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은해사 암자 순례

2018. 12. 30. 16:07팔공산 자락

>>>>팔공산 은해사 암자 순례<<<<

-운부암,중암암,묘봉암,백흥암,은해사,거조암-

0. 일시: 2018.12.30.  10:05~13:15

0. 누구랑: 혼자(* 차량 드라이브)

0. 코스: 운부암-중앙암-묘봉암-백흥암-은해사-거조암

    연휴인데도 집에 있으니 엄청 갑갑하다. 어디로 행차를 할까 한참 고민을 해보다가 은해사 암자를 돌아보고자 애마를 끌고 집을 나선다.입장료 3천원, 차량을 끌고 은해사 골짜기 구석 구석을 누빈다. 걸어가는 행자랑 산꾼들은 차량이 지나가면 엄청 싫어하지 싶다. 내도 산을 타면서 산속에 차량이 진행하면 고통을 겪었기에 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다. 왜냐고? 아직도 완치되지 않는 다리로 인하여 할 수가 없다. 언덕배기 옆의 수로는 결빙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고,,,,,암자마다 오늘 어떤 행사가 있는지 운부암에 가니 많은 신자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던가? 산사는 늘 조용하고 시원해서 자주 찾는 이유중의 하나인데,,,,,,넘 분주하게 보이니 산사가 아니라 도시의 한 공간같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거조암에 들어본다. 여기는 온 지가 15년은 되었지 싶다. 거조암 영산전은 국보제14호 지정된 유물이다. 오백나한상을 한바퀴 돌아보고 집으로 향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움을 느낀다.


1. 雲浮庵: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청통로951-404팔공산(八公山)에 있는 은해사의 산내 암자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銀海寺)이다. 이 절은 711년(성덕왕 10)에 의상(義湘)[625~702]이 창건하였다고도 하며, 809년(헌덕왕 1) 혜철 국사(惠哲國師)[785~861년]가 창건하였다고도 한다. 711년은 의상 입적 후가 되어 신빙성이 없다. 창건 당시 이곳에 서운(瑞雲)이 떠 있었으므로 운부암이라고 하였으며, 711년(성덕왕 10)의 의상 조사 창건설과 809년(헌덕왕 1)의 혜철 국사 창건설이 있다. 이후의 내력은 알려지지 않았고, 관음기도도량으로 전승되어오다가 1860년(철종 11)에 화재로 소실되자 응허(應虛)와 침운(枕雲)이 중건하였고, 1900년에 보화루(寶華樓)를 신축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원통전(圓通殿)을 중심으로 왼쪽에 운부란야(雲浮蘭若)가 있고, 오른쪽에 우의당(禹儀堂)이 있으며, 앞쪽에 보화루가 있다.정면 3칸, 측면 2칸의 원통전 안에 보물 제514호로 지정된 은해사 운부암 금동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보살상은 조선 초기의 상이 분명하지만, 신라 말에 혜철국사가 인도에서 해금강으로 들어오는 배 안에서 모셔왔다는 전설이 깃든 관세음보살상이다. 화려한 관(冠)을 쓴 높이 1.02m의 아담한 좌상으로, 갸름한 얼굴이며, 영락 장식이 온 몸을 두르고 있어 관장식과 함께 무척 화려한 모습이다. 불신은 굴곡이 없어 형식적으로 처리된 감이 있지만 안정된 자세로 지방적인 특색이 엿보인다. 띠 주름식의 삼도(三道)나 가슴 아래의 띠 매듭, 하체에 대칭으로 새겨진 옷 주름 등은 조선 초기 보살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준다.(펀글)

 

* 운부암 안내석


* 달마상-연못은 꽁꽁 대사는 여유로움을 함께하면서 남녘하늘을 주시하고 있다.

* 不二門: 드라마 촬영을 위해서 세웠다고 하는데, 불이(不二)란 뜻은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요, 세속과 부처의 세계가 둘이 아니며, 선악(善惡), 유무(有無), 깨끗함과 더러움, 등등 상대적 개념에 대한 모든 대상이 둘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 불이사상(不二思想) 속에 담겨진 불교의 진리는 매우 미묘한 법문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겠다. 불이(不二)란 둘이 아니고 나누어지지 않았으며, 다르지 않다는 말로 일단 정리할 수 있다. 하나라는 말은 또 하나를 보태서 둘이 되는 하나가 아니라 전체, 즉 그것 밖에 없고 상대되는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 하나라는 것이다.  세간과 출세간, 즉 성과 속, 사회생활과 종교생활이 둘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불이사상을 골자로 하고 있다. 사회적 자아와 종교적 자아가 상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격의 완성은 사회적 자아(세속적 자아)와 종교적 자아(초월적 자아)의 양극을 지양하는 중도의 길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어떤 사회적 자아를 확립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선 사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엄사상의 근본은 연기사상이다. 연기는 불이사상에 깔려 있는 불교의 근본 사상이기도 하다. 연기란 모든 사물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요소들이 모여서 조건적으로 생성, 소멸하는 것을 말한다. 즉 모든 존재는 다른 것들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의 변화는 사회의 직접적인 조건인 개인들의 변화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회가 개인들의 집합체라는 측면에서는 개인들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에 선행돼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사회변혁의 여러 이론 가운데 사회의 구조적 문제보다는 그것을 만들어 내는 개인의 변혁이 우선돼야 한다. 불이와 연기 등 불교의 사상속에 녹아 있는 지혜들은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을 포교해 바람직한 사회를 이룩하는데 매우 유용한 도구다.

*보화루(寶華樓)금은 보화를 품고 있는듯한 이름이지만 색바랜 옛모습 뿐이다. 화려한 단청은 사라지고 처마엔 세월이 들러붙어 있다. 어느 사찰에서나 처럼 누각이 부처님의 터를 호위무사처럼 가로막고 있다.누각인 보화루는 1862년 원통전과 함께 중건되었다는 기록이운부암중건기<조선사찰사료>에 나와 있는데 현존하는 건물은 1900년에 중건된 것이다. 보화루라는 이름은 화엄학(華嚴學) 또는 화엄경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은해사와 말사 암자인 백흥암과 군위지보사에도 보화루라는 누각이 있다.

* 원통전

* 운부암 전경


2. 중암암(돌구멍절)-경북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479번지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의 산내암자 중암암(中巖庵)은  은해사 산내암자(운부암, 백흥암, 기기암, 묘봉암, 중암암)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산짐승이 뛰어 나올 만큼  숲은 울창했고, 자동차도 힘겨워 할 만큼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보면  암자 입구에서 부터는 기암괴석의 바위만 보이고, 암자는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는 곳이 중암암 가는 길이다.  팔공산 중암암은  신라 흥덕왕9년(834년)에 심지왕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그 뒤로 꾸준히 수동승들의 수행처로 이용해오다가,  조선 순조34년(1834년)에 중수하여 오늘까지 이어온다고  한다. 중악 제일 기도 도량'이라는  빨간 글씨의 표지석이  중암암 입구이다. 중암암에는 김유신 장군이 수도한 곳으로 거론되고 있는 중악석굴이 있다. 팔공산은 바로 신라의 5악의 하나인 중악이라고 했다.  신라의 5악은   가야의 명산 '지리산의 남악 , 백제의 명산 '계룡산의 서악 ,고구려의 명산 '태백산의 북악   신라의 명산 '토함산이 동악, 이들의 중앙부에 위치한 팔공산은  중악으로 삼았다고 한다.

* 중앙암 안내석- 전에는 빙벽뿐이었는데 어느새 중앙암 안내석이 날 기다리고 있다.

3. 묘봉암- 팔공산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로, 오랫동안 관음 기도처와 수행처로 유명한데 과거에는 나라에 큰일이 있거나 큰절에 행사가 있을 때 본사인 은해사의 스님들이 모두 묘봉암에 모여 산신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은해사의 산내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기도 하다.묘봉암은 833년(흥덕왕 8) 심지(心地)가 창건하였다. 1485년(성종 16) 죽청(竹淸)과 의찬(義贊) 이 중창하였고, 1780년(정조 4) 혜옥(惠玉)과 서징(瑞澄)이 중수하였다. 6·25 전쟁 후 폐사된 것을 최근 주지 법운(法雲)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음과 산신 기도처로 유명하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법당인 원통전(圓通殿)을 중심으로 왼쪽에 요사채가 있고 오른쪽 뒤편에 산령각(山靈閣)이 있으며, 원통전 아래에 염불당(念佛堂)과 부목방(負木房)이 있다. 중심 건물인 원통전은 석굴 위에 건물을 지어 높이가 매우 높고 정사각형의 모양이다. 큰 바위에 걸쳐 건물을 지으면서 바위로 인해 내부는 2층으로 구성되어 아래쪽에는 관세음보살상을, 왼쪽 위에 석가모니불을 봉안하였다.

 

 

4. 은해사- 동화사(桐華寺)와 더불어 팔공산(八公山)의 대표적인 사찰로 지눌(知訥)거조암에서 신행결사(信行結社)를 도모한 바 있고, 홍진 국사(弘眞國師)가 머문 뒤에는 선교양종(禪敎兩宗)의 총본산으로서 사격(寺格)이 고양되었고, 영파(影坡)가 이곳을 중창한 뒤로는 화엄교학(華嚴敎學)의 본산으로서 그 명성을 드날렸다. 산내 암자로는 운부암·거조암·기기암·백흥암·묘봉암·중암암·백련암·서운암 등이 있다.은해사는 809년(신라 헌덕왕 1)에 혜철 국사(惠哲國師)가 해안평(海眼坪)에 해안사(海眼寺)로 창건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1270년(원종 11)에 홍진 국사가 중창하였고, 1275년(충렬왕 1)에는 원참(元旵)이 중건하였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1543년(중종 38)에 보주(寶珠) 등이 중수하였으며, 1545년(인종 1)에는 천교(天敎)가 지금의 장소로 법당을 옮겨 새로 절을 지었다. 그때 법당과 비석을 건립하여 인종의 태실을 봉하고 은해사라고 하였다.1563년 묘진(妙眞)이 중건하였고, 1589년(선조 22)에는 법영(法英)이 법당의 사방에 새로 건물을 세우고 단청하였다. 1651년(효종 2)에는 백흥암(百興庵)과 명부전(冥府殿)을 신축하였으며, 1667년(현종 8)에는 백흥암과 명부전을 중수하였다. 1712년(숙종 38)에는 은해사를 종친부(宗親府)에 귀속시켰고, 1714년에는 절 문 일대의 땅을 매입하여 소나무를 심었으며, 1730년(영조 6)에는 백흥암의 보화루(寶華樓)를 중건하였다.1737년에는 법당·누각·천왕문 등을 단청하였고, 1750년 법당의 「아미타후불탱화」를 조성하였다. 1759년에는 백흥암과 명부전을 중건하였으며, 1761년에는 천왕문을 세웠다. 1767년에는 백흥암의 영산전(靈山殿)을, 1772년에는 설화(雪華) 등이 백흥암의 동대(東臺)를 쌓았고, 자암(慈庵)은 대웅전 불상을 개금(改金)하였으며, 도봉(道峰)은 영산전과 시왕전(十王殿)의 불상을 개분(改粉)하였다. 1797년에는 경옥(璟玉)·석린(碩麟)·해운(海雲)·유화(有和)·승수(勝修) 등이 법당과 누각을 중수하고 단청하였는데, 이때 운부암 조실(祖室) 지첨(知添)이 불사를 지휘하였다.1816년에는 비각(碑閣)을 세웠다. 1817년에는 기봉(箕峰)·유성(宥性) 등이 서운암(瑞雲庵) 등 30여 곳에 다리를 놓았고, 1847년(헌종 13)에는 은해사 창건 이래 가장 큰 불이 나서 1,000여 칸의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같은 해 팔봉(八峰) 등이 주관하여 사방 9칸의 법당과 향실(香室), 심검당(尋劍堂)·설현당(說玄堂)·청풍료(淸風寮) 등을 새로 지었다. 또 이듬해에 옹호문(擁護門)·안양전(安養殿)·동별실(東別室)·만월당(滿月堂)·향적각(香積閣) 등을 세웠으며, 1849년부터 1850년에 걸쳐서 보화루를 중수하였다.1849년에는 백흥암의 중료(衆寮)를 중창하였고, 1858년(철종 9)에는 청봉(靑峰) 등이 백흥암의 영산전을 중수하였으며, 1860년에는 운부암(雲浮庵)이 소실되었다. 그 해 응허(應虛)·침운(枕雲) 등이 운부암을 중건하여 법전(法殿)·설선당(說禪堂)·조실(祖室)·영각(影閣)·노전(爐殿) 등을 세웠다. 또한 1869년(고종 6)에는 백흥암의 명부전을 중수하였고, 1876년에는 백흥암에 나한전(羅漢殿) 및 석조(石槽)를 만들었으며, 1878년에는 백흥암의 보화루를 중건하였다.1900년에는 운부암의 보화루를 중건하였고, 1920년에는 석담(石潭)이 대웅전·단서각(單捿閣)·계삼당(洎三堂)·보화루·창고를 수선하고, 주지실·요사 4동 및 2대문(大門)을 지었다. 또한 구재(舊材)와 신재(新材)를 사용하여 옛 조실(祖室)을 하지전(下持殿)으로, 극락전을 응접실로 바꾸었다.

* 입구쪽에 있는 연리지

5. 거조암- 국보 제14호인 영산전이 있는 거조암은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 불전으로 738년(신라 효성왕 2) 원참 조사(元旵祖師)가 창건했다는 설과 「은해사사적비문(銀海寺史蹟碑文)」에 742-764년(신라 경덕왕대)에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나 뚜렷하지 않다. 최근 경상북도 문화재연구원에서 진행한 경내 일부의 발굴조사에서 통일 신라 시대 유적· 유물과 함께 거조사(居祖寺) 명의 명문와가 출토되었다. 따라서 거조사는 1190년(명종 20) 보조 국사가 은거하며 정혜사(定慧社)를 결성하고 근수정혜결사문(勤修定慧結社文)을 발표하기도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아울러 거조암 영산전은 1375년 8월 20일(우왕 원년) 건립의 상량문이 확인됨에 따라 건립 연대가 명확한 고려 후기의 주심포 건물이다. 또 건물 내부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혜림 법사와 법화 화상이 모신 오백 나한를 모시고 있다. 영산전 앞 마당에는 나말려초(羅末麗初)의 것으로 추정되는  거조암 삼층 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4호]이 있다. 근대에 은해사의 암자로 바뀌어 거조암이 되었다. 거조암 영산전은해사 서북쪽의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다. 이곳은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내에서 919번 지방도[금송로]를 타고 은해사로 진입하는 청통 네거리를 지나 북쪽으로 1.8㎞ 가량 가면 계지리 계지교를 건너자마자 좌측 거조길로 계지리 강변마을, 신원리 광대정·갱빈·새터·술래바탕·중신원 마을을 차례로 거쳐 4.5㎞가량 들어간 신원지 서편 산사면에 있다.영산전은 고려 말인 1375년(우왕 원년) 8월 20일 거조사 주 본전(本殿)으로 건립된 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오백 나한을 모시고 있다. 1754년(영조 30) 중수, 1786년(정조 10) 번와중수, 1898년에 중수 상량했다. 아울러 1912년 은해사 사내 말사로 통합되면서 거조사에서 거조암으로 바뀌었다. 1970년 7월 해체복원공사를 실시하였고, 1978년 6월 번와공사와 함께 최근까지 수 차례 보수·정비가 있었다.영산전은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의 장방형 평면구성이다. 간살은 전·후면 및 양 측면의 어칸이 협칸보다 넓게 설정되었고, 내부에 2열의 내진 고주를 배열하다.주향은 동북향이며, 전방의 중정에는 영산전 중심축선에서 약간 벗어나 나말려초 제작으로 추정되는 삼층 석탑이 있다. 편액은 설현신(薛玄愼)이 쓴 것이다. 건물은 잡석으로 높직하게 축조하고 전면으로 3개의 돌계단이 설치된 기단 위에 서 있다. 기단 위에는 자연석 초석을 놓고 배흘림 기둥을 세워 창호와 벽체로 구체부를 구성하였다.출입문은 전면 어칸에만 설치되어 있다. 외부에는 삼분합의 정자살문을 두고, 내부에는 두짝의 판문을 달아 이곳으로만 출입하도록 했다. 그 외 전면의 차협칸과 차차협칸 4칸, 양 측면 어칸, 후면 어칸에는 각기 붙박이살창을 두어 실내의 채광을 꾀하고 있다. 특히 측면 어칸에는 고창 각 1개씩을 두어 실내 채광의 효과를 배가시켰다. 그 외 벽은 토벽에 회를 발라 마감했다.내부는 중앙부에 단칸 규모로 불단을 마련하여 그 위에 삼존불을 안치하고 후불탱을 걸었다. 그 외 내부 바닥은 전을 깔고, 전·후퇴칸과 측면으로 별도의 긴 불단을 후설하고 총 526분의 석조 나한상 및 불상을 배열 봉안하고 있다.상부 가구는 2고주 5량가이다. 내고주상에 대량을 걸고, 고주와 평주 사이에는 퇴량으로 연결하였다. 주상부에는 창방을 걸고 주상에 주심포계 공포를 짜아 보, 도리를 받쳐 맞배지붕이 이루어지도록 결구했다. 특히 평주 상부에 창방과 헛첨차를 직교되게 사괘를 짜아 그 위에 주두와 소로를 올려 놓았다.주두 위에 첨차와 살미가 다시 직교되도록 짜아 외부로는 외목 첨차와 결구되어 보머리, 단장여 등을 받게 했다. 살미 외단 끝은 쇠서형을 뽀쪽하게 깎아 뻗은 형이고, 그 내부에서는 퇴량 밑에서 양봉을 받쳤다. 첨차는 마구리를 사절하고, 하단부는 뚜렷한 연화두식(蓮花頭式)형 곡선을 조각했다. 대량 위 중앙에 제형의 판대공을 세우고 그 위 화반형 부재와 첨차를 결구한 포대공을 짜아 종도리를 받도록 했다. 종도리 측면에는 인자(人字)형의 내반 곡을 가진 솟을합장을 세워 구조적 보강과 마감을 꾀하고 있다. 대량과 퇴량의 단면은 항아리형으로 다른 고려 시대 건물보다 곡이 약하다. 천장은 서까래라 그대로 드러난 연등 천장이고, 지붕은 홑처마에 한식기와를 이은 맞배형이다.은해사 거조암은 삼국 시대에 창건된 고찰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고려 말에 건립된 본전인 영산전과 조선 후기의 산신각, 최근에 신축된 영산루, 요사채 등의 건물로 구성된 단출한 가람이다. 영산전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오백 나한을 모신 유서깊고 영험있는 나한 기도 도량으로 유명하다.

* 거조암 일주문

* 영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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