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산-공덕산 연계산행

2019. 8. 25. 21:01대한민국 山/경상도

>>>문경 천주산-공덕산 연계 산행<<<

0. 일시: 2019.8.25.(일) 09:45 ~ 14:20(4시간 35분) * 드림(이*성님 동행)

0. 코스: 천주사-천주산-서낭당재-공덕산(사불산)-대승봉-묘봉-윤필암-대승사

0. 거리: 9.5km

  벌써 가을이 문득 온 느낌이다. 산길엔 억새가 장관을 이루고있다. 봄에 황정산을 돌아보고난 후 높은 암벽 산은 첨이지 싶다. 천주산을 오르는 릿지는 아래에서 처다보면 하늘과 정상이 맞닿은 그런 산인것처럼 보인다. 오르면서 땀도 많이 흘렸지만 그만큼의 가치는 충분한것 같다. 공덕산을 오르면서 갑자기 힘이 빠저 오르는데 약간 애를 먹었지만 산행은 무탈하게 잘 진행된것 같다. 묘적암을 내려오면서 괴이한 암릉을 보니 자연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는듯하지만, 한가지 아쉬운것은 사불암을 보지 못하고 산행을 마친게 안타깝기만하다.

 

# 천주산(836m)정상-정상에 서니 주변의 여러 산군들이 보이고 저멀리 월악산도 가물거린다. 조망이 넘 좋은 정상이다.

 

#1 천주사 입구-천주산 등산도

 

#2 천주사 부처님-자애롭게 전방과 산꾼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이다.

 

#3 천주사 마애관음보살상

 

 

 

#4 천주산 릿지 등산로

 

 

 

 

 

 

#5 천주산 암벽 릿지-암벽에도 풀이랑 나무가 뿌리를 박고 살고 있는 자연의 신비로움

 

#6 천주산 정상 부근의 릿지

 

 

#7 암벽에 걸려 있는 듯 힘들게 지탱하고 있는 소나무-주변과 조화가 새롭다.

 

#8 천주산 릿지 정상부근-저 멀리 뒤로 보이는 산이 월악산인 듯하다.

 

#9 天柱山 정상-하늘이 무너질까봐서 하늘에 기둥을 심어 놓은걸까 이름도 신기하다. 하늘기둥

 

 

#10 서낭당재-천주산에서 급 내리막으로 내려오면 첨 만나는 재

 

#11 공덕산 3거리-여기까지 급오르막이 이어지지만 올라오기가 장난이 아니다. 넘 힘들게 올라온것 같다.

 

#12 공덕산(913m)정상-오르면서 많은 공도 들이고 힘이 빠져서 겨우 올랐는데 정상은 넘 초라해서 급 실망..하지만 이런것도 산이다.

 

#13 억새꽃-공덕산 정상부근엔 억새로 가을이 성큼 우리앞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하게 만든다.

 

 

#14 대승봉(820m)

 

#15 쌍연봉

 

#16 쌍연봉 정상 부근의 암릉에서 주변 아름다운 자연의 맛을 느껴보고~~저멀리 흘러가는 구름속엔 또 머가 있을려나.....

 

 

#17 암벽위에서 한 컷

 

#18 묘적암 내려가는 길의 밧줄암릉길과 갈라진 바위

 

 

#19 부부바위-바위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듯한 형상이 이채롭다.

 

#20 암릉은 없어지질 않지만 사라지는 세월속에 힘없는 나무도 힘없이 떨어져 나가고~

 

 

 

#21 또 다른 암릉과 한장

 

#22 안장바위-도저히 혼자 찍을 수가 없어서 일행에게 부탁해서 한장을 얻었다.

 

#23 묘적암-절 주변엔 하늘놓은 줄 모르게 전나무가 일자로 하늘로 향하고 있다.

 

 

#24 대승사 마애좌상-높이 6m.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39호. 대승사에서 묘적암으로 가는 길 오른쪽 위의 남향한 암벽에 새겨져 있다. 연화대의 일부가 떨어졌을 뿐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불상의 머리는 소발(素髮)로 육계(肉髻)는 비교적 크다. 육계의 표현으로 생기는 굴곡점에서 양측으로 마치 세 가지의 초화형(草花形) 같은 돌기가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길쭉한데, 눈은 거의 감은 듯 길고 코는 밑이 약간 넓으나 거의 같은 굵기로 융기된 감을 준다. 코의 양끝에서 연장된 눈썹은 중선으로 표현하였고 백호공(白毫孔)은 없다.

입술의 윤곽은 뚜렷하고 두꺼워서 시대적인 특징이 뚜렷하며 두 귀는 긴 편이다. 턱에는 한 가닥의 음각선이 있고, 이 음각선을 따라 아래에 평행한 음각선이 하나 더 있다. 약간 간격을 두고 한 줄의 음각선이 또 있어, 삼도(三道)의 표현이 이례적이며 비만감을 느끼게 한다.
어깨는 넓고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이며, 가슴에는 왼쪽 어깨에서 내려오는 엄액의(掩腋衣)의 깃이 보이는데 그 밑으로 군의(裙衣)의 매듭이 있다. 법의는 두꺼워 보이지는 않으나 어깨에서 두 팔을 거쳐 무릎까지 늘어진 모습이 마치 장막을 친 듯하여 불신의 윤곽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무릎 너비는 어깨 너비보다 약간 넓을 뿐 상체에 비하면 좁은 편이다. 두 다리는 결가부좌(結跏跌坐)하였고 음각선으로 옷주름을 표현하였으며, 옷자락의 일부가 무릎 밑까지 내려와 있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서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맞대고 새끼손가락을 꼬부려 손바닥을 보이도록 하고, 왼손은 앞에서 수평으로 들어서 다섯 손가락을 위로 약간 꼬부렸다.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각각 두 줄의 평행한 음각선으로 나타내고 그 주변을 화염문으로 처리하였다. 불신 밑에는 만개한 칠엽연판(七葉蓮瓣)을 음각선으로 조각하였다. 암석 가까이에는 평평한 판석이 약간 튀어나오게 얹혀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 석불상의 머리 위에 개석(蓋石)을 얹는 형식과 상통한다.이 불상은 불신의 표현에 요철이 거의 없고, 의문(衣文)주 01)도 모두 음각선으로 처리되었다. 그리고 입체적인 표현이 비교적 쉬운 코도 평평한 판처럼 처리하는 등 조각 수법이 매우 평판적이다. 그러나 보기 드문 대작이고, 지리적 위치를 생각할 때 매우 주목되는 작품이다. 제작 연대는 고려시대 전반기로 추정된다.

 

 

#25 묘적암 주변엔 고목이 넘 많게 자라고 있어서 시원하기 그지 없다.

 

#26 대승사3거리

 

#27 대승사 경내에서 나무끝자락과 구름이 한장의 그림과 같이 보인다.

 

 

#28 대승사-사불산의 산마루에 있는 사면석불상에 관한 설화에 따르면 587년(진평왕 9) 창건되었다고 한다. 고려 고종 때 최자(崔滋)가 절 서남쪽에 있는 백련사를 새롭게 단장했으며, 조선초에는 기화가 반야사를 결성하여 후학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1604년(선조 37)부터 1701년(숙종 27)에 걸쳐 여러 사찰 당우를 신축했는데, 1692년 금당을 지은 뒤 미면사 삼존불을 옮겨 봉안했다. 1725년 의학이 삼존불상을 개금할 때 아미타불 몸속에서 사리 1과와 705년에 금으로 쓴 〈화엄경〉 7권이 나왔다.1862년(철종 13) 건물 대부분이 소실된 후 몇 차례의 중수공사가 있었고, 1956년 다시 화재가 났으나 1966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극락전·나한전·시왕전·선원·요사채 등이 있으며, 부속암자로는 묘적암·운필암·상적암 등이 있다. 경내에는 대승사목각탱화부관계문서 4매(보물 제575호), 사적비, 아미타불상에서 나온 금자 〈화엄경〉 7권, 석가모니 사리 1과 등이 소장되어 있다.(펀글)

 

 

#29 대승사 일주문(안쪽과 바깥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