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6. 09:36ㆍ역사속의 오늘
1945.8.6.-히로시마 원폭 투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広島・長崎原子爆彈投下, 영어: Atomic bombings of Hiroshima and Nagasaki)는 제2차 세계대전이 다 끝나갈 무렵 1945년 미국은 일본에 두 개의 원자폭탄을 투하했는데, 8월 6일 히로시마 시에 한 개의 원자폭탄을 떨어뜨렸고 8월 9일 나가사키 시에 나머지 한 개의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원자폭탄 두 개를 떨어뜨리기 전까지 6개월간 미국은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도시 67개에 전락상 집중하여 폭격하였다. 영국, 중화민국과 함께 미국은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하라고 강요하였으나 일본은 항복하지 않았다. 1945년 8월 6일 월요일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 이 명령하여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가 히로시마에, 3일 후 8월 9일 "팻 맨"(Fat man)이 나가사키에 투하됐다. 이 원자폭탄 두 개는 인류사 최초로 전쟁에서 일반 시민 학살에 쓰인 원자폭탄이었다. 원자폭탄 투하가 결정된 히로시마는 당시 일본군 제2사령부이면서 통신 센터이자 병참 기지였으므로, 일본의 군사상으로 중요한 근거지였다.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고 초기 2개월에서 4개월 동안 히로시마에서는 90,000명에서 166,000명, 나가사키에서는 60,000명에서 80,000명 정도가 사망했으며,그 중 각 도시 사망자 절반은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당일에 집계되었다. 히로시마 의료기관은 원폭투하 탓으로 60%가 섬광화상으로 30%가 건물 잔해물로 10%가 기타 원인으로 죽었다고 한 이 보고가 있은 후 다음 달에 더 많이 죽었는데 이는 원폭투하 탓에 후폭풍과 피폭과 기타 질병 합병증과 부상 탓에 발생했다. 미국에선 이 사건이 최단기에 가장 많은 시민을 죽였다고 평가하였고 15%에서 20%가 피폭으로 20%에서 30%가 섬광화상으로 50%에서 60%가 질병과 부상으로 죽었다고 보고했다. 사망자들 중 대부분은 보통 시민들이었다. 나가사키 원폭투하 6일 후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으며, 9월 2일 항복 문서에 사인하면서 공식적으로 태평양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알렸다. 한편 독일은 이미 5월 7일 유럽에서 항복을 선언했다. 이 원폭투하로 인해 전후 일본은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며, 갖지 않으며, 들여오지 않겠다"는 비핵 3원칙을 수용했다. 이 원자폭탄 투하 사건은 윤리적 문제와 "당시 미국이 정말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주제로 아직까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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