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화산

2020. 8. 16. 15:43팔공산 자락

如 犀 角 獨 步 行

>>>군위 화산산성(1)<<<

0. 일시: 2020. 8. 16.(일)  * 옆지기

0. 코스: 화산마을 한바퀴+일연공원

0. 위치: 대구(경북) 군위군 삼국유사면(고로면) 화북리 산 229-1    주)2023.7.1.대구로 편입

    지난주 KBS인간극장에서 나온 곳  화산마을과 화산산성, 언론에 나와서인지 많은 차량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좁은 길은 차가 교행이 힘든다. 대로에서 화산마을까지 7km정도의 구절양장 길이다. 이길은 팔공지맥때 지나 간 적이 있으나  당시에 보던 폐교 초등학교 외엔 넘 많이 바뀐것 같다. 정상부근 다랭이밭엔 주민들이 채소를 옮겨 심는지  엄청 바쁘게 움직인다. 많은 차량들이 왔다갔다는 하는 통에 먼지를 발산하여 일하는 농민들에게 害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오늘 올라보니 그때 없는 풍력발전기7개, 풍차1개, 그리고 포장도로가 바뀐 흔적인것 같다. 군위 고로면에 있는 화산마을은 해발 828m 산 정상에 고랭지 채소를 주 농산물로 살아가는 마을이며 주변엔 화산산성에 있다. 건너편 뾰족한 봉우리인 각시산(옥녀봉)도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다.

 

# 화산산성과 화산마을 입구변 마을 진입 안내판-바람이 좋은 마을 그러나 날씨가 넘 덥다.

# 마을 정상부근에 버티고 서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풍차(안내데스크)

# 포토존에서 한장- 뒤로 보이는 것이 군위댐과 아미산 그리고 저멀리 보현지맥 산군들

 

# 화산마을(고면 화북4리) 전경-우측 2개의 탑이 있는곳이 화산정상(828m)으로 팔공지맥길

# 저멀리 예전 지나온 팔공지맥길을 응시해보고~

# 팔공지맥길 옆에서 바라다본 풍력발전기 단지와 고랭지 채소를 심고자 준비한 밭과 작업하는 농민들

# 화산산성-화산산성은 조선 숙종35년(1709년)병마절도사 윤숙이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은 산성으로 홍예문에서 수구문에 이르는 200여m의 산성이며 높이는 4m정도이다. 산성을 구축하던 해에 심한 흉년으로 완성하지 못한체 남아 있지만 주변경관과 일몰이 장관인 지역으로 앞으로 또 산성을 보강해야할 후손들의 몫이 남은것 같다.

(일연공원)

# 출가를 위해 봇짐을 지고 속세를 떠나는 일연스님을 저만치서 배웅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넘 애처롭게 보인다. 가야하는 자식을 붙잡지는 못하면서 마음만 태우고 있을 듯~~그러나 당시엔 숭불정책으로 스님이 최고의 선택이었을것이다.

# 돌아보는 자식의 마음과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속명이 김건명인지 전견명인지 기록이 틀리게 나온다.

# 일연스님옆에 필자도 나란히 서 본다.

# 아무일 없다는 듯 시냇물은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있지만, 모자간 작별의 눈물이 물속에서 오버랩되어 보인다. 

주)일연(一然, 속명(본명) 전견명(全見明), 1206718(음력 611) ~ 1289726(음력 78))은 고려 충렬왕 때의 승려로, 보각국사(普覺國師)라고도 한다. 속성은 전씨, 본관은 옥산(玉山), 속명 전견명(全見明)이며, 처음의 자는 회연(晦然), 나중에 '일연'으로 바꾸었다. 호는 무극(無極목암(睦庵), 시호는 보각(普覺)이며, 탑호는 정조(靜照)이다. 스님은 경상북도 경산(慶山)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9세 시절이던 1214(고종 1) 해양(海陽) 무량사(無量寺)에 들어가 학문을 닦다가 1219년 대웅에 의하여 승려가 되었다. 1227년 승과(僧科)에 급제, 1246년 선사(禪師), 1259년 대선사(大禪師)에 올랐다. 1261(원종 2) 왕의 부름으로 상경, 선월사(禪月寺) 주지가 되었고 목우화상(牧牛和尙)의 법통을 계승, 1268(원종 9) 조지(朝旨)를 받고 운해사(雲海寺)에서 선교의 대덕(大德) 1백 명을 모아 대장경 낙성회(大藏經落成會)를 개최, 그 맹주가 되었다. 1277(충렬왕 3) 왕명으로 운문사(雲門寺) 주지에 취임, 1281년 왕에게 법설을 강조했고, 1283년 국존(國尊)으로 추대되어 원경충조의 호를 받고, 이 해 노모의 봉양을 위해서 고향에 돌아갔다. 다음해 조정으로부터 토지 백경(百頃)을 받아 경상도 군위(軍威)의 인각사(麟角寺)를 중건했고 궁궐에 들어가서 구산 문도회(九山門都會)를 개최했다. 그의 저서 <삼국유사>는 한국 고대의 신화와 민간설화를 수집하고, 특히 향가를 비롯한 불교 관계 기사를 수록, <삼국사기>와 함께 고대문학과 역사 연구에 귀중한 문헌이 된다. 이 밖에 <조정사원(祖庭事苑)>30, <선문염송사원(禪門拈頌事苑)> 30권을 지었다. 신라·고구려·백제 삼국의 유사를 모아 고려 충렬왕 때의 명승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이 지은 책. 52. 1은 왕력 기이(王歷紀異), 2는 문호왕(文虎王) 내지 가락국기(駕洛國記), 3은 흥법탑상(興法塔像), 4는 의해(義解), 5는 신주(神呪감통(感通피은(避隱효선(孝善)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왕력에서 삼국과 가락국의 왕대와 연표를 싣고, 기이(紀異)에서는 고조선 이하 여러 고대국가의 흥폐·신화·전설·신앙 등과 신라 최후의 왕인 경순왕(敬順王)까지의 신라 왕조 및 백제·후백제·가락국에 관계되는 역사 등 62편의 글을 싣고, 흥법(興法)에서는 37편의 글로 신라를 중심으로 불교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의해(義解)에서는 신라의 고승들에 대한 설화 13편을 수록했고, 신주(神呪)에서는 밀교(密敎)의 승려들에 대한 행적 3편을 싣고, 감통(感通)에서는 부처와의 영적 감응을 이룬 일반 신자들의 설화를 실었으며, 피은(避隱)에서는 깊은 학문과 엄격한 도덕률을 지니고 있던 고승들의 이적(異蹟)에 대한 10편의 설화를 싣고, 효선(孝善)에서는 뛰어나게 효행을 한 5사람의 이야기를 수록했다. 특히 단군신화를 비롯하여 향찰문(鄕札文)으로 쓰인 향가 14수가 수록되어 있어 국어국문학 연구에 귀중한 문헌이 되어 준다. 현재 고려시대의 각본(刻本)은 보이지 않고, 중종 7(1512)에 당시의 경주 부사 이계복에 의해 중간(重刊)된 정덕본(正德本)이 현재로는 최고본이며, 활자본으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1908년에 된 도쿄 문과대학 사지총서본(東京文科大學史誌叢書本)이고, 그 뒤 1921년에 교토 제대 문학부총서(京都帝大文學部叢書) 6으로 정덕본을 영인했다. 이 밖에 조선사학회본(朝鮮史學會本계명구락부본(啓明俱樂部本삼중당본(三中堂本) 등과 이병도의 역주본(譯註本)이 있다. 현재 전하는 책이나, 일연비문에는 적혀 있지 않다.

기타 저서[편집]어록2권/게송잡서(偈頌雜書)3111권/조동오위(曹洞五位) 2권/조도(祖圖) 2권/대장수지록(大藏須知錄) 3권/제승법수(諸乘法數) 7권/조정사원(祖庭事苑) 30권/선문염송사원(禪門拈頌事苑) 30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