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27. 16:32ㆍ팔공산 자락
如 犀 角 獨 步 行
>>> 대구 앞산(2)<<<
0. 일시: 2022. 2. 27.(일) 10:03 ~ 13:30 (3시간27분) * 100년지기
0. 코스: 신광사-안일사- 왕굴-앞산정상-대덕산성 케이블카 전망대-대덕전망대-안일사-원점
0. 거리: 5.8km
모처럼 100년지기와의 주변산 마무리 등산에 나선다. 하나하나 오르다가보니 주변 정상엔 거의 올랐지싶다. 2019년 크리스마스때 올랐으니 벌써 2년 세월이 지난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상 주변은 변함이 없지만 대덕산성 주변엔 데크 공사를 한다고 물품들이 어지럽게 산로를 막고 있다. 산은 자연 그대로가 좋은데 언제부터인가 전국의 산엔 데크 아님 다리공사 그것도 아님 산로에 암석깔기 등 넘 인공적으로 변해가니 산꾼으로선 안타까움마저 든다. 자연 그대로의 산이 좋지 싶은데~~~~ 아무튼 100년지기랑 춥지 않는 날씨속에 먼지를 잔뜩 마시면서 즐겁게 산길을 마무리한다. 덕분에 산 정상에서 맛나는 칼국수도 먹어보는 호사도 누려본다. (* 산 정상에서 이런 것을 먹어보기도 첨이지 싶다.ㅎㅎ)
# 앞산(658.7m)-2년만에 올라오니 날씨는 좋은데도 미세먼지가 아름다운 경치를 흐리게 만든다.정상에 서니 대구시가지와 비슬산 등 주변산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주말이라 많은 시민들이 올라오니 가문날씨탓에 먼지가 요동을 치고 있다. 가창댐 주변엔 산불이 났는지 헬리콥터가 굉음을 내면서 수시로 왔다갔다를 하고 있다.
# 들머리 신광사 주차장
# 앞산공원 스토리텔링 안내판과 올라가야할 등산로
# 안일사-안일사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산 225번지 ?앞산(비슬산) 중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이다. 많은 위락시설과 체육시설, 등산로가 완비되어 대구시민들의 휴식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앞산은 예로부터 고려 태조 왕건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오는 사찰이 3곳 있다. 은적사와 임휴사, 그리고 안일사이다.이 중 앞산 안지랑골에 자리한 안일사는 옛날 태조 왕건이 공산에서 후백제 견훤과 맞서 싸우다 대패한 후 팔공산을 떠나 피신하면서 은적사에서 몸을 숨기고 이 곳에 와서야 편안히 쉴 수 있었다고 해 안일사(安逸寺)로 이름지은 곳이다. 지금도 안일사가 위치한 안지랑골 안에는 왕건이 숨어들었다는 왕굴이 남아있다. 안일사는 원래 신라 경순왕대에 창건한 사찰로 이미 오랜 역사를 간직해 오고 있었다. 앞산은 흔히 비슬산 혹은 대덕산이라고 불리워지고 있으나 안일사가 자리한 곳은 보통 비슬산이라고 부른다. 달성, 현풍에 걸쳐 있는 비슬산은 예로부터 수많은 사찰이 산재하고 있는 한국불교의 또 다른 영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안일사가 자리한 곳 역시 비슬산 중턱으로 멀리 대구시내가 아름답게 조망되는 자리에 있어 시민들과 순례자들의 꽉 막힌 마음 속을 탁 트이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또한 안일사는 일제강점기 동안 독립운동가들이 비밀리에 국권회복운동을 펼쳐나간 뜻깊은 장소이기도 해 우리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역사적 성지라는 사실도 안일사를 더욱 빛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안일사는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창건 후의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으나 단지 일제강점기 이후의 역사는 조금이나마 더듬어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안일사는 기존의 대웅전을 헐고 대웅전 신축불사를 시작으로 일주문, 종각, 요사채 불사를 진행하고 있어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안일사는 1990년부터 시내에서 포교당과 함께 유치원을 운영하기 시작, 지역 내 대표 유치원이자 어린이포교의 중심도량으로 발돋움해 나가고 있다.
* 안일사에 숨어 있는 3.1운동 정신 *
1915년 1월 15일 윤상태(尹相泰)·서상일(徐相日)·이시영(李始榮) 등 13인이 이 절에 모여 우리 나라의 광복을 위해 일할 것을 서약하고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조직한 바 있다. 1932년 경송(慶松)이 중창하였으며, 3·1운동 때 3·1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민족대표 33인 중 1명인 용성(龍成)이 중창하여 유성사라고도 하였다. 1970년대 말 주지 철인(哲印)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 통일기원 돌탑-이 돌탑은 김종환씨가 1970년부터 2003년까지 33년간 조국의 남북통일을 기원하면서 만들었다고하며, 쌓은 돌들은 주변에 있는 돌로 높이가 23m 둘레가 75m의 규모로 15톤 트럭으로 528대 분량의 돌이 사용되었다고 한다.이 석탑은 전국에서 제일 규모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안내판)
# 왕굴- 고려 태조 왕건이 공수전투(927년)에서 견훤에게 대패한후 도망하면서 왕이 잠시 머물렀다는 굴로 사람이 들어가 숨으면 잘 보이질 않는것 같이 깊이는 얕지만 몸 피신은 가능할것 같다.
# 왕굴 암릉 정상-뒤돌아서 전망대를 지나 오르니 왕굴 암릉의 상단부가 나온다.
# 왕굴의 유래 안내판
# 왕굴 전망대- 대구시가지와 저멀리 팔공산도 가물거린다.
# 앞산 정상(658.7m)-원래는 前山이라고 했다는 유래가 적혀 있고~우리글로 앞산이 더 어울리는것 같다.
*2019.12.25. 당시의 사진
* 앞산에서의 일몰 장면(일행이 보내준 사진)
* 함께 올라온 100년지기
# 대덕산성-대구광역시 기념물 제7호. 표고 670m의 험준한 대덕산에 축성된 포곡식 산성(包谷式 : 계곡과 산정을 함께 두른 산성)이다. 대구의 진산(鎭山)인 대덕산은 동남쪽으로 산성산(山城山)과 비슬산(琵瑟山)으로 연결되고 서북쪽은 낙동강과 금호강의 평야와도 연접된다.속칭 안지랭이라 부르는 골짜기를 중심으로 석축하였으며 축조수법이 조잡하다. 건물지는 통일신라시대 또는 고려시대의 기와편 및 토기편이 흩어져서 발견되는 점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후기에 축성되어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려태조왕건(王建)이 파계사(把溪寺) 전투에서 후백제의 견훤(甄萱)에게 패하여 반야월을 거쳐 대덕산(大德山) 은적사(隱寂寺)에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나말여초(羅末麗初)에 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이 산성과 관련되는 기록으로는 《대구읍지》의 “成佛山有古城 今無(성불산유고성 금무)”라고 하는 기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의 “成佛山 古城 在壽城縣 西十里石築 周三千五十一尺 今廢(성불산 고성 재수성현 서10리석축 주3,051척 금폐)”라 한 사실에서 조선시대에는 사용되지 않았고 성벽 둘레가 3,051척임을 알 수 있다.(펀글)
# 대덕산성 전망대-옥상으로 올라서니 대구시가지 전체가 조망되는 전망이 엄청 좋은 전망대다. 늘 야간에 시내에서 처다보면 하늘과 맞닿은 지점 정상에 불빛이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1층은 음식점(풍국면 식당)겸 커피점이라 여기서 해물칼국수 한그릇으로 허기진 배도 채우고 잠시 쉬면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모처럼의 호사도 느끼어본다.
# 저멀리 대구스타디움과 안심공원 그리고 초례봉,팔공산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집도 보인다.
# 식당옆에서 설치되어 있는 세계 거리 이정표-아르헨티나가 젤 먼것 같다. 자그만치 19,363km..비행기로 시속 800km갈 경우 24시간이 꼬박 걸리는 거리다. 참 멀기는 먼 거리다.ㅎㅎ
# 풍국면 식당에서 주 메뉴인 해물칼국수- 산정상에서 이런 호사도 누려본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