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갓바위와 동화사(펀글)

2017. 10. 10. 19:59팔공산 자락

 

대구 팔공산 갓바위
입시철이면 더욱 붐비는 팔공산 갓바위. 세월 따라 시주 물품도 변한다. 한때는 공양미가 대세였지만 지금은 국화화분이 정성을 대신하고 있다. 대구=최흥수기자

무심봉의 흰 구름, 제천단의 소낙비, 적석성의 보름달, 백리령의 하얀 눈, 금병장의 단풍, 부도암의 폭포, 약사봉의 새벽 별, 동화사의 저녁 종소리. 조선시대 문신이자 학자인 서거정이 꼽은 ‘공산팔경(公山八景)'이다. 공산은 지금의 팔공산으로 대구 동구와 경산 영천 군위 칠곡에 두루 걸쳐 있는 큰 산이다.

갓바위, 수많은 기원과 간절함이 모인 곳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한 달여 앞둔 요즘은 팔공산이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시기다.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갓바위’의 명성 때문이다. 4m 규모의 불상 머리에 갓 모양의 널돌(판석)을 얹은 모습이어서 갓바위라 부르지만 공식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이다. 해발 850m 관봉 꼭대기의 자연석을 다듬은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보고 있다. 좌대와 자연 광배 역할을 하는 바위는 모두 붙어 있는데 판석만 분리된 것으로 보아, 비바람으로부터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나중에 얹은 것으로 추정된다. 갓바위 부처는 둥글고 풍만한 체구에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어 자비롭다기보다 근엄해 보인다. 더구나 산꼭대기에서 드넓은 하늘을 이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형상이어서 위엄이 넘친다.

근엄한 갓바위 부처 앞에 하나 둘씩 국화 화분이 늘어가고 있다.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믿음에 간절함도 더해진다.
불상 앞에는 널찍하게 기도 공간이 마련돼 있다.

지난달 30일 추석연휴를 코앞에 둔 평일이었지만, 갓바위로 향하는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입시가 가까울수록 기도 행렬은 더욱 불어나 하루 수천명이 찾는다. 안전을 위해 철제 난간을 두르고 불상 앞에 80평 가량 널찍하게 터를 닦았지만, 입시철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찬다. 불상이 동남 방향, 울산 간절곶을 바라보고 있어 울산과 부산에서 특히 많이 찾아온다. 대구 시민들은 수험생 학부모들을 위해 오히려 방문을 자제할 정도다. 기도는 한때 고행과 동의어였다. 예전엔 정성을 가득 담은 쌀 포대를 이고지고 그 가파른 산길을 올랐지만, 지금은 정상에서 공양미를 판매한다. 세월이 변함에 따라 시주 물품도 바뀌고 있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계단 양 옆과 불상 앞에는 노란 국화 화분이 화사하다. 화분마다 가족의 건강과 합격, 사업 번창을 염원하는 쪽지가 꽂혀 있고, 스피커를 통해 화분을 구입한 불자들의 이름과 기원문 낭독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기도의 개인화도 어쩔 수 없는 추세다. 여러 고을과 연결된 봉우리인 만큼 농경시대에는 기우제 등 지역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제사의식을 치르는 공간이었지만, 이제 수많은 개인이 파편화된 욕망들을 쏟아내는 장소로 변모했다.

갓바위로 오르는 계단 양편을 국화 화분이 장식하고 있다.
화분마다 기원문 쪽지가 꽂혀 있다.
갓바위 바로 아래 유리광전의 공양미 이동 통로. 갓바위에서 부은 쌀은 아래 선본사로 내려 간다.

간절함을 담은 시주도 만만치 않아 갓바위 소유권을 놓고 경산의 선본사와 대구 동구의 관암사가 오랜 기간 법적 분쟁을 치렀고, 선본사 관할로 판결이 난 후에는 조계종에서 직영 사찰로 운영하면서 이 절을 말사로 거느리고 있는 영천 은해사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대구와 경산의 신경전도 만만치 않다. 대구에서 오르는 등산로에서 갓바위 정상 부근에 이르면 ‘경산 갓바위입니다’라고 적은 큰 안내판을 먼저 만난다. 공증이라도 하듯 갓바위 주소가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산44번지’라는 점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등산로도 크게 대구 진인동 갓바위 집단시설지구(갓바위 주차장)와 경산 와촌면 선본사에서 오르는 두 갈래로 나뉜다. 선본사 코스로 오르면 약 30분, 갓바위 주차장에서는 1시간이 걸린다. 거리는 선본사 코스가 짧은 반면, 계곡과 숲의 정취는 대구 쪽이 한 수 위다. 동대구역에서 시내버스(401번)로 1시간이면 닿을 수 있기 때문에 접근이 편리한 것도 장점이다. 매년 10월말이면 갓바위 상가번영회 주최로 팔공산 단풍축제도 열린다. 왕건의 팔공산, 견훤의 동화사갓바위 집단시설지구에서 차로 약 20분 떨어진 동화사는 팔공산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493년에 극달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나,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이기 이전이어서 통일신라 흥덕왕 때(832년) 심지왕사가 크게 중창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때가 겨울철인데 절 주위에 오동나무 꽃이 만발해 동화사(桐華寺)라 이름했다고 전한다.

동화사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물고기 모양의 국화화분이 세워져 있다. 매년 10월 동화사에서는 국화축제가 열린다.
성보박물관 2층 법당 유리창으로 본 약사대불과 팔공산.
영산전 처마 아래 서면 작은 절간에 온 듯 아늑하다.
어디를 걸어도 계곡과 숲이 어우러져 가벼운 산책코스로도 그만이다.

동화사 일대는 고려의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에게 크게 패한 공산전투(동수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당시 동화사가 견훤의 편을 들어 후백제가 승리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대개 최종 승자의 기록으로 남는다. 팔공산과 대구에 고려 유물은 많지 않지만 왕건의 흔적은 곳곳에 지명으로 남았다. 왕건이 견훤의 군사에 패한 고개는 파군재, 그가 넘어온 왕산, 홀로 쉬어간 바위는 독자암, 도망가는 길에 아이들만 보이고 어른들은 없어 불로동, 전쟁에 패해 얼굴이 하얗게 질린 백안동, 초래봉을 넘고 겨우 살 것 같아 얼굴이 밝아진 해안동, 마음을 놓게 되어 안심, 하늘을 우러르니 반달이 떠 있어 반야월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팔공산 자락 동구의 지명이다.오늘날 동화사는 대도시 대구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로 발전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로 참선수행 기관인 선원(禪院),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교육기관인 율원( 院)을 두루 갖춘 총림(叢林) 사찰이다. 대웅전에서부터 진신사리부도탑에 이르기까지 60여개 전각과 불탑이 들어찬 경내는 웬만한 대학 캠퍼스를 능가하는 규모다. 발걸음마다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산책코스다. 천천히 둘러보면 1~2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사찰 입구에 있는 높이 33m의 약사대불은 동화사의 위상을 대변하고 있다. 거대한 불상이 내뿜는 기운에 누구나 압도당할 만한데, 성보박물관 2층 법당에 들어서면 불상이 의외로 소박하게 보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대형 통유리창이 자연스럽게 액자 역할을 하고, 약사대불과 뒤편의 팔공산 병풍바위가 하나의 그림이 된다. 매년 10월에는 국화축제가 열려 사찰 전체에 국화 향이 진하게 퍼진다. 올해는 특이한 형태의 국화 분재 작품도 선보인다. 동화사 입장료는 성인 2,500원.

팔공산 케이블카 상부역에서 본 대구 동남부.
케이블카 아래 울긋불긋 단풍이 들고 있다.
케이블카 상부 뒤편으로 나가면 팔공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앞쪽 전망대에서는 대구 시내 모습이 펼쳐진다.

팔공산에서 가장 수월하게 시원한 조망을 즐기려면 동화사 입구에서 820m 산중턱까지 연결되는 케이블카를 타면 된다. 6명을 태울 수 있는 24대의 케이블카가 40초 간격으로 순환한다. 정상은 아기자기한 소공원으로 꾸몄다. 정거장 뒤편 바위 언덕에 오르면 서봉 비로봉 동봉 염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정면 전망대에서는 앞산을 비롯한 첩첩 산줄기를 배경으로 드넓은 대구 시내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케이블카 탑승 요금은 어른 기준 왕복 9,000원.

가을여행주간, 대구에 가면…

가을 여행주간(10.21~11.5)에 맞춰 대구시가 테마 인증 이벤트를 진행한다. ‘대구는 맛있다, 예쁘다, 재밌다, 야(夜)하다’ 등 4가지 테마 별로 스탬프 1개 이상을 인증하면 선착순으로 5,000명에게 기념품을 증정한다. ‘맛있다’ 스탬프는 서문시장, 동인동찜갈비골목, 안지랑곱창골목, 평화시장닭똥집골목에서, ‘예쁘다’ 인증은 디아크와 사문진나루터, 팔공산(케이블카ㆍ동화사), 하중도, 옻골마을에서 받을 수 있다. ‘재밌다’ 테마에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마비정벽화마을, 이월드 등이, ‘야(夜)하다’에는 대구근대골목, 앞산전망대, 아양기찻길, 수성못이 포함됐다. 여행주간 동안 (구)제일교회 테라스 음악회, 앞산전망대 가을밤 콘서트 등 야경과 공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대구야(夜) 놀자’ 프로그램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