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치산계곡

2019. 7. 6. 19:56팔공산 자락

>>>팔공산 치산계곡<<<

0. 일시: 2019.7.6.(일) 09:45 ~ 14:40 (4시간 55분) * 공산팀 2차

0. 코스: 치산계곡 수도사-공산폭포-진불암-동봉(원점회귀)

0. 거리: 8.2km정도

    팔공산 동봉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치산계곡.. 유명한 수도사와 진불암 공산폭포를 돌아본다. 며칠전 비가 온탓일까 계곡엔 많은 물줄기가 산꾼을 유혹하고 특히 공산폭포 어마어마한 물줄기가 시원한 물을 마구마구 떨어뜨리고 있다. 동봉으로 진입하는 길은 예전에 올랐을땐 길이 없어 알바도 하고 고생을 많이 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지금은 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오르는데는 별 문제가 없는듯 하다. 7월의 초여름 날씨가 무척 덥다. 그러나 이 산속의 시원한 공기와 물은 나그네의 땀방울과 마음도 시원하게 씻어 내리고 있다.

 

#1 공산폭포-한(大)줄기의 물줄기가 무더위를 단방에 휙 날려 보내고 소리는 엄청 우렁차다.

 

#2 초입지 수도사-수도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47년(신라 진덕여왕 1) 자장(慈藏)원효(元曉)가 함께 창건했다고 전하지만,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고 창건 당시의 이름은 금당사(金堂寺)였다.수도사는 647년(진덕여왕 1)에 원효의상이 함께 창건했다 하지만, 원효의 출가가 648년이므로 신빙성이 없다. 1296년(충렬왕 22) 중창이 있었고, 원래 금당사였던 것을 1805년(순조 5) 징월이 중창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수도사의 현존하는 건물로는 법당인 원통전과 산신각, 선방으로 이용되는 큰방, 요사채 등이 있다.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이 좌상으로 모셔져 있고, 불상 뒤에는 「후불탱화」와 「지장탱화」·「신중탱화」가 걸려 있고, 괘불이 남아있다. 본래는 산문(山門)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다. 약사 신앙의 성지인 관봉 갓바위로 오르는 등산 코스가 있고, 산 위쪽 1km 지점에 3단으로 된 치산폭포가 절경을 이루어 등산객이 많이 찾는다. 2001년에 영천시에서 이 절 일대를 치산관광지로 꾸몄다.유물 중 1704년(숙종 30)작의 「수도사 노사나괘불탱(修道寺蘆舍那掛佛幀)」이 보물 제1271호로 지정되었다.

 

#3수도사 절 마당에 자리잡고 있는 호두나무엔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4 수도사 삼존불

 

#5 근처 조성된 연못에서

 

#6 치산계곡의 아름다운 물과 계곡 그리고 소나무 숲

 

#7 동행한 도위원장과 한장

 

#8 망폭정과 망폭대

 

 

#9 공산 폭포(公山瀑布)는 1980년 대구시가 경상북도와 분리될 때 팔공산(八公山)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공산 폭포로 표기가 통일되었다. 그러나 폭포 인근 지역인 대구에서는 팔공산에 있다 하여 팔공 폭포라 부르며, 영천에서는 신녕면 치산리 치산 계곡의 지명을 붙여 치산 폭포라 부르고 있다.공산 폭포는 약 6㎞에 걸쳐 있는 치산 계곡의 중턱에 위치하는데, 영천시 신녕면과 대구광역시 동구, 그리고 군위군 부계면에 걸쳐 있는 팔공산[1,193m]은 주요 산지가 동서로 길게 이어져 분수계를 이루고, 주봉인 비로봉과 신령재에서 발원한 물길이 북쪽 사면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하나로 모여 치산 계곡을 형성한다.공산 폭포팔공산 북쪽 자락에 형성된 폭포로, 팔공산에 산재하는 폭포 가운데 가장 낙차가 크고 낙수가 풍부한 3단 폭포이다. 폭포 주변에는 다양한 형상의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분포하고 있으므로 경관이 수려하다.공산 폭포에서 약 1.6㎞ 하류부에는 647년(신라 선덕여왕 14) 원효대사(元曉大師)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천년 고찰 수도사(修道寺)가 있다. 창건 당시에는 금당사(金堂寺)라 불렸다가 큰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세워진 뒤 수도사라 명명됐다. 또한 공산 폭포에서 약 2㎞ 상류부에는 고려 문종환암(幻庵) 혼수대사(混修大師)가 창건한 진불암(眞佛庵)이 있다.

 

 

 

 

 

* 동행한 본부장 선배님이랑~

 

# 10 진불암 진입 흔들다리-선배님이 잡아준 사진(감사)ㅎㅎ

 

 

#11 진불암-발원합니다.

 

#12 부재- 어쩌다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한없이 세월은 흘러만 가고 꿈결같이 사람들은 살다 죽었다.(김춘시 시)

 

#13 삼편석

 

#14 부도-산스트어인지 알 수가 없는 글자로 된 부도


#15 은수교

#16 진불암- 과거엔 조그마한 암자였는데 지금은 어엿한 절의 모습을 하고 산꾼들을 기다리고 있다.

 

 

#17 진불암과 동봉 3거리 지점

 

#18 팔공산 부대를 뒤로하고 한장-머리위로 부대가 보이고,,,

 

#19 영차영차 동봉을 향하여~~

#20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八公山東峰石造藥師如來立像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 입상은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높이 6m이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 해발 1,155m의 고지(高地)에 위치하고 있는 이 불상은 거대한 화강암의 서쪽 면에 거의 원각에 가까운 고부조(高浮彫 : 높은 돋을새김)로 조각되어 있다. 불상이 새겨진 바위 자체가 거대한 광배의 역할을 하며 머리 주위로는 두광(頭光 : 부처나 보상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의 흔적이 남아 있다.머리는 소발(素髮)이며 넓고 편평한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를 가졌다. 반쯤 뜬 눈은 가늘고 길게 표현되었는데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두 볼은 살이 찐 편이고 입가엔 미소를 띠고 있어 온화하고 자비스러운 불심을 느낄 수 있다. 신체에 비해 얼굴은 좀 크게 표현되었다. 거대한 불상을 올려다보며 예불을 드리는 예배자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된다.귀는 길어 어깨에 닿을 듯하며, 목은 너무 짧아서 삼도(三道)의 표현이 뚜렷치 않다. 이 불상은 양손과 발이 모두 신체에 비해서 지나칠 정도로 크게 표현되었다. 오른팔은 아래로 길게 늘어뜨려서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였지만 조각 수법은 고르지 못하다. 왼팔은 가슴 위로 들어 올려 외장(外掌 : 손바닥을 바깥으로 함)했다. 엄지와 장지를 맞대어 지물(持物)을 가진 듯하나 확실하지는 않다.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이고 옷자락은 무릎 아래까지 내려뜨렸다. 단순한 호선(弧線 : 활등 모양으로 굽은 선)형 옷주름만이 표현되었다. 법의 밑으로는 군의(裙衣)의 표현이 희미하고 직립한 두 발끝과 발가락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우측 옷자락도 양팔에 걸쳐 넓게 늘어뜨려졌는데 마치 도포 자락을 연상케 한다.이 불상은 손과 발에서 기형적 조법이 나타나기는 하나 거대한 입상에 잘 조화되어 있는 옷주름이나 얼굴 모습 등의 조각 솜씨로 보아 경산시의 관봉 석조여래좌상(冠峰石造如來坐像, 보물 제431)과 양식적으로 유사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국태민안과 무탈 안녕,안전 산행, 가내 화목.평화를 위한 합장을 올린다.

 

#21 내려오다 아름다운 버섯이 많이 달렸다.

 

#22 길게 늘어진 작은 폭포수가 이 더위를 한껏 식혀주는 느낌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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