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와 괴산 나들이(수주팔봉,탄금대,수옥폭포)

2022. 9. 11. 18:05산따라 길따라

如 犀 角 獨 步 行

>>>충주 (수주팔봉,탄금대,수옥폭포)나들이<<<

0. 일시: 2022. 9. 11.(일)   * 전일 / 100년지기

0. 간곳: 수주팔봉,탄금대,수옥폭포(괴산),이화령(괴산)

얼마전 KBS 주말드라마에 나온곳 충주 수주8봉을 보러 나선다. 추석 연휴인지라 차들이 붐빈다. 문경을 지나니 사고가 발생 많이 지체되어 할수없이 이화령 국도로 이동하니 훨씬 수월하게 질주된다. 주변은 4월 교육때 지나간곳이라 눈에 익다. 요새 길은 산을 뚫어서 지나가는 터널이 많다. 이래저래 도착하니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서 기념촬영하기에 바쁘다. 덩달아 몇장을 남기고 주차장과는 장면이 반대인지라 마을쪽(팔봉쉼터)으로 이동해서 나머지 흔적도 남긴다. 차를 몰다보니 새재자전거길이 나온다.  탄금대도 들린다. 여긴 2003년에 왔으니 20년이 다된것 같다. 임진왜란때 신립장군이 중과부적으로 전사한 곳 열두대도 방문 바로 앞이 남한강 강 폭이 엄청 넓고 깊다. 수옥폭포도 둘러보고 새재자전거길을 탐방하고자 차를 몰고 이화령으로 올라본다. 얼마 있지 않으면 이길로 잔차를 타고 이동하지 싶다. 막상 올라보니 걱정했던만큼 큰 오르막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본다. 작년 가을단풍길에 들렀으니 크게 오래되진 않는것 같다. 추석 연휴라 사람이 라이더,모토족,구경꾼 이화령은 인산인해다. 경기도 안산에서 온 라이더 2인이 부산에서 출발 3일째 이화령까지 도달했다고한다. 부산서 출발했으면 반은 지난것 같은 국토종주 라이딩길인데 왕부럽이다....나도 저렇게 할 수가 있을런지 의문스럽다. ㅎㅎㅎ

 

1. 수주팔봉

칼바위가 있는 수주팔봉은 달천 하류 살미면 토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계탄서원기(1586,노수신선생)에서 칼바위 협곡에 만들어진 가파른 절벽과 우뚝한 봉우리로 묘사하고 있다.이곳은 기묘사화 후 귀양 온 이자선생이 집을 짓고 살았으며, 이곳 또한 기묘사화로 인해 충주 용탄으로 낙향한 이연경선생이 거룻배를 타고 올라와 이자선생과 시문을 주고 받으며 풍류를 즐긴장소라고한다. 이 2선생의 가르침을 따르고자1582년 봄 충청감사와 충주목사 그리고 지방의 유림이 토계 북쪽 팔봉에 서원을 건립했으며 계탄서원이라 불렀다. 계탄은 이자의 호인 계옹과  이연경의 호인 탄수에서 한글자씩 따서 만들었으며 선생의 제자인  노수신이 계탄서원 완성의 '칼바위' 시를 지었다고 한다.(펀글)

 

# 주차장쪽에서 수주팔봉 사진

# 토계리 팔봉쉼터에서 수주팔봉 사진(강 건너편) / 드라마에서 나온 장면

#  KBS주말드라마에서 나온 장면 켑쳐

# 물수제비 돌 던지기

 

# 얼마 있지 않으면 잔차를 타고 지나갈 예정인 수주팔봉 앞 새재자전거길 중 일부

# 수주팔봉 흔들다리 위에서

2. 탄금대

탄금대 전투는 임진왜란때인 1592년 4월 부산에 상륙한 왜군 대병력이 파죽지세로 쳐들어오자 조정에서는 북방 방비에서 용맹을 떨친 신립을 삼도순변사(三道巡邊使)로 임명 이를 막게 하였다. 신립이 충주에 도착한 뒤 4월 24일 부장 몇 사람과 조령(鳥嶺)으로 달려가 형세를 살필 때 먼저 경상도로 남하했던 순변사 이일(李鎰)이 상주에서 패해 돌아왔다. 이 때 종사관(從事官) 김여물(金汝岉) 등이 “적은 군대로 왜적의 대군을 방어할 곳은 마땅히 지형이 험한 조령뿐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립은 그 말에 따르지 않고 “이곳에서는 기병(騎兵)을 쓸 수 없으니 마땅히 평원에서 일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6일 그는 드디어 충주의 서북 4㎞ 지점에 있는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으나, 앞에 논이 많아 말을 달리기에 불편하였다. 27일 고니시(小西行長)가 거느린 왜군은 이미 조령을 넘어 단월역(丹月驛)에 이르렀다. 이에 충주목사 이종장(李宗長)과 순변사 이일이 척후로 나갔지만 적군에게 길이 막혀 신립은 적정(敵情)을 정탐할 수 없었다. 28일 새벽 왜군은 부대를 나누어 본진은 충주성에 돌입하고, 좌군(左軍)은 달천(達川) 강변으로 숨어 내려왔으며, 우군(右軍)은 산으로 숨어 동쪽으로 나가 강을 건넜다. 신립은 당황해 충주성으로 급히 말을 달렸으나, 군대의 전열이 미처 정비되기도 전에 성안의 왜군이 나팔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출격 조선의 관군은 대패하였다. 신립은 탄금대로 돌아와 부장 김여물과 함께 적병 수 십 명을 사살한 뒤 강물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충주의 사민(士民)과 관속은 아군을 믿고 피난하지 않아 왜군에게 희생된 사람이 다른 지방보다 많았다. 신립의 패보(敗報)가 조정에 전해지자 민심이 극도로 혼란해지고, 국왕은 서울을 떠나 평안도로 몽진을 하게 되었다.(펀글)

# 신립장군 위령탑

# 신립장군이 순절하신 탄금대 열두대 돌- 430년 임진왜란때 왜군과 전투에 패한뒤 스스로 자결한 열두대이지만 당시의 처절했던 전쟁장면이 머리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 신립장군 순국터 안내석

# 앞엔 남한강 물이 큰 소리를 내면서 흘러 내려가고 있다.

3. 수옥폭포 

수옥폭포는 조령 제3관문에서 소조령을 향하여 흘러내리는 계류가 20m의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서 이루어진 폭포로 3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류의 두곳은 깊은 소를 이루고 있다. 수안보에서 연풍 방면으로 6km, 연풍에서 수안보 방면으로 5km 지점의 3번 국도에서는 400m의 거리에 있다.고려 말기에는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여 초가를 지어 행궁을 삼고, 조그만 절을 지어 불자를 삼아 폭포 아래 작은 정자를 지어 비통함을 잊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폭포 아래 언덕진 곳에 정자가 있었는데 1711년(숙종37년)에 연풍현감으로 있던 조유수가 청렴했던 자기의 삼촌 동강 조상우를 기리기 위해 정자를 짓고 수옥정이라 이름지었다. 또한, 상류의 2단에서 떨어지는 깊은 소는 조유수가 사람을 시켜 물을 모아 떨어지게 하기 위하여 파놓은 것이라 한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정자는 낡아 없어졌으나 1960년에 괴산군의 지원을 받은 지역주민들이 팔각정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드라마 여인천하와 다모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펀글)

4. 이화령

이화령은 백두대간의 재로 문경시와 괴산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고갯마루이며, 최근엔 새재 자전거길이 생기면서 이곳 구길로 통과하는 국토종주꾼들이 자전거를 타고 오르내리는 꾼들이 많이 보인다. 괴산에서 이곳까지 오를려면 2시간여정도를 힘차게 페달을 밟아야만되지 싶다. 연풍면사무소에서 7.2km정도의 거리로 경사도가 7%정도다. 여기서 우측 산으로 오르면 황학산 좌측으로 오르면 조령산과 신선암봉으로 연결되는 대간길이다.

 

# 백두대간 이화령 입석(548m)

# 새재자전거길 안내석

# 이화령 자전거 인증센터 부스에서 손바닥에 인증을 해본다.ㅎㅎㅎ

# 이화령에서 내려다보는 괴산방면의 발 아래 이화령 터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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