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2. 17:55ㆍ한시와 명언 보기
장진주사(將進酒辭)
정철(鄭澈·1536~1593)
한 잔(盞) 먹새그려 또 한 잔 먹새그려
곳 것거 산(算) 노코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새그려
이 몸 주근 후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의 만인(萬人)이 우러네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白楊) 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할고
하물며 무덤 우희 잔나비 휘파람 불제, 뉘우친달 엿더리
**정철(鄭澈, 1536년 12월 18일(음력 12월 6일) ~ 1594년 2월 7일(1593년 음력 12월 18일))은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문신이자 정치인이며 학자 작가이다. 본관은 연일(延日, 또는 迎日), 자는 계함(季涵)이고, 호는 송강(松江) · 칩암거사(蟄菴居士)이며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총마어사(驄馬御史), 동인백정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돈령부 판관(敦寧府 判官)을 지낸 정유침(鄭惟沉)의 아들이며, 인종의 후궁인 귀인 정씨의 남동생이다. 1562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의정부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인성부원군에 봉군되었다.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 당시 국문을 주관하던 형관으로 사건 추국을 담당하였으며, 기축옥사 수사 지휘의 공로로 추충분의협책평난공신(推忠奮義恊策平難功臣) 2등관에 책록되었다. 훗날 심문 과정에서 동인에 대한 그의 처결이 지나치게 가혹하여 '동인백정'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동인들로부터 원한을 많이 샀다. 또한 서인의 정권 재장악을 위해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세자 건저문제(1591)를 계기로 귀양에 위리안치되었고, 임진왜란 직후 복귀하였다. 전란 초기에 양호체찰사직을 수행하였으나, 알콜중독으로 업무를 소흘히하다가, 명나라에 사은사로 가서는 일본군이 철수했다는 가짜 정보를 올린 일로 사직하고 강화도에 우거하던 중 사망하였다.당색으로는 서인의 지도자였고, 이이, 성혼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적으로는 송순 · 김인후 · 기대승(奇大升) · 임억령 · 양응정(梁應鼎)의 문인이다. 《관동별곡》(關東別曲) 등 가사와 한시를 지었으며, 당대 시조문학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시조의 윤선도와 함께 한국 시가사상 쌍벽으로 일컬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