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10. 18:01ㆍ대한민국 山/경상도
如 犀 角 獨 步 行
>>>월여산 암릉 산행<<<
0. 일시: 2022. 2. 10. 09:13 ~ 13:20 (4시간 7분) * 60년 지기들
0. 코스: 신기마을-정자나무-칠형제바위-만물상-월여산(862.6)-2봉-3봉-지리재-월여산장-원점
0. 거리: 8.1km
거창 월여산 암릉 구경에 나선다. 이곳 신원면은 한국전쟁때 많은 양민이 학살되었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그런 마을이다. 오늘 날씨는 온화하고 하늘은 파란하늘이다. 주변엔 고속도로 공사가 한참 진행중이라 중장비들이 연식 굉음을 내면서 산을 깎아 내리기에 정신이 없다. 이왕 산을 깎지 말고 터널공사로 했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정자나무를 지나 개울엔 많은 얼음과 고드름이 개울을 뒤덮고 있다. 서서히 진행하니 여러 암릉들이 산꾼을 환영한다. 무릇 산은 암릉이 있음 좋다. 구경할게 워낙 많아서다. 힘들어도 육산보단 훨 좋고 조망 또한 압권이다. 무리함이 없이 암릉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거창 양민학살 사건--맨 하단)
# 월여산 정상(862.6m)-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산행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하는 산인것같다. 여러 암릉과 암벽들이 산꾼에게 많은 희열을 나눠주고 조망도 날씨도 넘 좋다.
#1 들머리 겸 날머리-신기마을 주차장
#2 잠시 인도를 따라 원만지를 지나니 커다란 느티나무가 반기고 옆 개울엔 얼음이 꽁꽁 얼어 있다.
#3 칠형제바위-산나게 나무계단을 올라가니 7형제바위가 나타난다. 우째하다보니 한개가 시집을 잠시 출타를 했는지 사진속에선 보일지 않는다.ㅎㅎ
#4 바위를 지나 급 오르막 계단을 치고 올라서니 데크 전망대가 산꾼을 맞이하고~
#5 눈사람 같은 바위도 나타난다.(정면과 후면)
#6 구멍바위- 바위 3개가 이리 저리 얹혀있고 아래엔 사람이 다닐수 있는 구멍이 나와 있어 들어가본다.
#7 저멀리 맞은편 감악산과 주변산군을 둘러보면서 한장을 남긴다.
#8 월여산 정상(862.6m)-정상에 올라보니 조망도 좋고 주변 암릉도 넘 좋다. 지나온 암릉이 발 아래서 왔다갔다를 하고 있는듯하다.
* 정상석 뒤편에 적힌글 " 그대(산) 있음에 나 여기 왔노라"라고 각인되어 있다. 넘 멋지고 아름다운 문구인것 같다.
#9 ?고릴라바위 랑 사랑(하트)바위- 고릴라가 앉아서 정상을 처다보고 있는 바위 옆에 사랑바위가 살포시 하트를 날리고 있다. I love every-body!!!!!
#10 지나온 정상부근으로 응시해본다.
#11 감악산 풍력발전기가 가물 거린다.
#12 괴물같은 바위
#13 지리재 부근의 바위군들
#14 신기마을 하산 3거리 부근의 Y자형 소나무랑 한장~~뒷배경 파란 하늘이 넘버 원이다.
#15 3거리에 설치되어 있는 월여산 제단도 보인다.
#16 지리재 부근의 암릉과 소나무
#17 지리재 이정표와 고사직전의 아름드리 밤나무가 눈을 확 당긴다. 재안산을 나중을 기약하고 여기서 신기마을로 좌틀하여 하산하기 시작한다.
#18 신기마을 하산 중 암벽에 또 올라본다. 주상절리 같은데 아무튼 넘 아름답게 나왔다.
#19 월여산에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벽면에 적혀 있다.
#20 신기마을의 벽화중 농자천하지대본야와 천하대장군 그림앞에서 마지막 흔적을 남긴다.
* 거창 양민학살 사건: 1951년 2월 10일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국군이 마을 주민을 집단학살한 사건. 6·25 전쟁 중에 공비 토벌작전 중이던 제11사단 9연대 군인들이 빨치산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무고한 신원면 주민 570여 명을 다이너마이트와 총살로 학살했다. 1951년 국회에서는 ‘거창사건의 비합법적인 형행’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여 관련자들을 처벌했으나, 이승만 정권에 의해 특별사면 되었다. 6·25전쟁 중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38°선 이남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1951년 초반 국군은 전방의 조선인민군과 중공군뿐만 아니라 후방의 빨치산으로부터도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이에 국군은 전선을 단일화하기 위해 빨치산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감행했다. 빨치산 토벌을 위해 거창에 배치된 군부대는 11사단 9연대 3대대였다. 빨치산의 유격전술 때문에 만족할 만한 토벌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9연대장 오익균(吳益均)의 지시를 받은 3대대장 한동석(韓東錫) 소령은 1951년 2월 10~11일 양일간에 신원면 소재 부락주민 570명을 빨치산 또는 빨치산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다이너마이트를 폭파시켜 대부분을 죽이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총살했다. 학살당한 570명 중 젖먹이부터 16세까지의 아이들이 327명이었고, 나머지는 노약자거나 부녀자였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학살당한 사람들은 빨치산이 아니었다. 이 학살사건이 발생한 지 며칠 후 한 사병이 엄상섭(嚴祥燮) 의원에게 사건의 내막과 학살당시의 사진, 그리고 학살당한 사람의 명단을 보내옴으로써 국회차원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국회조사단의 현지조사는 경남지구 계엄사령관 김종원(金宗元) 대령의 집요한 방해를 받아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거창출신 국회의원 신중목(愼重穆)의 집요한 추적 끝에 사건의 진상이 국회에 공개되었다. 국회의 결의로 이들 범죄자들은 1951년 12월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오익균·한동석은 무기징역을, 김종원은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얼마되지 않아 김종원을 특사로 풀어주어 경찰간부로 채용했고, 오익균·한동석을 형집행정지로 석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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