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장군봉 나들이

2020. 2. 29. 18:47팔공산 자락

如  犀  角  獨  步  行

>>>팔공산 장군봉 나들이<<<

0. 일시: 2020. 2. 29.(토) 09:30 ~ 16:00( 6시간 30분) * 태풍님,동화님/4년마다 윤달

0. 코스: 수태골-최계선생묘-장군봉-삼성봉-비로봉-하늘정원-미타봉-낙타봉-수태골

0. 거리: 10.8km

날씨가 우중이다. 당초엔 언양으로 산행을 계획했지만 포기하고 팔공산 장군봉으로 향한다.이 코스는 처음 올라본다. 오르면서 시내방향으로 내려다보니 운해가 넘 아름답다. 마치 高山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풍경과 흡사하다. 진행한 산길은 며칠전 온 비로 인해 논으로 변해 있다. 많이 미끄럽기도하고...하지만 장군봉 코스는 암벽능선이라 잘못하면 사고가 날 위험성도 있는것 같다. 특히 장군봉을 넘을땐 조심해야할것 같다.(가급적 우회) 바람도 차갑게 불고 번 내린 눈과 진흙길로 인해 진행을 어렵고 더디게 만들었다. 비파봉 정상부근 등산로엔 산꾼들이 마스크를 끼고 오르고 있는게 현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지 않나 싶다. 모든 시민들이 각자 건강한 하루와 악성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에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 팔공산 장군봉과 대구시가지의 운해

# 초입지 수태골 표시판

# 수태골의 맑은 물이 시원스럽고 시끄럽게 흘러내린다. 세상의 근심을 모두 잊은 듯이~~

# 태동 최계선생 묘소-崔誡선생은 1567(명종 22)에 출생하여 1622(광해군 14)에 사망한 임진왜란 당시 만경현령으로 전투에 참전한 무신이며,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훈(士訓). 호는 태동(苔洞). 아버지는 내금위 최종옥(崔宗沃)으로 1591(선조 24) 무과에 급제하여 만경현령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구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전공을 세웠다. 광해군 때에는 대북파의 전횡이 심하여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선영 아래에 집을 짓고 은거하였다. 동생 최인(崔認), 조카 최동보(崔東輔)와 함께 최씨삼충(崔氏三忠)’으로 불렸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대구평천사(平川祠)에 제향되었다. 삼충사묘정비1592(宣祖, 선조 25) 壬辰倭亂(임진왜란)이일어나자 대구에서 忘憂堂(망우당) 郭再祐(곽재우)와 합세, 義兵(의병)을 규합하여 戰功(전공)을 세운 崔誡(최계)와 그의 중형 () 및 장조카 東輔(동보)三叔姪(삼숙질)崔氏(최씨) 三忠(삼충)이라 하여 그 功績(공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三忠祠(삼충사)建立(건립)하고 이 ()를 세웠다. * 義兵將(의병장) 崔誡(최계, 1567 明宗(명종) 221622 光海君(광해군) 14)武臣(무신)으로 본관은 慶州(경주), ()士訓(사훈), ()蓄洞(축동)이며 內禁衛(내금위) 宗沃(종옥)의 아들이다. 1551(宣祖, 선조 24)武科(무과)에급제, 그 이듬해의 倭亂時(임란시) 대구 達城(달성), 花園(화원) 등지에서 적을 여러 번 격퇴하였다 한다.

()1828(純祖, 순조 28)建立(건립)되었고 오석으로 된 碑身(비신)은 높이 200, 99, 두께 23로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738-1번지에 현존하고 있다.

                                                                                  (삼충사묘정비각)

# 장군봉을 뒤로하고

 

# 주변 장군봉을 바라다보면서 저멀리 운해를 배경잡아 흔적을 남기는데 경치가 넘 좋다.

 

# 저 멀리 초래봉으로 바라보는 운해

 

# 장군봉 뒷배경

# 저멀리 장군봉과 대구 앞산 그리고 더멀리 비슬산 방향의 운해

 


 

# 한장의 파노라마 사진

 

# 대구시가지가 한그루 소나무와 산꾼이 점령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은듯해보인다.

# 삼성봉(서봉)정상

# 팔공산 마애여래좌상-대구 팔공산 중앙봉의 정상 가까운 절벽에 새겨진 거대한 크기의 마애약사불상이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하며, 탄력있고 우아한 얼굴은 이목구비가 세련되고 단아하다. 둥근 어깨는 탄력있어 보이며, 허리는 잘록하게 표현되었다. 무릎에서 밖으로 내려뜨린 오른손과 무릎 위에 얹어 약 그릇을 들고 있는 왼손의 세련성 등은 이상적인 사실주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 어깨를 감싼 옷은 몸의 굴곡이 드러날 정도로 얇은 편인데 옷주름은 자연스럽고도 규칙적이며, 가슴에서 옷깃이 한번 뒤집히는 등 8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광배(光背)는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으로, 머리광배와 몸광배가 표현되어 있으며 연꽃무늬와 덩쿨무늬를 정교하게 새겨 넣었다. 대좌(臺座)는 위와 아래를 향하고 있는 연꽃잎을 새겼으며, 이들을 받치고 있는 용 두 마리가 표현되어 있어 화려한 모습이다. 병고에 허덕이는 수많은 중생들의 돈독한 믿음을 받았던 이 약사불은 우아하고 화려한 사실주의 양식의 작품으로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작품으로 보인다.

 

# 군위 하늘정원의 정자

# 팔공산 최정상석 천왕봉-비로봉으로 명기되었지만 비로봉은 군부대 안에 있으며 천왕봉으로 재작성해야 할 듯함.

 

#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이 불상은 서쪽을 향해 바로 세운 전체 높이 6m의 거대한 약사여래입상이다. 약사여래는 동방의 정유리 세계에 있으면서 중생의 고통을 없에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 불상도 역시 서쪽으로 향하고 있다. 정면을 향한 입상은 상투모양의 육계를 갖추고 두 볼은 풍만 하여 입가에 약간의 미소를 띠고있다. 바로선 발끝은 드러나 있고 발가락 조각도 뚜렸하다. 옷은 두 어깨에 걸치는 방식으로 입고 치마를 걸쳤다.오른 손은 무룹 위로 늘어뜨려 바닥을 안으로 하고 있고. 왼손은 가슴위에 올려 물건을 받치고 있다. 옷의 생김은 투박하고 전체 균형도 고르지 못하나 대채로 조화를 이룬다. 비바람에 노출되어 표면은 많이 풍화되었다. 이 불상에는 손과 발의 기형적 조각 수법이 나타 나기는 하나. 잘 조화되는 옷 주름이나 얼굴모습 등이 조각 솜씨로 보아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팔공산 미타봉(동봉)

 

# 낙타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