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밀포드 트래킹 예약에서 뉴질랜드행 비행기 탑승까지

2018. 2. 20. 20:16지맥산행/아름다운 가볼곳(해외)

<밀포드 트래킹을 결심하다>


나는 한 번도 등산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학창시절 어쩔 수 없이 놀이 삼아 등산길에 나섰다가도 입구 계곡에서 밥이나 해먹고 오는 게 전부였다. 내 친구들도 전부 같은 종류였다. "올라갔다 다시 내려올 산을 왜 저 고생을 하면서 가지?" 하며 우린 산에 올라가는 사람을 놀려먹기 일쑤였다.


걷는 건 매우 좋아했는데 어려서부터 많이 걸어서 다리가 체격에 비해 굵은 게 콤플렉스일 정도였다. 2박3일 첫 제주올레를 한 이후에는 매 학기말이 되면 제주에서 걷는 것으로 방학을 시작했다. 제주올레를 평평한 길로만 내게 된 것도 등산을 잘 못했던 서명숙 이사장의 숨은 뜻이었다고 한다. 걷기는 좋아하지만 등산을 싫어하는 우리 같은 사람의 마음을 간파했던 것이다.


밀포드 트래킹에 대한 소식은 몇 해 전 이화여대 교수 산악회로부터 처음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광고문구가 나를 매혹시켰다. 그러나 망설임 끝에 불참하기로 했다. 당시 인도여행이 예정되어 있기도 했지만 하루 최고 19킬로 주파와 등산이 포함된 코스는 불가능해보였다. 그 다음 해에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밀포드 트레킹을 다녀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밀포드는 여전히 내겐 넘사벽이었다.


지난 해 5월 남편이 고교 동창들과 소백산에 간다며 철쭉을 보고 싶으면 같이 가자고 했다. 등반을 좋아하는 남편은 한 달에 두 세번씩 내게 함께 등산을 하자고 조르지만 나는 매번 집에서 혼자 동네를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내가 끼면 그야말로 민폐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일행은 잘 못 걷는 사람들이니 편하게 따라와도 된다고 남편은 나를 여러 번 설득했다.


오로지 꽃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따라 나섰는데 나는 앞서서 느리지만 꾸준히 올라갔고 남편 친구들은 뒤처져서 힘들어했다. 소백산 정상은 절정을 이뤘던 철쭉이 막 시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북한산 옆에 살면서 바위산만 봐왔던 나로서는 동유럽의 평원 같은 소백산 정상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한 없이 불어닥치던 바람도 좋았고 꽃도 아름다웠지만 내가 등산을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했다는 사실이 더 신기하기만 했다.


<동네산을 무시하지 마라>

엄홍길대장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동네산을 무시하지 마라"

그 말을 되새기며 열심히 동네산 능선을 걸었던 게 어언 10년 째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북한산 어귀에 살면서 능선만 걸었음에도 어느새 가벼운 등산이 어렵지 않게 된 것이다.


그 날부터 내 마음은 어느 새 밀포드에 가 있었다. 본격적으로 등산을 하자고 남편에게 제안했다. 평생 혼자 등산을 하던 남편으로서는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없었으리라. 구기동 쪽에서 올라가는 건 계단이 많아서 너무 어려웠다. 평창동에서 구파발로 내려오는 구간이 가장 쉽다는 걸 발견 한 이후 서너 번 이 길을 완주했다. 친구와 함께 하기도 했다. 우리가 방문할 뉴질랜드는 여름이니 더운 여름에 예행연습을 했다. 그리곤 마침내 함께 여행할 부부 일행을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자동차 여행을 하려면 일행이 있는 편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밀포드 트래킹을 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Ultimate Hikes라는 회사를 통해 가이드와 함께 Lodge에서 제공해주는 식사와 숙소를 이용하는 방법과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공원에서 제공하는 Hut(군대 막사 같은 숙소)에서 자면서 식사를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이다. 두 코스의 가격은 10배 이상 차이가 나지만 Hut은 이미 1년 전에 마감이 되고 자리가 없었다. 자리가 있다해도 음식물에 침대 시트까지 짊어지고 걸어야 하기에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막상 가보니 Hut에서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20-30대 젊은이들이었다. 가이드투어는 뉴질랜드 달러로 1실 2인의 경우, 1인 2500불 가량된다. 6인실 2층 침대를 사용하면 2130불이다.


국내 여행사를 통해 비행기표와 호텔 예약까지 받고 오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의외로 여행사를 통한 예약이 그리 비싸지 않기에 이것도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남북섬 여행계획을 가지고 있었기에 내가 직접 아래 사이트에서 예약했다. 8월 말에 예약을 했는데 그 때도 1인실과 2인실은 남은 자리가 거의 없었다.


https://www.ultimatehikes.co.nz/en/guided-walks/the-milford-track


<한국인이 다수인 밀포드 트래킹>

총인원은 50명인데 버스 한대로 움직이고 가이드는 4명이다. 우리팀은 6인실이 3명 밖에 등록을 하지 않아서 47명이 함께 트래킹을 했다. 그 중 10명이 한국 사람이었다. 뉴질랜드인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국가별 최대 인원이었다. 식사 때마다 흰쌀밥과 고추장이 자주 제공되는 것으로 봐도 한국인이 얼마나 밀포드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여행은 전체가 4박5일인데 하루 전날 오후 4시30분에 퀸스타운 시내에 있는 Ultimate Hikes 건물에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이것만 하려고 해도 6일 일정을 내야 한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가이드 중에도 한국인이 한 명 있다고 하고, 한국어 안내서와 한국인에 의한 오리엔테이션이 가능하다.


우리는 1월 27일 출발하는 프로그램을 예약했기에 한국에서 25일 저녁에 출발하는 오클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를 타고서는 깜짝 놀랐다. 비행기에는 초딩, 중딩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한 가득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보니 어학연수를 가는 것 같았다. 비용대비 최고의 효과를 찾아내는 깜찍한 한국 엄마들 같으니라고... 한 때 필리핀으로 영어연수를 가는게 유행이더니 요즘은 뉴질랜드가 대안인 듯 했다. 그런데 엄마들이 참 보람있을만 한게 그 어린 아이들이 뉴질랜드에 도착해서는 이민국 면접이나 짐 찾는데 어찌나 유창한 영어로 의사소통을 잘 하는지 정말 귀엽고 자랑스러웠다.


우리는 60이 되어 남편 회갑기념으로 난생 처음 가보는 뉴질랜드를 이 아이들은 방학마다 들랑거린다니 참으로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식들에게 어학연수 한 번 시키지 않고 뭘한거지 의문이 들었다. 20년간 부부 교수의 기본 재산이 30억이라는 박근혜정부 한 장관후보자의 발언에 우린 교수 자격이 없는건가 회의에 빠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가르쳤지만 아이들 어학연수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부의 축적은 무엇으로 하는건지 잠시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 장관후보가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았다면 30억 축적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이 여행기를 보며 어떤 이들은 이마저도 부러워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여행기가 누군가에게는 자괴감을 주는 원인은 아닐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요즘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80-90대 외국인 노인들의 단체여행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휠체어에 지팡이를 짚고 혹은 노부부가 손잡고 그렇게 열심히 다닐 수가 없다. 노인 빈곤률, 자살률 OECD 최고의 나라에서도 노인들이 해외여행을 취미생활로 삼을 날이 곧 오기를 기대해보며, 여행기를 틈 날 때마다 계속해보겠다.

출처 : 조기숙의 리더십 이야기
글쓴이 : 조기숙 원글보기
메모 : 뉴질랜드 밀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