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22. 08:15ㆍ한시와 명언 보기
동지의 유래와 의미
<<동지의 팥죽과 지귀의 불사음>> 동지는 24절기 중 22째다. 보통 양력 12월 22일 또는 23일에 든다. 동지가 되면 연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 . 동지가 지나면서 차차 낮이 길어지므로 새로운 해로 접어드는 셈이다. 그래서 동지를 작은설 이라는 의미로 아세라고도 한다. 하지로부터 짧아진 해가 동지를 기준으로 길어지므로 옛 사람들은 태양이 되살아 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동지를 부활의 날로 생각했다. 크리스마스가 12월 24일 이라는 사실도 태양이 부활하는 날을 예수의 탄생일로 택한 것이다. 예수가 12월 24일에 탄생했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후세 사람들이 그의 탄생을 태양의 부활과 버금가는 의미로 승화시키기 위해 12월 24일을 택했을 뿐이다. 동짓날은 팥죽을 먹는다. 이는 설날에 떡국을 먹는것과 버금가는 풍습이다. 팥죽을 먹는 까닭은 역귀를 물리치기 위함이라고 한다. 중국의《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란 사람의 아들이 몹시 둔해서 팥을 보면 피로 알고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공공시의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질병을 가져다 주는 역귀가 됐다고 한다. 사람들은 동짓날 팥죽을 먹고 문에 뿌려 귀신을 쫓았다. 팥의 색깔이 엉겨붙은 피의 색과 같다는 점에서 비롯된 팥죽 먹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동짓에 팥죽먹기 풍속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의 선덕여왕은 매우 아름다운 임금이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승만부인과 비교하려 할 정도로 미모와 함께 불심도 깊었다. 선덕여왕은 나라 일을 보면서 아침 저녁 으로 황룡사에 가서 예불을 했다. 왕을 아침 저녁 먼 눈길로 바라보던 사람들은 그녀의 아름다움과 여왕으로서의 권위에 경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 가운데서 자귀라는 사람은 여왕을 짝사랑해 끝내는 상사병이 났다. 영묘사에 불공을 드리러 간 여왕은 지귀에게 알현을 허락하였다. 여왕이 불공을 마치고 나와보니 기다림에 지쳤던 지귀는 그만 잠이 들어 있었다. 선덕여왕은 지귀를 깨우지 않고 그의 가슴에 팔찌를 풀어주고 돌아갔다. 뒤늦게 잠에서 깬 지귀는 자신을 원망하며 타오르는 사랑을 진정치 못해 애가 타서 죽었다. 지귀는 그로부터 나쁜 귀신이 되어 행패를 부렸다. 지귀의 행패는 주로 방화였다. 그의 심화가 남의 집과 재산을 태우는 것이었다. 예를들어 선덕여왕이 영묘사에 행차할 때 지귀가 절에 불을 질렀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온다. 그때 혜공스님이 법당주변에 새끼줄을 놓음으로서 부처님을 비롯해 주요 건물은 지귀의 불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지귀의 심화는 사랑이다. 요즘말로는 상사병을 말한다. 사음계를 지키지 못한 지귀의 약한 정신이 끝내는 악귀로 변해 남을 해치며 다닌 것이다. 신라 사람들은 지귀가 싫어했던 것으로 팥죽을 택해 지귀의 행패에 대비했다. 이런 풍습이 오늘까지 내려와 동지를 전후해 팥죽을 쑤어 먹고 있다. 신라 때와 고려 때는 동지를 전후해 팔관회를 가졌다. 이를 중동 팔관회라 한다. 팔관회는 대중이 모여 8계를 다짐하는 모임이다. 8계는 다음과 같다.
1. 살생하지 말라.
2. 도둑질 하지 말라.
3. 사음하지 말라.
4. 거짓말하지 말라.
5. 취하는 것을 마시지 말라.
6. 꽃다발을 쓰거나 몸에 행을 바르지 말며 노래하고 춤추는 곳에 구경가지 말라.
7. 높고 크게 잘 꾸민 평상에 앉지 말라.
8. 때 아니면 먹지 말라. 한해가 지나는 작은 설날에 송구영신하는 마음의 자세를 8계로 다졌던 옛 선배 불자들의 신행에 부러움을 느낀다. 요즘엔 동지풍속이 점차 사라져 간다. 크리스마스 축제에 우리 고유 풍속이 제자리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절에서는 동지 입재가 늘어나고 있다. 동지의 풍속도 좋은 의미에서 재 조명돼 우리의 것으로 재현되야 할 것이다. 동짓날 절에 가서 일년동안 잘못한 일이 있으면 부처님 앞에서 팜회하고 잘한일이 있으면 새해에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동지 기도의 참뜻이다. 동지기도때 철야 정근을 한다. 밤 10시부터 ‘석가모니불’ 정근에 들어가 다음날 아침예불까지 계속 한다. 새벽에 팥죽 또는 잣죽을 먹는다. 이날 수계식도 겸해 불자들에게 새 이름을 주고 부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 경신일 밤새기>> 동지가 지나서 드는 경신일에는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샌다. 동지 이후의 경신일은 6년에 한번 든다. 경신일 밤에는 잠이 들지 않기 위해 큰 소리가 나는 악기 즉, 징이나 꽹과리를 두들기며 불경을 읽었다. 경신일에 밤을 새는 것은 도교에서 유래됐으나 불교와의 관계가 더 깊어졌다. 도교에서는 사람의 몸에 세 마리의 시(尸)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삼시(三尸)라고 한다. 한 마리는 이마에 있고 한 마리는 심장뒤에 있으며 한 마리는 배꼽 아래 단전에 있다는 것이다. 삼시는 몸에 숨어 있으면서 사람의 잘못을 기록했다가 경신일에 사람이 잠들면 옥황상제에게 기록을 보관한다. 삼시가 기록하는 것은 산과 기로 대별된다. 산에 해당하는 잘못을 저지르면 수명명부에서 3일이 감산되고 기에 해당하는 죄가 보고되면 백일이 감수된다. 사람이 기를 10번만 저지르면 10년이 감수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경신일에 삼시가 몸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기위해 사람들은 잠을 자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동지 이후에 든 경신일을 7번 지키면 삼시가 영원히 없어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42년 동안 경신수야 하면 불로장수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도교의 이와 같은 삼시설이 불교로 흡수돼 지금도 일부 절에서 경신주야 하는 곳이 있다. 도교의 삼시를 쫒는 데에 부처님 말씀이 동원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삼시도 불법 앞에서는 악한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법으로 삼시의 활동을 억제시키는 한편 불법에 따른 나쁜 짓을 하지 않아 산과 기의 나쁜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자연히 장수한다. 장수 무병한 것은 좋은 영양분과 충분한 휴식에서 얻을 수 있지만 마음에 가책이 없고 자애로우며 편하면 그것이 장수의 길임을 경신수야의 풍속은 말해준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경우 의사는 환자에게 절대 안정을 요구한다. 절대안정을 위해 외부인과의 만남을 차단하고 혼자 있게 한다. <열반경> 제5권에는 “해찰이 안정이다. 참 안정이란 끝까지 해탈함이다.” 라는 가르침이 있다. 진실로 안정하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있는 번뇌와 갈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열반경> 제5권에서는 계속한다. “선남자의 남섬부주의 중생에 두 부류가 있으니 하나는 신심이 있는 부류요, 다른 하나는 신심이 없는 부류다. 신심이 있는 이는 치료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젠가는 열반을 얻을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신심이 없는 중생은 치료 할 수 없다.”
한편 동지는 다음과 같이 불러진다. 음력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는데 중동지와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지만,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팥떡을 먹는다. 그 이유는 애동지에 팥죽을 먹으면 아이들이 병에 잘 걸리고 나쁜 일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애동지는 지역에 따라 애기동지, 소동지, 아그동지로도 불린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