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축지맥3구간(만어산-청룡산-낙동강)

2020. 12. 5. 19:37지맥산행/영축지맥-완주

如 犀 角 獨 步 行

>>영축지맥 3구간<<<

0. 일시: 2020. 12. 5.(토) 07:39 ~ 15:10 (7시간 31분/휴식: 1시간) * 이*성

0. 구간: 가물리재-608봉-만어산-547봉-솔티재-청룡산-새나루재-미전재-삼랑진터널상부(경부고속도로)

          -거족재-231봉(무월산)-밀양삼강비-삼랑진 철교 낙동강 합수점

0. 거리: 17.4km(총: 51.3km 지맥:17.4km 합계: 51.3km 진행: 100%)

   날씨가 넘 차갑다. 영축지맥 마지막 구간을 위하여 새벽같이 애마를 몰아본다. 현지에 도착했을 무렵 해무리가 보이는듯 해가 솟아오를려고 주변이 붉게 물들어온다. 여장을 준비하고 출발지인 가물리재로 향한다. 오늘 우리가 진행하는 이곳 산 주변은 임도가 많이 만들어져 있다. 첫 봉우리인 만어산 정상 부근까지도 임도가 연결되어 있다. 정상에서 주변을 보니 밀양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진행하는 구간구간 잡목이 많고 일부는 길이 끊어저 있어 진행에 애를 먹는다.말그대로 악전고투 산길이다. 게다가 낙엽이 산길에 많이 쌓여 있어 급 내리막을 내려갈때는 엄청 미끄러워서 조심스럽다. 힘들게 삼랑진 철교까지 도착하니 마침 우등열차가 굉음을 내면서 지나간다. 낙동강물은 말없이 흘러가고 햇빛도 강물에 반사되어 완주를 축하해주는듯 아름다움 보여준다. 이렇게 영축지맥 51여 km를 마무리한다. 같이 한 산꾼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 만어산 정상(670.4m)- 만어산 정상보다 바로 아래에 있는 만어사가 유명한 지역인것 같다. 절 아래 많은 돌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1 초입지 가물리재- 차에서 내리니 귀가 시릴만치 춥다. 얼른 준비하여 산으로 냅다 마루금으로 달리뺀다.

#2 산벚꽃나무와 소나무가 붙어 있는 연리지 나무도 구경하고--

#3 오늘 첫 임도이자 주변 조그마한 암자도 보인다.

#4 만어산 정상(670.4m)- 밀양시내와 영남알프스 산군들이 한눈에 쏘옥 들어오는게 조망이 넘 좋다. 시간이 허락되었으면 아래 만어사도 구경하는건데 아쉽다. 출발후 1시간정도 경과.

#5 만어산 주변 바위랑 소나무-산위에서 쓰레기를 얼마나 버리고 가면 저렇게 표지판을 붙여 놨을까를 생각하니 의식 수준을 가늠해 볼수가 있는것 같아 못내 서글퍼진다. 산을 즐기면 발자국외엔 아무것도 남겨 두면 안되는데...

* 소나무가 하늘로 승천하듯이 S자형태를 이루고 있는게 아름답게 보인다.

#6 갈라진바위- 정상 주변의 갈라진 바위에서 흔적을 남긴다.

#7 만어현이자 임도시설 건립 안내판

#8 만어봉

#9 솔티고개- 이곳으로도 차가 올라오는지 산 임도엔 교통 표지판까지 설치되어 있는게 신기하다.

#10 활공장- 뒤로 밀양시가지가 한눈에~~

#11 청룡산(354m)

#12 미전고개- 한국전쟁 당시 아픈 상흔이 남아 있는곳이라는 안내판에 잠시 묵념을 해본다. 물론 죄를 지은 사람도 있거니와 죄없이 죽은 사람들이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13 327봉

#14 196봉

#15 거족마을 앞 거족고개

#16 무월산(229봉)- 봉우리 이름을 글로 적어 시그널을 걸어 두고 온 흔적을 남긴다.

#17 낙동강과 밀양강의 합수점인 삼랑진 철교 부근

 

#18 영축지맥의 완주를 축하라도 하듯 낙동강 석양이 강물에 반사되어 더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넘 좋다. 나중 잔차를 타고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내달릴때도 여길 지나지 싶다.(부산-대구-괴산-여주-서울-인천아라뱃길 400여km)

 

#19 일명 콰이강의 다리로 소문이 난 삼랑진 철교 하단의 다리 교각

#20 철교위론 진주(경전선)으로 가는 우등열차가 굉음을 내면서 손살같이 지나가지만 낙동강물은 아랑곳 않고  말없이 조용하게 흐른다.

#21 밀양 삼강사비 -삼강사비(三江祠碑)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06호로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에 있으며,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문인(門人)이었던 여흥(驪興) 민씨(閔氏) 5형제의 두터웠던 효성과 우애, 학문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민씨 5형제는 욱재(勗齋) 구령(九齡), 경재(敬齋) 구소(九韶), 우우정(友于亭) 구연(九淵), 무명당(無名堂) 구주(九疇), 삼매당(三梅堂) 구서(九敘)를 말한다. 형제들은 1510년(중종 5)에 옛 삼랑루(三浪樓)가 있던 이곳에 정자를 짓고 함께 살면서,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기며 두터운 우애와 고결한 행동으로 이름을 남겼다. 형제들의 효성과 우애가 알려져, 조정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천거하였으나 끝내 사양하였다. 그 정신을 기려 정자를 ‘오우정(五友亭)’이라 이름하고 그 정자를 기리는 시[정찬사운(亭贊四韻)]를 지어 후세에 남기도록 하였다.그 후 1563년(명종 18)에 이 지역의 선비들은 정자 내에 오우사(五友祠)라는 사당을 지어 봄, 가을로 제례를 지냈으며, 따로 비석[기적비(紀績碑)]을 세워 형제들의 효행과 우애를 귀감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정자와 사당 및 비석뿐만 아니라 형제들이 남긴 문장과 저서 등도 대부분 불타버려 그들의 삶을 되새길 만한 자료가 거의 사라져 버렸다그러다가 1702년(숙종 28)에 다시 서원(書院)을 짓고, 1775년(영조 51)에는 현재의 비석[삼강사비(三江祠碑)]을 세움으로써 형제들의 효행과 우애를 후세에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비문은 정암(靜菴) 민우수(閔遇洙)가 짓고, 글씨는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가 썼다.(펀글)

#22 영축지맥의 최종점인 낙동강 삼랑진 철교(P3)에 접하면서 50여 km를 산행길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