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2. 10:29ㆍ역사속의 오늘
1886.5.1.-노동자의 날
1886년 5월 미국 시카고에서 있었던 노동관련 사건을 기리기 위한 날이다.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에게 경찰이 발포해 노동자 4명이 죽고 다수가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튿날에는 '헤이마켓 광장'에서 폭탄이 터져 경찰 7명이 숨지고 70여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폭탄을 투척한 범인을 잡겠다며 노동운동 지도자 수백 명을 잡아들였고 그중 8명을 재판에 회부했다. 그러나 이들이 폭탄을 던졌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이들은 엉뚱하게도 급진적인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이들 중 4명은 사형됐고, 1명은 감옥에서 자살했다. '시카고의 8인'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세계의 노동자들과 지식인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겨줬다. 18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노동자들이 모인 가운데 '헤이마켓 사건'을 기리기 위해 5월1일을 메이데이로 정했다.
1886년 5월 미국에서 있었던 노동관련 사건을 기리기 위한 날이다. 1880년대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던 미국노동자들이 뭉친 미국노동연맹은 1886년 5월1일 '하루 8시간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며 전국적인 파업을 선언했다. 미국 전역에서 노동자들이 시위에 나섰다. 사흘째인 5월3일 시카고에서 경찰이 파업중인 노동자에게 총을 쏴 4명이 죽고 여러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음날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집회가 '헤이마켓 광장'에서 열렸는데 누군가가 폭탄을 던져 경찰 7명이 숨지고 70여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는 물론 구경하던 시민들에게까지 총을 난사해 여러 명이 죽고 200여명이 다쳤다. 경찰은 폭탄을 투척한 범인을 찾지 못하자 노동운동 지도자 수백 명을 체포해 구금했고 그중 8명을 재판에 회부했다. 이 8명이 '헤이마켓 광장' 폭탄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은 급진적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중 4명은 사형당했고, 1명은 감옥에서 자살했다. 나머지 3명은 국제적인 항의운동의 결과로 이후 석방됐다.'시카고의 8인'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세계의 노동자들과 지식인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겨줬다. 1889년 프랑스 파리에서 노동자들의 국제 연대 조직인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가 열렸는데 이 '헤이마켓 사건'을 기리기 위해 5월1일을 '메이데이'로 정했다. 이 때부터 5월1일은 국제적으로 노동자들의 연대를 다지는 날로 자리잡게 됐다.
한국의 메이데이
현재 한국에서 5월1일은 '근로자의 날'로 부르고 있다. 1994년 제정된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5월1일이 '근로자의 날'로 정해졌다. 이 날은 근로기준법에 의한 유급 휴일이다.한국에서 노동절 행사의 효시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 5월1일 조선노동총동맹의 주도로 2000여명의 노동자가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를 주장하며 열린 행사였다. 독립 직후에는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전평)’ 주도아래 노동절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후 1958년부터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한국노총의 전신인 ‘대한노동조합총연맹(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10일을 노동절로 정했다. 1963년에는 명칭마저 ‘근로자의 날’로 바뀌었다. ‘근로자’와 ‘노동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단어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은 ‘노동자’ 대신 ‘근로자’라는 말을 선호한다. 일반적으로 ‘근로자’는 ‘근면 성실하게 국가나 회사를 위해 순종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노동자’는 ‘스스로 주체적으로 힘써 일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정부·기업이 전자의 이미지를 선호하고 후자 이미지를 기피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후 노동단체들이 5월1일 노동절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고 1994년 노동절은 다시 5월1일로 바뀌었다.
미국의 메이데이
메이데이의 유래는 미국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메이데이는 5월1일이 아닌 매년 9월 첫 월요일이다. 미국 정부가 ‘헤이마켓 사건’으로 유혈 사태의 심각성을 경험한 이후 5월1일은 노동자들이 시위 등 불온한 행동을 하는 날이라는 이유로 메이데이를 공휴일로 지정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대신 9월의 첫 월요일을 노동절로 정했다. 1882년 9월5일 뉴욕시 중앙노동조합(CLU)이 대규모 노동자 행진 대회를 열고 1만여명의 노동자가 거리 행진에 나선 것이 기원이 됐다.
1887년 오리건주가 9월 첫째 주 월요일을 노동절로 정했고, 이날은 1894년 연방 공휴일이 됐다. 바뀐 날짜가 시사하듯, 미국의 노동절은 노동자의 연대를 다지는 본래 의미보다는 애국심을 고취하고 가족의 화목을 다지는 날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이에 따라 메이데이는 노동자들의 휴가시즌과 아이들의 여름방학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성격이 강해 블랙 프라이데이(추수감사절 이후 첫 금요일)와 함께 미국 유통업체들이 1년 중 가장 큰 할인행사를 여는 날이기도 하다. 참고로 캐나다도 9월 첫째 월요일, 뉴질랜드는 10월 넷째 월요일, 일본은 11월23일을 메이데이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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