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의 상전벽해(2003년도 작)

2016. 8. 17. 18:14산따라 길따라

20여년의 桑田碧海


朝夕으로 스산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 단풍, 난 가을속으로 커다란 한 줄기의 뿌연 안개를 벗삼아 서울행 경부고속도로를 疾走하였다.


바깥의 찬바람이 차량을 심하게 때리니 겨울인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차들은 열병식을 하듯 나란히 세월을 향하여 너무나도 바삐 달려가고 있는 듯 어렵사리 판교JC에 다다르니 피로가 급습하지만 아직도 남은 목적지를 향하여 가속 페달을 신나게 밟는다. 지나가는 도시가 일산 신도시가 눈앞에 들어왔을 무렵 서산에 목을 건 빠알간 저녁놀이 땅거미로 다가와서 잠시의 피로감을 멀리 떨쳐 버리는 듯하지만, 바로 앞의 광경은 20여년의 세월속에서 완전한 미래가 있었음을 증명이라고 하듯 너무나 변해 버린 한낮 시골의 모습이 큰 대도시로 변화되었다니 桑田碧海란 글귀가 뇌리를 때리고 지나가는 듯 멍때리고 있다.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던 20여 년전

먼지가 흩날리면서 강행군과 哨兵으로 근무하던 도로 그리고 군가로 고함치던 땅.

지금 自由路라는 新作路로 바뀌어 옛 전우를 맞이하고 155마일 鐵柵과 홀로 앉은

외기러기가  20여 년 기나긴 과거속으로 나를 沒入시키는 것 같다.


잠시동안 휴게소에 앉아 지나온 과거를 回想해 보기도 하지만 현재의 분위기는 과거가

아니고 그렇게 다시 한번 꼭 와 보고 싶은 지역이었는데 그 기나긴 세월속에서도 유유히 흐르는 만이 말없이 세상속으로 흘러갔음을 예견하는 듯하다.


하루 해가 너무나도 짧고 어렵게 臨津閣에 도착하니 세상이 꿈속으로 들어간 듯 한 밤중이 되었고 다음날 통일의 신념으로 마라톤 대회도 무사히 완주하고 주변을 두루 돌아보고 자라나는 2세들의 산 교육장인 경기도 파주시오두산 統一 展望臺를 들렀다.


전망대가 비록 높지는 않지만 좌측으로 漢江이 우측으로 臨陣江이 흘러와서 만나는 지점마주치는 북녘땅 개풍군이 눈에 완전히 들어오고 강 사이는 3.2Km거리를 두고 남과 북이 마주 보고 있다뛰어가면 10분정도 걸린 寸陰의 거리인데 더 이상 아무도 건너가질 못한다니 답답하기가 그지없다. 분단과 이산의 고통이 한눈에 들어오는곳 임진강

강물은 말없이 흐르지만 이념과 분쟁으로 끊이지 않는 지역.

북녘의 산하는 20여 년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없이 그대인데 초병은 老兵으로 변화되어 다시 여기를 찾는다.

지금 이순간도 대남방송은 여전하나 상호 비방하는 자세는 없어진 것이 철책의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다고 봐야 할 것 같다.

 冷戰終戰이 되어 아무도 갈 수 없는 땅!

한가로운 새()만이 갈 수 있는 江山

사람들도 같이 마음뿐만 아니라 마음대로 몸도 같이 갈 수 있는 그런 山河가 되기를 하는 바램이다.

우리 고향에선 느껴보지 못하는 코스모스 향연

양쪽 길을 수놓고 노병을 맞이하고 너울너울 바람 따라 춤을 추고 있다.

그리고 초소 주변의 민가에서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 지금도 무탈하게 잘 살고 계시것제? 많이 보고파 진다. 그때 할머니는 지금엔  저 세상사람이 안 되었을까?

시간의 야속함이랄까 내일을 위하여 되돌아와야만 되는 아쉬운 시간들

시간과 공간을 잠시라도 붙잡을수가 없는 것이 진정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또 20년이 지난 未來엔 그땐 어떤 모습일까?

청년의 전우도 세월속에 白髮長年이 되었을텐네 흐르는 山河는 그대로일까?

아련한 過去腦裏를 떨칠줄 모른다.

이렇게 한번 보고 싶은곳에 다녀 오는데 20년이 걸렸으니 지나온 20여 년전이 마냥 그리웁고 江山도 변한데 人心은 그대로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老兵의 가슴은 그저 虛妄하게 뻥 뚤린 기분이다.

--2003.10. 초 임진강마라톤 참가중--

<!--[if !supportEmptyParas]--> <!--[end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