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1. 18:39ㆍ산따라 길따라
如 犀 角 獨 步 行
>>>해인사 16암자 돌아보기<<<
0. 일시: 2022.10.11.(토) 10:02 ~ 14:04 (4시간 2분 단,차량방문3곳 제외) * 100년지기
0. 순례: 성보박물관-금강굴(암)-보현암-삼선암-금선암-원당암-홍제암-용탑선원-해인사-백련암-희랑대-지족암-국일암-약수암-성보박물관원점-(9.3km차량이동)-관음암-고운암-길상암(차량:4.1km)
0. 거리: 9.3+4.1=13.4km
2년전 통도사19암자를 홀로 순례자가 되어 본적이 있다. 해인사에도 많은 암자가 있다는것을 최근에야 알게되어 전 암자 순례길에 나선다. 날씨는 엄청 좋다. 간간이 단풍도 보인다. 지난주 토 정상엔 많은 단풍이 있었는데..해인사 암자를 주마간산식으로 둘러 보아도 많은 유물과 많은 사연이 있어 암자와 특이사항을 다 알기엔 역부족이지만 대충 훑어보는 식으로 순례한다. 다른 분들의 불로그에 들어가 익히 알지 못했던 여러가지 사항도 새롭게 알게 되어 남의 글도 참고한다. 13개 암자를 한바퀴 돌고 좀 떨어져 있는 3암자(관음암,고운암,길상암)도 차량으로 둘러보니 암자의 맛을 느낄수가 있다. 16암자(1사,15암자)를 전부 돌아보고 남은 암자 없으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한 느낌이다. 또 시간을 잡아 힘들지만 사는곳 주변에 있는 영천 은해사 1사,7암자도 함 돌아봐야겠다.(선답자의 기록을 보니 거리가 19km에 오르막도 심한 곳인데 6시간 반정도 걸린다고 적혀 있다.)
* 들머리-오늘 13암자를 돌아보기 위하여 이곳에서 애마의 고삐를 붙들어 메고 유람삼아 걷기 시작한다.(10:02)
1. 금강굴(암): 박물관에서 조금 올라 입구3거리에서 좌틀 들어가면 나오는곳 보현암과 금강굴(금강암)은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로 1974년 전국 비구니회 회장 혜춘스님이 건립하였다고 되어 있으며, 마당에 있는 백송의 아름다운 자태가 넘 힘이 있어 보이고 뒷 배경의 단풍이 가을임을 알린다.
2. 보현암: 보현암의 대웅전이 뒷산에 떨어져 자그만하게 지어져 있는데 스님들의 공부 집중하는 수행처라 떨어져 지었다고하며 뒷산 가을의 아름다움에 빠저들수도~~~
(* 빌려서 올린 사진)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갔는가 오고감이 하나일세 청풍은 만리로세....한자글은 알아보기가 힘이 든다.
3. 삼선암: 삼선암은 1893년 지은 엄청 오래된 절이며 넘 조용하기에 주변만 서성이다 사진만 한장박고 다리로 되돌아 나오면서 스님에게 금선암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고 그 방향으로 진행한다. 3선녀는 있을까?
* 불타미아모나 반대 씌어저 있는 바위로 읽을려니 힘들다.ㅎㅎ
4. 금선암: 금선암은 1945년 해방되던 해가 만들어진 비구니 사찰로 밖에서 들어도 염불소리가 엄청 크게 나온다.
* 수다라 - 수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적은 경전으로 이곳에서 차 한잔하면서 경전공부를 하라는게 아닐까?차 종류도 많이 파는것 같은데 시간이 허락치 않아서 들어가질 못했다.
5. 원당암-원당암은 신라 애장왕때 창건된 절로 해인사 최초의 가람이며 해인사보다 역사가 깊다.주 법당인 보광전은 서방극락을 주재하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은 부처가 설법을 할때 손모양을 표현하고 있다. 최근에 혜암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더 활기찬 암자가 되었다고 한다.
* 다층석탑-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다층석탑은 하대석은 화강암이고 기단부와 몸체는 청석으로 불리는 점판암을 사용하여 만들어져 법당앞에 배치되어 있다.
* 미소굴 옆에 있는 비석-"공부하다 죽어라"죽석푯말
* 미소굴과 미소굴 안에 있는 혜암스님 영정 그리고 혜암스님 부도탑
* 혜암스님- 1993년 성철스님 뒤를 이어 해인총림 6대 방장과 조계종 10대 종정을 역임하시고 평생 수좌(국사및 왕사가 되실분)로 공부에 전념하신 스님은 2001년12월31일 미소굴에서 인과가 역연하니 참선 잘해라라는 당부 말씀을 남기고 열반에 드셨다고 전해진다.
* 해인사 입구에 있는 혜암스님의 부도탑(성철스님 부도탑 바로 근처)
6. 홍제암- 홍제암은 임진왜란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킨 사명대사에게 선조가 하사한 암자로 1608년에 창건하시어 수도하시다 입적한 곳이기도 하다.사명대사의 일대기는 홍길동전의 집필한 허균이 적었는데, 1943년 일본넘들에 의해 부서진(4등분)것을 1958년 복원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석장비는 광해군이 사명대사에게 내린 시호인 "자통홍제존자유정대사"가 적혀 있는데 홍제암의 명칭이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사명대사 부도물은 1610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 사명대사 일대기비-부서진 상흔이 남아 있어 다시한번 보게 만든다. 5백년의 세월이 지난지라 글씨가 넘 흐리다.
7.용탑선원-3.1운동 독립선언문을 만든 33인 한분이신 용성스님의 사리탑의 수호관리를 위해 1945년 창건된 암자로 스님의 제자에 제자이신 성철스님에게 다른 스님들에겐 선생이란 호칭을 불렀지만 성철스님에겐 스님이라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고,해인사 일주문의 갈림길에서 홍제암과 반대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인사에서 들어올려면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다. 이것은 건방진 관리들이 말을 타고 들어오는 걸 방지하기 위하여 만든 다리인데 지금은 극락간다는 찌라시 정보가 나돌고 있다고 전해온다. 이곳은 해인 총림 고암 대종사께서 주석하시다 열반하신곳으로 주변엔 백용성선사 추모비와 사리탑이 있다. 백용성선사는 16세에 출가하여 1906년 해인사 주지를 역임하시었고 3.1운동 당시 33인 가운데 불교대표로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운동가이시다.
* 백용성선사 부도과 추모비
8. 해인사- 대한민국의 3대 사찰에 속하는 해인사는 화엄종의 근본도량이다. 해인사는 서기802년 신라 애장왕에 창건된 고찰이다.흔히 불가에서 불,법,승의 삼보라고 하는데 불보사찰은 부처님의 진산사리를 모시고 있는 양산 통도사요 법보사찰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요 승보사찰은 승가대학이 있는 순천 송광사를 가르키킨다. 해인사는 한국전쟁때 빨치산의 근거지로 상부에서 폭파의 지시에도 폭파하지 않고 지켜낸 고)김영환장군님 덕분에 현재의 팔만대장경이 잘 보관하되어 있는것같다. 그 당시 폭발을 해 버렸으면 과연 어땠을까 당시의 장군님의 헌명한 판단이 후세에 길이 이어질것같다.
* 고려 10세기 초반인 93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형식의 조각 작품으로 주인공은 해인사의 조사를 지냈던 희랑대사로서 화엄경을 무언으로 설파하는 모습이 담긴 우리나라 최고의 걸작 조각품입니다.특히 우리나라에서 승려의 진영 조각으로는 유일한 작품입니다.
* 성철스님의 사리탑-성철스님은 1967년 해인사 초대방장을 하시었고 1981년부터 6,7대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시었다. 사리탑은 백팔번뇌의 뜻으로 108평이고 맨위의 구는 완전한 깨달음과 참된 진리를 상징하며 오로지 구도에만 몰입하신 스님은 해인사 백련암에 주석하셨으며 선종불교 6대조인 "해능선사"의 참선수행법인 '돈오선'을 이어받아 '돈오돈수'를 주장하시었다. 돈오돈수는 단박에 깨우처 더 이상 수행할것이 없는 경지라는 뜻이며, 고려 지눌스님의 돈오점수를 반박하였다. 7대 종정에 추대되었을때 "산을 물로 보고 물을 산으로 보는 어리석은 중생들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를 남기신 분으로 모두의 마음에 살아계신분이다.
9. 백련암- 백련암 가는 입구엔 조선시대 고승이신 부휴,고한,각성 세분의 부도가 나타나며 부휴스님은 서산대사와 함께 조선시대 불교 중흥을 이끄신 분으로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군 이종성이 찾아와 법문을 듣고 며칠동안 모셨다는 일화가 있으며 부도를 지나 급오르막을 오르면 희랑대,지족암을 거쳐 한참을 올라야만한다.
* 백련암- 성철 스님 입적 후 지은 고심원 안에는 스님의 좌상이 안치되어 있으며 성철스님은 1980년대 조계종 최고 자리인 종정일때 조계종 분규를 비탄하며 백련사에 들어 이후 열반전까지 이곳 백련사에 머물렀고,1936년 출가해서 해인사에서만 57년 동안 칩거해 온 스님은 1993년 11월 4일 해인사 방장실인 퇴설당에서 가부좌한 채 제자 스님들에게 기대 입적했습니다. 10년 장좌불와에 10년 동구불출한 곳으로 고관대작이 그를 만나려면 3천배를 하고 와야 만날수 있다고 했네요. 입적후 만들어진 고심원안에는 스님의 좌상(아래)이 안치되어 있다.
* 백련암의 상징 불면석(佛面石)-어느 방향에서 보면 부처님 얼굴이 보인다고 하길래 찾아보니 흐리게 잘 보이질 않는다. 지금 백련암에는 성철스님 30주기라 많은 신도들이 48,000배를 한다고 바쁘게 움직이는게 보인다. 대부분의 신도들이 보살들이라 오래 있기가 어렵고~~ㅎㅎㅎ
* 입구에 자리차지하고 있는 고목
10. 희랑대(암)-높지는 않지만 금강산 보덕굴에 비유되는 기묘한 지형과 경치를 자랑하는곳으로 산세가 나반존자를 모시기게 적당한 요건을 갖추고 있는 희랑대는 희랑대사(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가 통일신라시대 해인사에서 활동하신 승려로 화엄학의 북악을 대표하는 스님이시고 신라의 화엄학은 의상대사를 시조로 깨달음 세계를 설명하는데 후일에 남악(관혜)과 북악(희랑)으로 나누어진다. 일반적으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깨달아 성인이 된 사람을 나반존자 또는 독성존라라고 부른다고한다. 성보박물관에 보관중인 "건칠희랑대사좌상"은 930년경 만들어진것으로 추정되며 2020년 10월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 희랑대 독성전은 높은 암벽옆에 세워저 있어 접근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부산에서 오신 보살님의 덕분으로 절을 쉽게 찾을수가 있었다.
11. 지족도솔암(지족암): 인기척이 없이 넘 조용한 선사지만 신라말과 고려초에 살았던 희랑대사의 기도처로 도솔암이며 지족은 만족시킨다는 뜻으로1976년 일타스님께서 머물면서 법당을 신축하고 도량을 확장한 곳이다. 지족암은 대몽각전과 진역각이 있다. 일타스님은 오유지족을 강조 하시었고,1999년 하와이 와불산 금강굴에서 입적하신 스님은 '생사열반 모두가 꿈이거늘 산은 높고 바다는 넓어 서로 침범않네'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즉 마음이 넓고 평안한 사람은 남을 헤아지 않는다는 뜻이다.지족암에는 "끽다거래"(차나 한잔하고 가라)의 일타스님의 글씨가 남아 있다.
* 끽다거래- "차나 한잔 마시고 다시 오게"는 당나라 조수선사님이 하신말씀인데 답은 스스로 찾아야만한다는 의지가 강한 말씀이라고한다.
12.국일암: 조용한 선사로 사람이 있는지도 알 수가 없을 정도~~
13. 약수암-이곳은 비구니 도량으로 1904년 비구니 스님인 성주스님이 창건하였다고 되어 있으며,우측 마당 한켠에 약수가 나오는 우물이 있고 조용한 산사는 한가한 스님만 왔다갔다를 반복하고 있다. 국일암 입구 아래에 보이는 절이지만 큰길을 걸어선지 조금 돌아서 도착했지만 댓돌에 신발은 가지런히 있지만 스님의 얼굴을 볼수가 없었다.
14. 관음암(해인사 주차장에서 1.6km거리)- 상가에서 한참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나 넘 조용하다. 천일기도를 한다는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고 인기척이 없어 도를 터득하기엔 안성마춤이지 싶다.
15. 고운암(경사도가 높은 산 속)- 길도 좁고 차가 올라가기도 힘든 곳 산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 넘 한적하게 보인다.
16. 길상암(주차장 아래에 위치)-홍류동 농산정과 해인사 성보 박물관 중간지점에 위치한 길상암은 1972년 영암 스님이 창건한 합천 해인사의 산내 암자로, 석가모니 사리와 등신불을 모신 적멸보궁이 있다. 암자 입구에 거대한 석불과 석탑이 있어 한눈에 찾을 수 있고 들어가보니 스님은 간데없고 염불소리만 혼차 열시미 흘러나온다.
* 열불은 아미타불이다.가 길상암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서서 탐방객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다.ㅎㅎㅎ
해인사 16암자를 이래저래 돌아보니 여태껏 몰랐던 부분도 많이 알게되어 소기의 방문성과가 아닌가한다. 잘 아는분의 글덕분에 많은 지식을 쌓을수 있었음에 이 지면을 통하여 깊은 감사의 글을 올린다.(합장)옴마니 반메홈----약사여래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