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26. 08:50ㆍ한시와 명언 보기
今夜去何處
유득공
荳田烏犢子(두전오독자)콩밭에 들어온 검은 송아지
打打不知去(타타부지거)아무리 때려도 나가지 않네
休踢衾底郞(휴척금저랑)이불 속 낭군님 걷어차지 마라
今夜去何處(금야거하처)이 밤중에 대체 갈 데가 어디 있노
"콩밭에 들어가서 콩잎 뜯어먹는 검은 송아지를 아무리 내쫓은들 그 콩잎 두고 제 어딜 가며/ 이불 아래 들어온 님을 발로 툭 박차 미적미적하며 나가라 한들 이 아닌 밤중에 날 버리고 제 어디로 가리?/아마도 싸우고 못 말릴 것은 님이신가 하노라" 노가재(老歌齋) 김수장(金壽長:1690-?)의 '해동가요(海東歌謠)'에 수록되어 있는 작자미상의 사설시조 한 편을 오늘날 말로 풀이해 봤다. 위에서 소개한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1748-1807)의 작품은 바로 이 사설시조를 한시의 형태로 번역한 것.
배가 너무 고파 남의 집 콩밭으로 막무가내 뛰어든 송아지는 밭주인이 아무리 나가라고 혹독하게 매질을 해도 매를 맞아가며 그 콩잎을 먹는다. 밭주인이 소를 때릴 때는 모두 다 그만한 이유가 있듯이, 한 이불 속의 낭군님을 마누라가 걷어찰 때도 무슨 까닭이 있을 게다. 무언가 마누라에게 걷어차일 짓을 한 것이 분명하고, 걷어차일 짓을 했으니까 걷어차여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운 정 고운 정 다든 낭군님을 너무 혹독하게 걷어차진 마라. 이 깊은 밤중에 도대체 갈 데가 어디 있다고, 이미 기가 죽을 대로 죽은 낭군님을 이토록 모질게 걷어차느냐.우리나라의 마누라들이여! 퇴직하여 집에서 빈둥거리며 삼시 새끼를 다 얻어먹는다고 낭군님들을 너무 구박하지 마라. 삼식(三食)이는 물론이고 이식(二食)이도 정말 달갑지가 않고, 일식(一食)이 까지는 봐주지만 이왕이면 무식(無食)이가 제일 좋다면서, 낭군님을 자꾸 대문 밖으로 내몰지 마라. 한평생 처자식을 먹여 살린다고 말로 못할 수모를 겪으면서 죽자 살자 일을 했을 뿐인데, 갈 데도 없는 사람을 왜 이렇게 모질게 거리로 내쫓으려 하느냐. 어쩌다 보니, 걷어차일 실수를 좀 했다 치자. 하지만 내 몸의 살을 흙으로 삼고, 내 뼈로 기둥 세워 서까래를 걸치고, 내 머리카락 뽑아 지붕을 덮으며, 피와 땀과 눈물로 반죽하여 겨우 마련한 내 집을 두고, 어디로 가라고 이토록 야박하게 걷어차느냐?
밥하고 설거지는 내가 다 할게. 집안 청소도 내가 다 할 게. 빨래도 내가 해서 착착 다 개 놓을게. 그러니 삼식이니 뭐니 하며 걷어찰 생각일랑 이제 제발 그만 하시라, 동방예의지국의 마음씨 고왔던 마누라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