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일시: 2024.12.28.(토) 09:14 ~ 14:56 (5시간 42분) * 단독
0. 코스: 은해사일주문-은해사-백련암-운부암-백흥암-중앙암-묘봉암-기기암-서운암-일주문
0. 거리: 23.8km
차가운 날씨가 겨울을 맛보게한다. 모처럼 시간을 잡아 은해사 7암자길에 나선다. 바람도 세차게 불고 계곡의 흐르는 물은 차가움에 얼음과 고드름으로 변해있다. 날씨가 가물었지 싶은데도 계곡물은 원없이 흘러내린다. 바람이 세차게 불다가 온화하다가 날씨도 제정신이 아닌듯하다. 오늘길은 산은 피하고 전부 차도를 이용하다보니 발바닥과 무릎에 조금이나마 손상을 받았지싶다. 제일 먼곳 중앙암 급오르막과 묘봉암 그리고 기기암 급오르막길이 넘 지치게 만든다. 지나면서 절길을 걷고 있는 또 다른 걷기분들에게 목례로 인사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래도 전에부터 계획한 돌기를 오늘에서야 완주하니 또 한가지의 숙제를 해결해서 마음이 가볍다.
# 은해사 7암자 돌기(아래 좌측부터 돌기 순서)
#1 들머리- 은해사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긴 여정이 시작된다.
* 은해사 - 한참만에 또 오지만 절을 지키는 450년의 향나무도 우람하게 서 있다. 과문한 탓인지 향나무의 위용에 놀랐다. 향나무도 수령을 더하고 더하게 되니 저렇듯 우람한 위용을 드러내는 구나 새삼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향나무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이 푸르게 빛을 내고 있다.
#2 백련암-기도도량인지라 잠시 사진 찍느라고 서성이니 얼른 나가달라고 한다.
#3 신일지3거리- 저수지가 공사중인지 고여 있던 물이 거의 없이 빈 저수지가 산꾼을 반긴다. 우틀하면 운부암, 좌틀하면 중앙암과 묘봉암 가는 길 출발후 2.9km지점/ 운부암 돌고 다시오니 7.3km지점으로 늘어난다. 1시간 35분 경과
#4 운부암- 운부암(雲浮庵)은 예로부터 수행처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天下明堂 北 摩訶 南 雲浮(천하명당 북마하 남운부)라고 북쪽은 금강산 마하연이 최고 수행처이고 남쪽은 운부선원이 최고 수행처라는 뜻으로 경허(鏡虛)큰스님과 성철(性徹)큰스님 같은 한국 현대 불교사의 중요 인물들도 이곳에서 수행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운부암을 창건했을 때 상서로운 구름이 떠서 ‘운부암’(雲浮庵)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창건 시기에 관해서는 711년(성덕왕 10)에 의상(義湘)이 창건했다고 이야기와 809년(헌덕왕 1) 혜철(惠哲)이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711년은 의상이 이미 죽은 뒤이므로 정확한 창건 시기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고려시대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중건되었으나, 1860년(철종 11)에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응허(應虛)스님과 침운(枕雲)스님이 중건한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겨울날이라 암자 앞에 있는 연못은 꽁꽁얼어 있고, 대웅전 뒷편의 고목(느티나무)는 세찬 바람에도 끄덕없이 지탱하고 있다.(속은 전부 썩어 없어졌다. 출발후 4.5km지점
* 불이문-불이법문(不二法門)은 불교에서 중요한 철학적 개념으로 ‘불이(不二)’는 두 가지가 아님을 의미하며, 이원론적 사고를 초월하는 뜻으로 즉 차별이나 대립이 없는 하나의 진리를 상징한다. ‘법문(法門)’은 진리로 통하는 문, 즉 법(法)을 배우는 문을 의미한다. 따라서 불이법문은 모든 존재와 현상이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깨닫고, 차별과 분별을 떠나는 진리의 길을 뜻합니다. 이 개념은 모든 것들이 근원적으로 하나라는 통합적 관점을 강조하며, 분별과 집착을 넘어선 상태를 지향한다라고 한다.(펀글)
#5 백흥암- 백흥암은 1년에 2번만 산문을 개방하는 비구니 도량으로 861년 신라 경문왕때 혜철국사가 짓기를 시작하여 873년에 창건하였으며, 정면에 2층 보화루 누각이 나타난다. 초파일과 백중일(음력7월 보름날)만 개방하는 암자로 2013년 영화"길 위에서"를 다큐 형태로 300일간 비구니의 출가사연과 수행과정 등 정식으로 스님이 되는 과정을 묘사한 영화이다.
보통땐 접근 금지다. 출발후 8.8km 1시간 55분 경과
#6 중앙암(돌구멍절)- 오르막길을 한참 땀을 빼고 나니 눈앞에 나타난다. 돌사이의 고목이 늘 봐도 이체롭다. 대웅전은 조그만하지만 항상 조용하다. 출발후11.3km 2시간 42분 경과
#8 묘봉암(670m)- 묘봉암(妙峰庵)은 833년(흥덕왕 8)에 심지(心地)왕사께서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오랫동안 관음기도처와 수행처로서 전승되어오다가 1485년(성종 16) 중창하였고, 1780년(정조 4) 최근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입구에 휴식공간인 성적당(惺寂堂) 그리고 법당인 원통전(圓通殿)을 중심으로 왼쪽에 요사채가 있고 오른쪽 뒤편에 산령각(山靈閣)이 있으며, 원통전 아래 염불당(念佛堂)과 부목방(負木房)이 있다. 산 중턱에 절이 차지하고 있어 발품을 시기 팔아야만한다. 한참 공사중인지라 주변이 어지럽고 정면에 경산시지역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출발후14km 3시간33분 경과
#9 기기암 입구 겸 은해사 본관 주변- 여기서 우측으로 2.3km를 줄기차게 오름길을 치고 올라야하는데 같은 길을 하도 걸어선지 이젠 서서히 지키기 시작한다. 출발후 18.5km 4시간25분 경과
#10 기기암(489m)-입구에서 한참동안 지속 오름길을 치고 오른다. 여기를 지나 묘봉암과 선본사로 연결이 된다고한다.
출발후21km 5시간2분 경과
#11 서운암- 기도도량인지라 안엔 들어갈 수가 없고 안내판을 이용해서 오늘 7번째 마지막 암자의 흔적을 남긴다. 출발후 23.4km 5시간 42분 경과
#12 은해사 연리지 나무- 은해사 길목에는 수종이 다른 참나무와 느티나무의 연리지가 있다. 참 드문 케이스로 그만큼 드라마틱하고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흔히 연리지는 백거이의 <장한가>에서 나오는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표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당 현종은 칠월 칠석날 깊은 밤에 양귀비(양옥환)와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되자'고 맹약했으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다.(원문: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그 당시 당나라 현종이 경국지색 양귀비를 만난 것은 현종이 55세 양귀비는 22세 때였다. 그 당시 양귀비는 현종의 며느리였지만 현종은 파격적으로 양귀비를 취한 것이다.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은 16년 지속되다 막을 내린다. 현종이 71세 양귀비가 38세 때다. 여기서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응한다.양귀비에 빠져 지내다보니, 안록산의 반란에 직면하게 되고 결국 촉으로 피난 가는 길에 양귀비에게 자결하도록 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황제의 총명을 흐리게 했다는 죄명이다. 양귀비가 자결하고 현종은 피눈물을 흘렸다. 백거이는 <장한가>에서 '혈루상화루(血淚相和淚)'라고 읊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사랑은 시작부터 비극을 잉태하고 있었다. 이렇게 연리지는 또 한면의 사랑을 나타내는 징표로 알려져 있다.(펀글)
*양귀비(楊貴妃:719-756) 楊貴妃의 본명은 玉環, 고향은 四川, 아버지 楊玄埮은 蜀州의 하급관리인 司戶였다 하나 早失父母하여 叔父 집에서 자라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