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29. 20:13ㆍ산따라 길따라
>>>안동 나들이<<<
-선비길1코스(선 성수상길),월령교,임청각 고택-
0. 일시: 2018. 6. 29.
0. 코스: 선비길1코스(선 성수상 길),월령교,임청각 고택
오늘은 특별휴가날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해진곳 그러나 100여년전 일제 암흑기에 선조들이 독립을 위해 가산을 정리하여 만주로 떠나면서 남겨둔 석주 이상룡선생의 임청각을 보고자 안동으로 떠나본다. 물론 안동은 선비의 고장이라 그런 흔적들이 많지만 임청각은 특별한 고택임에 분명하다. 조선시대의 건물이지만 임란이나 한국전쟁때 소실되지 않고 남아 있는 건물중의 하나라고 한다.석주선생은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가산을 모두 팔아서 가족을 대리고 만주로 이주하여 만주에서 많은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가 및 가족으로도 유명하다.
그 기록은 손부(허은님)의 「아직도 내귀에는 서간도 바람소리」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1 선성현 한옥체험관 앞-총길이가1.2km, 폭 2.75m 규모로 설치된 상길은 수위 변화에도 물에 잠기지 않도록 부교(浮橋)형식으로 만들어 졌다. 이곳에서는 안동호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배를 타지 않아도 한가운데서 굽이치는 호수를 둘러싼 호안선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다리이지만 흔들림은 그리 많지가 않다. 입구엔 선성현 한옥체험관이 있지만 아직도 한창 공사중이다. 그러나 고택이 아니라 현세대의 집이라서인지 같은 나무집이지만 느낌이 새롭지가 않다.
#2 선 성수상길 입구-뒤로 안동호의 푸른물이 넘실거리지만 날씨가 장난이 아닐정도로 덥다.
#3 데크길을 배경 삼아서
#4 수몰지역인 예안국민학교 터 위-과거의 예안은 물속에 잠겼어도 수몰민들의 恨은 늘 고향을 찾게 만들것이다. 수몰지역의 한 지점을 보니 가슴이 멍 해온다.(이곳은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이전하여 학교를 열었으나 현재는 학생수가 적어 폐교되었다는 안내글이 보인다.)
#5 데크를 지나다보니 물속에 엄청 많은 잉어때가 客을 반긴다.
#6 월영교(안동댐 앞) 입구-2003년 개통되었으며 길이 387m, 너비 3.6m로 국내에서는 가장 긴 목책 인도교이다. 다리 한가운데에는 월영정(月映亭)이 있다. 월영교란 명칭은 시민의 의견을 모아 댐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가 이곳으로 온 인연과 월곡면, 음달골이라는 지명을 참고로 확정되었다. 낙동강을 감싸듯 하는 산세와 댐으로 이루어진 울타리 같은 지형은 밤하늘에 뜬 달을 마음속에 파고들게 한다. 천공으로부터 내려온 달을 강물에 띄운 채 가슴에 파고든 아린 달빛은 잊힌 꿈을 일깨우고 다시 호수의 달빛이 되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으려 한다. 월영교는 이런 자연풍광을 드러내는 조형물이지만, 그보다 이 지역에 살았던 400여년전의 어느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고자 했다. 먼저 간 남편을 위해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한 켤레 미투리 모양을 이 다리 모습에 담았다. 그들의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을 영원히 이어주고자 오늘 우리는 이 다리를 만들고 그 위에 올라 그
들의 숭고한 사랑의 달빛을 우리의 사랑과 꿈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6 월영정 앞-강 한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월영정
#7 원이엄마 테마길-월령정을 건너가니 데크길로 원이엄마의 내용을 기록해 놓았다.
'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는 1998년 안동시의 택지 개발 지구 현장에서 무덤을 이장하는 작업 중에 발견된 것으로 1586년 유월 초하룻날 안동에 살던 고성 이씨(固城李氏) 가문의 이응태(1556~1586)라는 양반이 3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자, 그의 아내가 죽은 남편에게 쓴 한글 편지이다.이 편지는 남편의 장례 전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쓴 것으로, 꿈속에서라도 다시 보고 싶은 죽은 남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한편 이응태의 무덤에서는 이 편지 외에도 글쓴이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 한 켤레가 발견되었는데, 이 역시 이 편지처럼 남편에 대한 아내의 절실한 사랑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응태의 무덤에서는 아내의 편지 이외에도 아버지가 아들 응태에게 보내는 편지와 응태의 형이 보내는 편지, 그리고 그의 아내가 만든 미투리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미투리를 쌌던 한지에 "이 신 신어 보지도 못하고……."라는 글귀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남편은 끝내 그 신을 신어 보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 버리고 말았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젊은 남편이 병석에 눕자 남편의 병이 낫기를 기원하면서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을 함께 엮어 정성껏 미투리를 삼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미투리'는 남편이 병석에서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의 표시이자 저승길을 갈 때 신기를 바라는 생사를 초월한 영원한 사랑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미투리는 짚신이 가지고 있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짚이 아닌 다른 재료를 가지고 짚신과 같은 형태로 삼은 신발을 말한다. 재료는 주로 삼, 닥나무, 칡넝쿨, 왕골, 면사 등을 이용해서 정교하게 만들었다. 미투리는 짚신과 함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신발이었지만 값이 워낙 비싸서 가난한 서민들은 잘 신을 수도 없었다. 짚신은 만들기도 쉽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아서 값도 쌌지만 미투리는 만들기도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렸으며 값도 짚신 열 켤레 값은 줘야 살 수 있을 만큼 비쌌다.
#8 월영정 아래로 돛단배가 손님을 태우고 지나가고 있다.
#9 고목으로 변한 벚나무랑~
#10 안동 임청각(安東 臨淸閣)-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82호 안동 임청각군자정으로 지정되었다가 2002년 9월 25일 안동 임청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독립운동가 이상룡(이명의 17대손)의 생가이다. 임청각은 형조좌랑(刑曹佐郞)을 지낸 바 있는 이명이 1515년(중종 10)에 건립한 주택이며,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의 집이기도 하다. 이 집은 영남산(映南山) 동쪽 기슭에 앉아 낙동강을 바라보는 배산임수한 명당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일제때 중앙선 철도부설 때 50여간의 행랑채와 부속채가 철거되어 현재의 규모로 줄어들기는 하였으나, 길에서 보면 맞담 너머로 보이는 웅장한 모습의 행랑채가 이 집이 소위 말하는 99간집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 중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보물로 지정된 군자정은 임청각의 별당으로 조선 중기에 지은 ‘丁’자 평면의 누각형 건물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중심은 남향의 대청이고, 그 서쪽에 이어서 지은 T자형의 온돌방이 부설되어 있다. 내부는 4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둘레에는 툇마루를 돌려서 난간을 세웠으며, 출입은 두 군데에 마련해 놓은 돌층계를 이용하게 되어 있다. 강릉 오죽헌(보물 제165호), 회덕 동춘당(보물 제209호), 안동 양진당(보물 제306호), 무첨당(보물 제411호), 향단(보물 제412호), 독락당(보물 제413호), 충효당(보물 제414호), 관가정(보물 제442호), 안동 소호헌(보물 제475호) 등의 경우와 같이 그 일원(一圓)을 보존하고자 2002년 9월 25일 종전 《안동 임청각정침군자정》(安東 臨淸閣正枕君子亭)에서 《안동 임청각》(安東 臨淸閣)으로 명칭 변경을 고시하였다.[1] 임청각은 영남산을 등지고 그 앞으로 낙동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으로, 지난 1942년 일제가 집 앞마당과 집 일부를 철거하고 중앙선 기찻길을 내는 바람에 현재는 규모가 70칸 정도로 축소된 채 낙동강 풍경과도 단절되어 있다.[2] 중앙선 선로와의 거리는 약 7 m이다.[3]
이에 따라 임청각은 복원 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 2014년에는 1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임청각 주변 시설정비에 나섰으며, 2016년부터는 4억 3000만원의 예산으로 보수 사업 등이 이뤄지고 있다. 중앙선 선로 역시 다른 쪽으로 내는 공사가 진행 중이며 안동역도 곧 이전할예정이다., 빠르면 2020년까지 임청각의 옛모습을 다시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펀글) 주)이명( 1496~1572)은 조선의 문신이며, 명종 때 좌의정을 지냈다.
#11 국무령 석주 이상룡선생의 생가 입구
#12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통일신라시대 칠층전탑으로 높이는 17m, 기단부 7.5m이다. 이 일대의 지명을 법흥리라 부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에 창 건되었다는 법흥사(法興寺)에 세워진 전탑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1487년(성종 18)에 개축된 바 있다. 기단(基壇)은 단층에 평면은 방형이고 현재는 지표에 팔부중상(八部衆像) 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양각한 화강석 판석을 1면에 6매씩 세우고 남면 중앙에는 계단을 설치하였다. 팔부중상이나 사천왕상들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서로 제작연대에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배치순서도 무질서하다. 또한 기단상면은 비스듬히 둥글게 시멘트를 칠하여 어느 정도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그 이유는 단층기단 측면에 이렇게 많은 조상(彫像)을 배치한 예가 없기 때문이다.(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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