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11. 16:23ㆍ팔공산 자락
如 犀 角 獨 步 行
>>>도덕산 오르기<<<
0. 일시: 2025. 11. 11.(화) 09:38 - 13:31 (3시간 53분) * 단독 (휴무일)
0. 코스: 공산동주민센터-나팔고개(지묘동)-왕산(191봉)-363봉-명밭봉-응해산-덕산-도덕산-대왕재
0. 거리: 11km
올해 1.18일 운암지로 종주할때 올랐던 도덕산. 10월부터 도덕산 자락 아래에서 산을 지키고 있어 주변산이 궁금한 차에 낙엽을 벗 삼아서 산을 오른다. 파계사를 마주보고 있는 응해산과 도덕산을 오르니 따뜻한 날씨탓에 이마엔 땀이 수시로 흘러 내린다.응해산 주변 급오름길과 도덕산 급오름길이 산꾼을 지치게 만든다. 계절이 11월인지라 산로엔 많은 단풍 낙엽이 즐비하다. 언뜻 중국노래 "心在故鄕"이란 노래가 생각난다.간혹 돌(石)이 보여 발목조심이 급선무인것 같아서 앞을 응시하면서 걷는다. 응해산을 오르는 급오르막길은 늘 힘이 든다(덕곡3거리에서 올라서면 만나는 지점).금방 끝이 날것 같지만 하늘을 처다보면 아직도 아직도....이다. 그래도 하루종일 단풍속으로 빠져드는 자연미에 심취한 아름답고 즐거운 산길인 것 같다. 늘 산을 타는것은 즐거움과 행복감을 만들어 주는듯하다.ㅎㅎㅎ
# 들머리 나팔고개- 지묘동 팔공 보성3차 아파트 건너편에 자리잡은 고갯마루로 지금은 고갯마루인지 분간이 어렵다.나팔고개는 공산전투(서기 927년) 당시 견훤에게 포위되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왕건이 팔공산 일대에서 벌어진 최악의 전투사로 후퇴하는 왕건의 군대를 에워싸고 포위망을 좁히면서 나팔을 불며 진격해서 '나팔고개'라는 설과 왕건군이 무태를 지나 6km정도를 행군할때 정예기병 5,000명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나팔을 불었다는 설로 왕건은 신숭겸과 김락장군 등의 결사항전 충의로 탈출에 성공 공산전투의 패배를 교훈삼아 고군분투 후삼국을 통일해 500년 고려왕조를 세운 위대한 건국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안내석의 적힌 글)

# 왕산(191m)-왕산은 이곳 말고도 신숭겸유적지 뒷편도 왕산이라 일컬어진다.

# 싸리나무 단풍속으로 퐁당 빠저든다.

# 363봉- 뒷편(연경지역)엔 연경LH2단지 아파트가 지척에서 보인다. 출발후 2.4km 47분 경과

* 25.1.18.도덕산-함지산 종주때의 한장

# 반가운 이정표-도덕산이 4.5km남았다.

# 명밭봉(353m)-아래 명밭골 마을이 있어선지 이름이 명밭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전에 없었던 준희님의 표시판이 곳곳에 걸려져 있어 산을 타는데 많은 참고 자료가 되고 있다.(감사)


# 응해봉(518.2m)- 응해봉을 올라서는데 10여 분간 큰 힘이 필요한것 같다. 출발후 4.9km 1시간 50분 경과

# 덕산재-건너편 도로에서보면 평평하게 보이는곳이지만 오름과 내림이 심한지역인데도 농부가 농사를 하고 있다. 우측으로 내려서면 송정동 심천랜드로 내려가는 길목인것 같다.

# 파계로 빛명상이 가물거리면서 보인다.

# 도덕산(660m)- 오늘 오르는곳 중 제일 높은 봉우리다.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출발후 7.5km 3시간 5분 지점 전국에 도덕산은 여러곳에 있는듯하다. 이곳 경주안강,경기안성,대구동구(경북칠곡)...


# 전국에 있는 도덕산(위:안성 우:경주 안강 하:대구동구)

# 대왕재(현)-대구 동구 덕곡동과 칠곡 동명면 경계지대에 위치한 대왕재는 고려 태조 10년(서기 927년) 신라가 후백제 견훤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하자 이를 구원하기 위해 출병했던 왕건의 기병 5,000명이 여기서 숙영했다고하여 대왕재라고한다. 또한 조선 숙종은 왕자가 없어 성전암 농암 스님께 기도를 부탁해서 숙빈 최씨께서 왕자를 탄생하니 이분이 조선 제21대 영조대왕이시며, 파계사로 행사하실때 이 재를 넘었다고 해서 대왕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 숙빈최씨-최씨(崔氏1670.12.17.-1718.4.9.)는 7세에 궁에 들어가 침방나인(針房內人)으로 궁녀생활을 시작했다. 영조(英祖)는 세자 시절 어머니로부터 침방일 중에서 누비옷 만드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말을 듣고 왕이 되어서는 절대 누비옷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1692년 숙종의 승은을 입어 1693년 아들을 낳았으나 곧 죽었고, 1694년 숙의(淑儀/종2품)가 되어 9월 13일 연잉군(延礽君/昑) 영조(英祖)를 낳는다. 1698년에는 숙빈(淑嬪/정1품)이 된다.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閔氏)와는 친분이 두터웠으며 왕후 사후 숙종(肅宗)에게 희빈 장씨(禧嬪張氏)의 저주굿을 발고하였다. 평소 공손해 숙종이 애중히 여겼다 한다. 1716년에 병환이 들어 왕명으로 사가(私家)로 나가 치료하며 3년 동안 머물다 49세에 죽었다라고 전한다. 한때 2010년 MBC드라마 "동이"의 동이가 숙빈최씨의 일대기를 드라마화한것이다.
숙빈 최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더 자세한것은 싸이트 참고)
*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閔氏, 1667년 5월 15일(음력 4월 23일)-1701년 9월 16일(음력 8월 14일))는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으로 여양부원군 민유중과 은성부부인 송씨(송준길의 딸)의 차녀(次女)이다. 가문의 당적은 부계·모계 모두 그녀의 외조부인 송준길이 효종~현종 때 당수로 군림했던 서인 산당(山黨)이었으나 그녀가 왕비가 된 해이기도 한 1681년(숙종 7년)에 발생한 노소분당으로 노론이 됐다. 조선의 유일한 생존시 복위된 왕비로 1689년(숙종 15년) 음력 5월 2일에 폐비되었다가 1694년(숙종 20년) 음력 4월 12일 삼불거로 이혼이 취소되어 자동 복위되었지만 집권당인 소론의 반발이 극심하여 음력 6월 1일 새로이 책비례를 올리고 왕비로 등극했다. 1700년(숙종 26년) 3월에 발병한 괴질로 투병하다가 1701년 음력 8월 14일에 창경궁 경춘전(景春殿)에서 승하했다. 이 여파로 무고의 옥과 신사환국이 발생하여 그녀의 오랜 연적(戀敵)이었던 희빈 장씨가 자진했으며 가문의 정적(政敵)인 남인·소론이 큰 화를 입었다. 무덤은 서오릉 중 하나인 명릉(明陵), 시호는 효경숙성장순원화의열정목인현왕후(孝敬淑聖莊純元化懿烈貞穆仁顯王后)이다.
*무고의 옥(巫蠱-獄) 또는 신사옥사, 신사환국- 1701년(숙종 27) 희빈 장씨가 취선당에서 인현왕후를 저주했다고 알려진 사건으로 이 무렵 남인들이 서인들을 몰락시키기 위해 희빈 장씨의 친정아버지 장형의 묘역을 일부러 파헤치고 비석을 훼손하여 물의를 빚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숙종은 희빈 장씨의 자결을 명하고, 장희재 등은 처형되었으며 남인의 당원인 이현일, 이서우 등은 파직되고, 이미 죽은 허목, 윤휴, 윤선도 등의 관작은 추탈당했다. 일명 신사대출척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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