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30. 20:08ㆍ산따라 길따라
如 犀 角 獨 步 行
>>>통도사 19암자 돌아보기<<<
0. 일시: 2020.5.30.(토) 8:21~16:02 (7시간 41분) *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 / 단독
0. 순례: 영축산문-관음암-보문암-무량암-축서암-비로암-백운암-극락암-반야암-서축암-금수암-자장암-
사명암-백련암-옥련암-서운암-수도암-안양암-통도사-취운암-보타암-영축산문
0. 거리: 20.1km
불기 2564년 부처님 오신날이다. 석가의 고행길. 난 통도사 19암자 순례로 고행을 해보고자 아침 일찍 애마에 시동을 건다. 통도사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차량들이 통도사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여장을 준비해서 관음암으로 향한다. 입구 중간 중간에 이정표가 좀 있으면 좋으련만 없으니 갔다왔다를 몇번이고 한다. 때마침 창원에서 온 산꾼들이랑 합세해서 축서암까지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면서 간다. 안 그랬으면 보문암과 무량암을 지나칠뻔했다. 많은 암자들이 있지만 또한 많은 신도들도 붐빈다. 19암자중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백운암에서 조금의 시주도하고 음료도 얻어 마신다. 구석 구석에 산재되어 있는 암자를 아스팔트 포장길을 걸으니 나중엔 발바닥이 따가우리만큼 아프다. 다 돌고 나서 마지막 취운암을 찾을때가 좀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19암자를 순례를 마쳤다는 마음하나가 있으니 기쁘기 그지없다. 통도사19암자 순례 힘들지만 한번을 걸어볼 가치가 있는듯하다.
# 영축산문- 이곳을 통하여 통도사로 진입하지만 19암자 순례를 위해 우측으로 관음암 방향으로 진행한다.
1. 관음암- 부처님 오신날이라 암자마다 많은 사람소리로 가득하다.
2. 보문암- 사람이 사는 절인지 조용하기만 하다. 이절하고 금수암은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3. 무량암(무량수전)-일반 한옥같은 절이라서 잘못하면 빠트린뻔했다.
4. 축서암-통도사의 울타리 밖에 있는 4곳의 암자(관음암, 보문암, 축서암, 무량암) 중 하나이다. 통도사에서 북서쪽으로 3㎞ 떨어진 지점에 있다. 1711년(숙종 37) 창건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863년(철종 14) 중수한 것이라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사찰 명은 영축산의 옛 이름이 '축서산'이어서 옛 산이름을 회상하여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절은 남향으로 세워져 햇볕이 잘 들고 주위가 평평하여 편안한 느낌을 준다. 선화가(禪畵家)로 유명한 수안(秀眼)스님께서 주석하셨으며, 현재는 산중원로이신 초우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신다. 제법 암자라고 하긴 넘 큰절이다. 영축산을 배경으로 잡고 있어 풍광도 멋지다.
# 축서암3거리- 비로암과 영축산으로 갈라지는 곳인데 비로암 방향으로 진행한다.
# 비로암 진행중의 아름드리 소나무랑 한장.
# 산 다람쥐-산꾼을 환영한다고 영접 나왔네..ㅎㅎ 그러나 아무것도 積善할게 없다.(미안 람쥐)
# 영축산으로 올라가는 3거리 부근으로 비로암이 거의 다 와가는 지점
5. 비로암-극락암에서 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암자로 1345년(고려 충목왕 원년) 영숙대사(靈淑大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후 1578년(선조 11) 태흠대사(太欽大師)가 중건하였고 다시 근래 원명화상(圓明和尙)이 중수를 하였다. 암자에서 서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는 통도사8경 가운데 하나인 비로폭포가 있다고 하는데 어느 폭포가 비로폭포인지 알수가 없다. 차량들이 여기까지 올라오니 차량과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 백운암 주차장- 892년(신라 진성여왕 6) 조일(朝日)스님께서 창건했으며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810년(조선 순조 10) 침허(沈虛)스님께서 중창하고, 1970년대에 경봉(鏡峰)스님께서 후원하여 사세를 크게 확장하였다. 통도사의 여러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예로부터 수도처로 유명했으며, 특히 만공(滿空, 1871∼1946)스님께서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는 등 여러 고승스님들의 일화가 전한다. 6보능선까지 찻길이 만들어져 있어 산사를 찾는 이들은 편하게 오를 수가 있을터,,,그러나 여기서 800미터의 거리가 급오르막에 암릉길이어서 오르는데 만만찮고 힘을 많이 소모하게 만든다.
6. 백운암- 19암자중 제일 높은 산에 위치한 암자지만 신도수가 상당하다. 조금 시주를 하고 떡이랑 차 그리고 수박을 얻어 먹고 하산길로 접어 든다.
# 극락암 앞에 있는 꽈배기 소나무랑
7. 극락암-통도사에서 서북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극락암은 근현대의 고승인 경봉(鏡峰) 스님이 주석하셨던 곳으로 유명하다. 1344년(고려 충혜왕 복위 5)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창건주는 알 수 없다. 그 뒤 1758년(영조 34) 지홍대사(智弘大師)가 중건하였으며 1968년 이후 가람 전체를 경봉스님이 중건ㆍ중수하였다. 선방인 호국선원(護國禪院) 앞에는 영월루(暎月樓)가 있고 연수당(延壽堂)ㆍ수세전(壽世殿)ㆍ독성각(獨聖閣)과 함께 33조사(祖師)의 영정을 봉안한 조사당(祖師堂)이 있다. 경봉스님의 거처였던 아담한 삼소굴(三笑窟)과 함께 암자로서는 매우 큰 규모이다. 그리고 암자 입구에 있는 ‘극락영지(極樂影池)’는 영취산의 봉우리가 비치는 연못으로 유명하며, 연못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홍교(虹橋)와의 조화가 아름답다.
8. 반야암- 백운암으로 오르는 길 오른쪽으로 난 골짜기 끝에 자리잡고 있다. 1999년 승려 지안이 창건하였다. 울창한 산림에 둘러싸여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경내에는 법당인 반야보전(般若寶殿), 청향정(淸香亭), 세진정(洗塵亭)이 들어서 있다. 반야보전 현판은 지안스님께서 썼으며 내부에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영축산에서 바로 내려오는 곳에 위치하여 길을 따라 내려오면 한 참을 들어갔다와야한다.
9. 서축암- 자장암으로부터 150m 정도 떨어진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1996년 수련화보살과 월하스님, 원행스님께서 정성을 모아 창건하였다. 경내에는 인법당((因法堂:법당을 따로 두지 않고 스님께서 거처하시는 방에 불상을 모시는 절) 형식의 대웅전과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앞에는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유명한 다보탑과 석등이 세워져 있으며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다.반야암을 내려와서 아스팔트 길을 한참 걸었더니 쑥 나타난다. 절의 뒷 배경이 넘 아름답다.
10. 금수암- 세심교를 지나 자장암으로 가는 길에 있다. 수행도량이어서 보통 때는 철문으로 닫혀 있으며 인적이 없어 조용하다. 철문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사찰 입구가 나온다. 정갈한 경내에는 법당과 팔각정자, 석탑, 석등 등이 배치되어 있고 마당은 아름다운 조경수들과 잔디로 장식되어 있다. 법당은 5칸 규모의 건물로서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이 봉안되어 있고 법당 앞에는 다양한 석물이 세워져 있다. 팔각정자는 유리문으로 둘러져 있어 안에 있으면 금수암 경내 전체를 살펴볼 수 있다. 기도도량이라고만 적혀 있지만 사람 소리를 들을수가 없다. 힘들게 올라갔는데 실망.....
# 자장암 입구에 있는 누런 보리밭에서 자세를 잡아 본다. 누런 보리밭 참 오랫만에 보는 듯하다.
# 백팔번뇌~~~아름다운 계단도 있다.
11. 자장암과 마애불-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부속 암자이다. 자장율사(慈藏律師)가 통도사를 짓기 이전에 이곳의 석벽 아래에서 수도하며 창건하였다. 그 뒤 연대는 미상이나 회봉(檜峰)이 중건하였고, 1870년(고종 7)에 한 차례의 중수를 거쳐 1963년에 용복(龍福)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전체 건물은 5동 23칸이다. 법당은 4칸의 조그마한 인법당(因法堂)이며, 법당 왼쪽에 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자장전(慈藏殿)과 독성각(獨聖閣)이 있고, 법당 오른쪽에는 요사채가 있으며, 암자 입구 쪽에는 최근에 지은 선실(禪室)이 있다. 법당과 자장전 사이에는 높이 약 4m의 거대한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데, 통도사 산내에서는 유일한 마애불이며, 1896년에 조성했다는 기록이 암벽에 새겨져 있다.이 암자에 대하여 불교도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금개구리이다. 법당 뒤쪽에는 암벽에서 맑은 석간수(石間水)가 흘러나오고, 그 위의 석벽에는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 있다. 자장율사가 수도하고 있을 때 두 마리의 개구리가 물을 혼탁하게 하므로 신통력으로 석벽에 구멍을 뚫고 개구리를 들어가게 하였다고 전한다. 현재에도 있는 한 쌍의 개구리는 몸이 청색이고 입이 금색인데, 벌과 나비로도 변신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개구리는 절대로 산문(山門) 밖을 나가지 않는다고 하므로, 한때 어떤 관리가 그 말을 믿지 않고 개구리를 잡아 함 속에 넣고 봉한 다음 손에 쥐고 돌아가다가 도중에 열어 보니 없어졌다고 한다. 이 금개구리는 많은 설화를 남기고 있으며, 많은 참배객들이 보살이라고 부르면서 친견(親見)하고자 한다. 그러나 암혈 속의 개구리를 보는 사람도 있고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서 이로써 불심(佛心)을 측량하기도 한다.
# 자장암 일주문
# 자장암의 아름다운 계단과 원형문
# 자장암의 자연미를 발산하고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속에 산꾼이 팍 딸려들어가는 느낌이다.
# 자장암과 금수암 이정표석
# 마른 나무가 아래서 나무끝까지 하얀 버섯이 주렁주렁 달렸다.
# 사명암앞 이정표(13암자)
12. 사명암- 서운암에서 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로 사명대사(泗溟大師)가 이곳에 모옥(茅屋)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의 금강계단을 수호한 곳이라고 한다. 1573년(선조 6)에 사명대사(泗溟大師)를 흠모(欽慕)한 이기(爾奇)ㆍ신백(信白) 두 스님이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암자는 아늑하고 연못엔 물고기도 노닐지만 산꾼은 혼자서 새가 나도록 걷고 또 걷는다.
13. 백련암 앞- 사명암에서 남쪽 숲 속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로 주위에는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창건은 1374년(공민왕 23) 월화대사(月華大師)에 의해 이룩되었고, 1634년(인조 12) 현암대사(懸岩大師)가 중건하였다. 법당의 현판은 백련사(白蓮舍)라고 하였으며 대한제국 말기에는 남방의 선찰(禪刹)로서 유명하였던 곳이다. 靑山은~~~나옹선사의 시가 암각되어 있다.(원시는 맨 끝부분)
# 백련암과 옥련암 중간에 있는 3개의 돌탑
14. 옥련암- 백련암에서 동쪽으로 나지막한 언덕 위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이다. 1374년(공민왕 23)에 쌍옥대사(雙玉大師)가 창건하였으며, 1857년(철종 8)에 호곡(虎谷)ㆍ청진(淸眞) 두 대사가 중건하였다. 사찰 내에 전하는 이야기로 옛날 이 옥련암에 ‘장군수(將軍水)’라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장군수를 매일 마시는 옥련암 스님들은 힘이 굉장히 세어서 큰절의 스님들이 당하지를 못했다. 하루는 큰절의 스님들이 가만히 의논하여 몰래 장군수 우물을 메우고 그 물길을 딴 곳으로 돌렸다. 그 후부터는 옥련암에는 힘센 스님들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마당앞엔 약수터가 자리잡고 있어 많은 신도들이 물을 받아가기가 바쁘다. 여기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운다.
# 옥련암과 백련암3거리 이정표 석
15. 서운암(장경각)-서운암 장경각은 조자기로 만든 대장경을 16만 484장을 보관하고 있다.서운암의 성파스님이 11년간 도자 대장경을 구워서 장경각안에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장경각의 건물을 본면 가둥등의 목재가 짙은 갈색을 띠고 있다. 이 것은 건물 전체의 목재를 옻칠을하여 도자 대장경을 보관하고자 하는 어려운 불사를 하여 후세에 문화 유산으로 물려주고자 하는 것이다.넓고 넓은 암자엔 서재를 보관하는 장경각도 있고 된장을 담는지 많은 항아리가 보인다.
# 구절초가 절을 가득 메우고 있다.
16. 수도암- 입신양명 조그만한 절이지만 신도가 제법 보인다. 커피한잔을 얻어 먹고 잠시 쉰다.
17. 안양암-안양암은 통도사8경 가운데 하나인 안양동대(安養東臺)에 위치한 암자이다. 1295년(고려 충렬왕 21) 찬인대사(贊仁大師)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며, 1865년(고종 2) 우담대사(雨潭大師)가 중창하였다. 그 후 현대에 와서 1968년 우송화상(友松和尙)이 중수하였다. 안양(安養)은 곧 극락세계를 뜻하므로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는 암자이다.통도사 본관 남쪽 산 기슭에 위치하고 수도암과는 통도사 중간 지점 정도에 아늑하게 자리잡았다.
# 통도사-한국 3대 사찰의 하나로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있어 불보(佛寶)사찰이라고도 한다. 통도사는 삼국유사 등의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통도사의 이름은 절이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하므로 통도사라 이름했고(此山之形通於印度靈鷲山形), 또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이 계단(戒壇)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했으며(爲僧者通而度之), 모든 진리를 회통(會通)하여 일체중생을 제도(濟道)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경내의 건물들은 대웅전과 고려 말 건물인 대광명전(大光明殿)을 비롯하여 영산전(靈山殿)·극락보전(極樂寶殿) 외에 12개의 법당과 보광전(普光殿)·감로당(甘露堂) 외에 6방(房), 그리고 비각(碑閣)·천왕문(天王門)·불이문(不二門)·일주문(一柱門)·범종각(梵鐘閣) 등 65동 580여 칸에 달하는 대규모이다.
이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1년(선조 34)과 41년(인조 19) 두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는데 대광명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근세의 건물들이다.통도사에는 자장율사가 당나라로부터 모셔온 부처님의 전골진신사리와 치아사리와 부처님께서 친착하셨던 가사와 창건주이신 자장율사 스님의 가사가 보관되어 있어 유명하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금강계단에 봉안되어 이의 정면에 자리잡고 있는 대웅전에는 불상이 봉안되지 않았다. 통도사는 문화제를 살펴보면 대웅전이 국보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 보물 제334호인 은입사동제향로(銀入絲銅製香爐), 보물 제471호인 봉발탑(奉鉢塔)이 있고, 보물전시관에는 병풍·경책(經冊)·불구(佛具) 및 고려대장경(해인사 영인본) 등의 사보(寺寶)가 소장되어 있다.
18. 취운암- 취운암은 보타암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로 통도사의 대웅전을 짓고 남은 돈으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1650년(효종 1) 우운대사(友雲大師)가 처음 창건하였고, 1795년(정조 19)에 낙운대사(洛雲大師)가 중건하였다. 그 후 1969년 태일화상(泰日和尙)이 다시 중수하였다. 근래까지만 해도 취운암 법당 뒤쪽에는 역대 고승들의 부도가 즐비하게 서 있었으나, 지금은 통도사 부도전으로 모두 이전되었다.통도사 본관에서 서쪽 산 속에 있어 찾기가 어렵지만 규모는 광대하다.
19. 보타암- 19암자의 마지막 암자다. 한바퀴를 걸었더니 발바닥이 불이 난다. 시멘트 아스콘 도로는 걷기는 편하지만 몸에는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 도로인것 같다.
# 통도사 영취총림
# 여러 종류의 시들이 암각되어 설치되어 있어 눈이 이쪽으로 가꾸 가게 만든다.
靑山兮要我
-나옹선사-
靑山兮要我以無語 蒼空兮要我以無垢
聊無愛而無憎兮 如水如風而終我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蒼空兮要我以無垢
聊無怒而無惜兮 如水如風而終我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 놓고 탐욕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