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9. 21:35ㆍ대한민국 山/충청도
☞☞☞대전 장태산 & 공주 갑사☞☞☞
0. 일시: 2016. 11. 9.(수)
0. 코스: 장태산 휴양림(대전 서구) & 공주시 甲寺
0. 거리: 7km정도(장태산: 4km 갑사: 3km)
메타스콰이어가 온 산에 자리를 차지한 대전 서구에 있는 장태산 주변은 방문객을 환영이라도 하듯이 온 천지가 노랗게 물들었다. 메타스콰이어,떡갈잎,단풍잎,은행잎,그리고 이름모를 무수한 잎들이 가을의 풍취를 풍기듯 그림을 그려놓았다. 그리고 단풍과 운치를 같이하는 입구의 호젓한 호수까지~~장태산은 대한민국의 메타스콰이어를 전부 다 옮겨 놓은듯 온 산을 덮고 천지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곧게 자란 나무가 하늘을 찌르고 그 나무사이로 스카이웨이길을 만들어 더 가깝고 더 높게 나무에 접근토록 많은 신경을 쓴 것 같기도하고~~ 흔들림이 심하지만 그래도 주변 풍치를 제대로 볼 수가 있었던 스카이웨이길과 장태산 단풍길,,, 계룡산엔 그렇게 갔지만 수필집에도 자주 나오는 갑사, 갑사는 첫 나들이다. 주변엔 엄청 큰 나무가 자리를 잡고 오는 사람들을 열심히 맞이하고 있고 뒤로 계룡산 문필봉,관음봉의 경치가 넘 아름답고 갑사를 감싸고 있는듯하다. 내 스스로가 갑사의 고목과 단풍 경치에 한참 동안 나 자신을 잃어버린듯 도취되고 있었다. 오늘 하루 단풍에 도취된 하루가 되었다.
#1 장태산 자연휴양림 표지석
#2 스카이웨이길
#3 스카이 웨이 전망대 -오르는데 빙글빙글 돌고 삐걱거리는게 꼭 넘어질것 같다. 그런지 많이 어지럽고 정신이 없다.
#4 휴양림으로 진입하는 코스의 단풍나무
#5 메타스콰이어 나무랑~~ 완존 매미가 붙은 격이다. 나무가 엄청 곧고 높다.
#6 장태산 휴양림 전시관
#7 전망대로 오르는 등산로엔 단풍과 낙엽으로 도로를 메우고 있다.
#8 장태산 전망대 형제봉 부근 정상
#9 형제산 정상- 모처럼의 정상 시판이 걸려 있다.
#10 뒤로 호수와 단풍의 수채화가 넘 아름답다.
#11 출렁다리 위
#12 장태산 팔마정-팔마정은 옛날 말8마리가 물을 마시던 곳이라고 해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3 또 다시 메타스콰이어 길
#14 공주 갑사 일주문에서--갑사는
#15 갑사 입구의 고목
#16 갑사 뒷편의 연리지나무 앞에서
#17 계룡갑사 현판
#18 갑사앞 고목들이랑
#19 입구의 은행나무 단풍이랑
#20 젊은이들에게 부탁하는글의 비
갑사는통일신라시대에는 오악(五嶽) 中 서악(西嶽), 고려시대엔 묘향산(妙香山) 상악(上嶽), 지리산 하악(下嶽)과 더불어 3악중(三嶽中) 중악(中嶽)으로 일컬어지는 명산 계룡산(鷄龍山)의 서편 기슭인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위치한 갑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적하고 400년 지나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이 부처님의 법을 널리 펼치고자 큰 서원을 세우고 사리보탑에 있던 부처님의 사리를 동서남북을 관장하는 사천왕들로 하여금 마흔여덟 방향에 봉안케 하였다. 이때 북쪽을 관장하던 다문천왕(비사문천왕)이 동방 남섬부주 가운데서도 명산인 계룡산의 자연 석벽에 봉안한 것이 지금의 천진보탑이다. 그 후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신라최초 사찰인 선산 도리사(挑李寺)를 창건(創建)하시고 고구려로 돌아가기 위해 백제땅 계룡산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이때 산중에서 상서로운 빛이 하늘까지 뻗쳐오르는 것을 보고 찿아가 보니 천진보탑이 있었다. 이로써 탑 아래에 배대(拜臺)에서 예배하고 갑사를 창건하였는데, 이때가 420년(백제 구이신왕 원년)이다. 556년(위덕왕 3년) 혜명대사가 천불전(天佛殿)과 보광명전(普光明殿) 대광명전(大光明殿)을 중건하고,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천여 칸의 당우를 중수하고 화엄대학지소를 창건하여 화엄도량의 법맥으로 전국의 화엄10대 사찰의 하나가 되어 국중대찰(國中大刹)로 크게 번창되었다. 887년(진흥왕 원년) 무염대사가 중창한 것이 고려시대까지 이어졌으며, 임진왜란 와중에도 융성하였으나 1597년 정유재란(선조 30년)으로 많은 전각들이 소실된 것을 1604년(선조 37년) 사승(寺僧) 인호 경순 성안 보윤 등이 대웅전과 진해당을 중건했고, 1654년(효종5년)에는 寺僧 사정 신징 경환 일행 정화 균행 등이 중수하였으며, 이 후에도 부분적인 개축과 중수를 거쳐 1875년(고종12년)에 대웅전과 진해당이 중수되고 1899년 적묵당이 신축되어 오늘에 전해지고 있고, 조선 후기 들어 새롭게 조성된 불상과 탱화 경판이 남아있다. 또한 갑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장 영규대사를 배출한 호국불교 도량으로도 유명한 유서 깊은 고찰로써 그의 활약상은 범우고 등에 잘 나타나 있다. 범우고 등에 따르면 영규대사는 갑사에서 출가하여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가 되어 항상 이절에서 주석하고 있었는데,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그 해 여름에 왜구가 청주지방까지 이르러 청주가 점거 당하자 이에 영규대사는 승려 700명을 엄격히 선발하여 승군을 일으켰으며 청주지방의 승려 300명도 참여한 1000명의 승군으로 홀로 싸웠다. 8월에 영규대사의 승군이 청주를 쳐들어가자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의병장 조헌과 합세하여 왜병과 싸워 청주를 되찿았다. 한편 금산에 있던 초토사 고경명 군대가 왜군에게 패전하여 왜적이 다시 창궐하고 전라도 지방으로 진격하려 하자 영규대사는 조헌과 함께 진격하여 곧바로 금산의 외곽에 진영을 갖추고 있을 때 왜병이 쳐들어와 조헌이 먼저 전사하였다. 사기가 떨어진 병사와 의병들이 전의를 잃고는 의병장 조헌이 이미 죽고 적은 더욱 기승을 부리니 물러섬만 같지 못하다고 퇴각하자는 간청이 있었으나 오히려 영규대사는 그들에게 조금도 굽히지 않고 죽게 되면 죽는 것이거늘 어찌 홀로 살겠다고 하겠는가라고 크게 호통을 치고는 흐트러진 전력을 다시 가다듬어 사력을 다해 종일토록 싸웠으나 그 또한 전사하였다. 이로써 최후의 한 사람까지 왜병과 싸움으로써 왜군의 호남침공을 끝내 저지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승병을 일으킨 것은 영규대사가 처음으로 그 뒤 전국 곳곳에서 승병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그의 충의를 포상하여 복국우세기허당일합대선사를 추증하고 당시의 뜻을 기리도록 갑사에 표충원을 세워 휴정과 유정,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셨다. (공주시 겨룡면 유평리에 묘가 있다.)
그리고 갑사는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부처님의 정법을 수호하고 수행도량으로써의 면모를 갖추고자 사천왕문 복원불사를 하였고, 법당 바로 앞에 위치한 강당을 충청남도와 공주시의 협조로 현 위치로 이전 불사함과 동시에 사물각(범종루)을 불사하였다. 백제 위덕왕 때 혜명대사에 의해 중건되었다 소실된 천불전을 최근 다시 건립하여 관음천불을 모셨으며, 다선일미(茶禪一味)를 음미하며 심신안정을 취할 수 있는 다반향초를 건립중이다. 국보인 삼신불괘불탱 보호전각 건립이 착공단계에 있는 등 크고 작은 많은 보수, 신축을 함으로써 갑사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또한 승병장 영규대사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영규대사 추모관 건립 또한 추진 중에 있다. 갑사는 岬寺, 岬士寺, 鷄龍甲寺 등으로 불리어 지다가 으뜸 또는 첫째란 뜻의 지금의 명칭은 18세기말 산 이름을 따서 鷄龍甲寺로 불리어지고 있고, 1911년 제정된 사찰령에 따라 마곡사의 首말사가 되었고 경내에는 15동의 불전과 승당, 부속 전각들이 있으며 주변 산골짝 여러 곳에 산내 암자를 두고 있다.
(출처: www.gapsa.org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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