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4. 10:31ㆍ한시와 명언 보기
[감상] 이 시는 헝가리의 자유 의거를 강압하기 위하여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 침입한 소련군의 무자비한 총탄에 쓰러져 간 한 헝가리 소녀의 죽음이 한강의 모래 사장 위에서 공산 침략에 죽어간 한국 소녀의 죽음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어 헝가리 다뉴브 강의 흐름과 한국 한강의 흐름을 연상적용으로 이어가며 자유의 수호를 표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시사성(時事性)과 사회성을 가진 시가 성공하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이 시가 예술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이렇게 박력있는 연상수법이 교묘히 도입되어 헝가리의 불행이 한국의 불행이며,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서로가 공동운명체로 존재하는 것을 재인식한 데 있다. 자유를 위해 죽어간 용기 있는 그 소녀들의 영혼이 민족의 영혼에, 인류에 양심에 영원히 살아 남아 자유수호와 정의를 위한 불굴의 저항정신으로 싹트고 있다는 의미가 감동을 주는 것이다. 헝가리 소녀의 참상이 구체적인 매개를 통하여 전편에 감동을 일게 하고, 자유와 정의를 옹호하는 시인의 정신이 감명 깊게 동감되도록 한 것이다. 자유를 한 번 잃고 나면 목숨을 걸도 싸워서 찾을 수밖에는 없는 아주 찾아내기 어려운 것이라고 하는 것을 비굴했던 자기 자신의 잠재의식과 결부시켜 실감있게 전달한 메시지라 하겠다. - 박명용 < 한국 현대시 해석과 감상> 중에서 주) 헝가리 혁명(1956.10.23.) 결과: 11.4.소련탱크 침공 공산정권 재수립 1956년 헝가리 혁명(헝가리어: 1956-os forradalom)은 1956년 10월 23일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자유를 갈구하는 시민들의 함성으로 시작됐다. 학생·노동자·시민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과 공포 정치에 반대해 도나우 강변의 바므 광장에서 반(反)정부집회를 열었다. 복수정당제에 의한 총선거, 헝가리 주재 소련군의 철수, 표현과 사상의 자유, 정치범의 석방 등 16개 항목을 요구하며 억압적인 체제에 억눌려왔던 불만을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시민들은 헝가리 국기에 동그란 구멍을 크게 뚫어 국기에 그려져 있던 국장을 떼어내고 건물 옥상 등에 걸려 있던 공산당의 상징인 붉은 별 등을 떼어내는 한편 도시 곳곳에 있던 스탈린 동상을 파괴하는 등 반정부 자세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저널리스트인 오베르소프스키 쥘러(Obersovszky Gyula)도 다음날인 10월 24일 ‘이가샤그(Igazság, 진실)’라는 제목의 일간지를 발행해 봉기를 한층 고무시켰다. 그는 신문발행으로 나중에 사형이 언도되어 형장으로 끌려갔다가 밤이 깊어 총살에 실패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처형이 연기됐는데, 그날 니키타 흐루쇼프 소비에트 연방 수상이 봉기 관련자의 사형에 대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항의 서한을 읽고는 카다르 야노시 헝가리 사회주의 노동당 제1서기에게 적당히 처리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살아났다. 정세는 시민의 개혁 요구에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산당은 10월 24일 개혁파 인사 임레너지를 수상으로 지명했다. 너지는 정치범 석방, 비밀경찰 폐지, 소련군의 부다페스트 철수를 발표하고 헝가리의 바르샤바 조약기구 탈퇴와 코메콘 탈퇴를 선언했다. 소련은 이 움직임을 ‘소련 간섭으로부터의 이탈’로 판단하고 11월 4일 헝가리에 탱크 1,000대와 병사 15만 명을 투입해 너지 정권을 힘으로 무너뜨렸다. 그 후 다시금 친소 정권이 세워지고 혁명군 지휘관이던 너지와 팔 말레테르 등은 1958년 부다페스트 감옥에서 처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