럼 생긴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부산’이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공원은 24시간 사용이 가능하며, 주변에는 자성대 공원, 만리산 체육공원, 전포 돌산 공원, 부산 중앙 부두 등이 있다.

#18 아란자사

#19 구봉산 치유숲길 입구

#19-1 오늘 최종점인 부산대교가 저 멀리서 가물가물하다.

#20 유치환 우체통- 글을 써서 넣으면 1년후에 배달된다고 하지만 전국에 엄청 많이 설치되어 있다.

#21 산복도로 이바구길 주차장

#22 168계단과 삭도- 경사도가 60도를 넘는 좁은 길을 예전엔 오를려면 많은 땀과 수고를 해야하지 싶다. 지금은 삭도가 설치되어서 쉽게 오를수가 있어서 편리해진것 같다.(중:내리막길  하:오르막길)

#23 초량교회-1892년 11월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William M. Baird)에 의해 부산에서 최초로 설립된 교회이다. 교회설립 초기에는 교인들이 스스로 예배를 인도했다고 한다. 1912년 한득룡 목사가 초대목사로 시무했고, 1913년 김주관이 장로로 장립되면서 당회가 조직되었다. 1915년 정덕생이 제2대 목사로 부임했고, 1926년 제3대 목사로 주기철 목사가 시무하면서 일제에 대해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6·25전쟁 때는 서울 남대문교회와 합동으로 예배하기도 했다. 반송교회·초락교회·반여동교회 등을 개척했고 브라질·일본·나이지리아 등에 선교사를 파견하기도 했으며, 1972년 교회설립 80주년을 맞아 교육관을 신축하고 〈초량교회 80년사〉를 발간했다.

#24 초량 이바구길 입구에서

#25 부산역- 아침에 택시 잡아타고 여기서 출발했는데 많은 시간이 지난후에 원점으로 복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