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2019. 7. 16. 16:29한시와 명언 보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끄을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 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웁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

혼자라도 기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팔목이 시도록 매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리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을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잡혔나 보다
.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李相和)의 시.(1901.5.22.~1943.4.25.)

 

1926년 《개벽(開闢)》지() 6월호에 발표하였습니다.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조국에 대한 애정을 절실하고

소박한 감정으로 노래하고 있는 이 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첫 연 첫 행의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구절이라 하겠습니다.

일제하의 민족적 울분과 저항을 노래한 몇 안 되는 시

가운데서도 이 시가 특히 잘 알려진 이유는

그 제목과 첫 연 첫 행의 구절이

매우 함축성 있게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대의 절약(節約) 속에 최대의 예술이 있다"라는

좋은 표본이 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해설은 두산백과의 것을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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