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9. 15:23ㆍ1대간 9정맥 산행/6. 한남금북-완주
>>>>>>한남금북정맥(5구간)<<<<<<
0. 일시: 2017.4.8. (토) 08:46 ~ 15:57(7시간 11분, 휴게시간: 1시간)
0. 코스: 이티재-분젓치-좌구산천문대-좌구산-질마재-칠보산-쪽지봉-송치재-모래재
0. 거리: 20.5km(전체 150.1km 중 20.5km, 정맥:95.1k, 진도: 63.4%)
한금 5구간..시작이 반이라고 한금도 반을 훌쩍 넘어가는 구간이다. 그러나 여름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되는데 낮의 온도가 넘 올라갔는지 마루금 외엔 더위를 느낄 정도로 날씨가 덥다.간간이 바람은 불어 주지만 그래도 여름날씨다.,,지난구간 끝지점인 이티재에 도착하니 주변엔 많은 전원주택 공사를 한답시고 주변이 어지럽다. 지난 진양기맥때 실컷본 진달래꽃이 여기는 지금에서야 만발이다. 거의 한달의 기온 차이이지 싶다. 봉우리 마다 표지석이 엄청 많다. 한금 산행길을 달리면서 표지석이 이렇게 많이 설치되었는 구간이 있었나 싶다..아무튼 또 달리고 달린다.
#1 이티성 영토 이티재
#2 구라산성(구녀성) 유래 안내판-구라산성은 둘레 약 860m. 일명 구녀성(九女城)이라 한다. 현재 문지(門址)·수구문·우물·건물지 등이 남아 있다.이 산성은 구녀산(九女山, 497m)의 정상부와 동남쪽으로 낮아지면서 형성된 작은 계곡의 중턱을 에워싸는데, 보은·미원을 거쳐 진천 방면으로 통하는 중요한 고갯마루에 위치하고 있다.성벽은 자연석 또는 활석을 이용하여 내외협축(內外夾築: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 등을 쌓은 것)을 하였으나 붕괴가 심하고, 서쪽 벽의 일부는 높이 5m 이상 남은 곳이 있어서 축성방법을 알 수 있다. 골짜기에 수구(水口)가 있고 그 동쪽에 남문터가 남아 있다.성내에 구려사(句麗寺)라는 사찰과 석탑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평탄한 건물터와 우물만이 있다. 성의 명칭으로 보아 고구려가 남하했던 6세기경의 축성으로 보려는 견해가 있고, 삼국시대의 고을터라는 기록이 있으나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다.
이 산성의 북쪽 아래에는 유명한 초정약수(椒井藥水)가 있으며 인근의 북이면 토성리와 부연리에 걸쳐 낭비성(娘臂城)과 노고성(老姑城) 등이 있다. 이 산성에는 아홉명의 여자와 관계된 축성설화가 전해오고 있으며 성내에 이들의 것이라고 전하는 무덤이 남아 있다.
#3 구녀산-오늘 첫 봉우리
#4 분젓치(재) -정자가 앉아 있어 주변과의 운치를 더해 주고~ 출발후 3k통과 지점
#5 좌구산 천문대(방고개)- 천문대를 산 속에 설치되어 있어 효과가 있을 지가 판단이 서질 않는다.
#6 충절바위앞-김득신이라는 선비가 몸이 허약하여 좌구산에 오를 때마다 칼로 바위를 내리치며 다짐을 하였는데 과거에 급제하여 나라에 쓰임을 받겠다며 내려친 칼에 바위가 둘로 갈라졌으며 그 이후 급제하여 이름을 남기고 나라와 백성을 위한 충성심의 표상으로 삼았다고 해서 충절바위라고 불리어진다고 한다.
#7 아픈 역사의 傷痕-일제강점기시대에 군수 자원을 얻고자 울 국민들의 혹사시킨 소나무 송진 채취 흔적,,,공출하기 위하여 강제로 소나무에 흠을 내어 송진을 채취하여 생긴 흔적으로 역사의 아픈 傷痕을 소나무들이 역사의 현장을 대변하고 있다.그러나 소나무는 기개가 강하여 푸르름 빛을 강하게 발산하고 있다. 대간과 정맥길 그 많은 산을 오르고 내렸지만 그 좋은 소나무들은 이런 수탈속에서 많은 고통과 인고의 세월을 보내었는데 세월은 어언 80년이나 지나가지만 역사 상흔은 잊을 수도 쉽게 잊혀지지도 않는다.
#8 좌구산 정상(657m)-거북이가 앉아있는 형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모처럼 또 한봉우리를 넘는다. 주변엔 칼춤바위가 많은데 칼춤은 검무,검기무,황창랑무라고도 불러지며, 사냥이나 전쟁을 목적으로추는 무기 무용에서 시작하여 궁중에서 큰 잔치때에 추는 예술무용의 하나로호국 보훈의 의지를 담은 춤의 한 종류로 좌구산을 오르다보면 바위들이 칼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칼춤바위라고 불리어 지고 있다고 한다.
#9 세상밖으로 나오는 새싹
#10 새작골산
#11 질마재
#11-1 칠보산 진행중 만발한 진달래랑 한 장 - 온산에 진달래로 도배를 한 듯하다.
#12 칠보산(585m)-산을 타다보면 이름이 같은 산이 엄청 많다. 출발후 15km지난 지점
#13 쪽지봉(596.5m)-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쪽지봉,,17km를 지나는 지점으로 출발후 6시간이 조금 지나가는 지점
#14 모래재-충북 괴산군 사리면 수암리에 위치한 괴산 모래재 병격전유적비는 의병장 한봉수(韓鳳洙)선생을 주축으로 모래재에서 일어난 항일구국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한봉수 선생은 1883년 4월 18일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태어나 대한제국군 진위대 상등병으로 복무하다가 1907년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동년 8월에 의병장 김규환 의진에 가담하여 일군 수비대 및 헌병대를 습격하는 등 맹활약했다. 가을에는 해산 군인 100여 명을 규합하여 왜적구축대를 조직하였으며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오근장부근에서 일본 헌병대위 도기선치를 사살하고 강원도로 수송되는 세금 수송대를 습격하여 군자금을 확보하였으며 이후 일본군과 33회의 격전을 치렀다.1919년에는 고종황제의 국장에 즈음하여 홍명희 · 손병희 등과 독립운동의 방략을 논의하였으며,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여 3월 7일 청주의 서문장터 입구 마차 위에서 선언서를 살포하고 장꾼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주도하였고, 4월 1일에는 북일면 세교리 구시장에서 면민을 동원하여 만세시위를 벌였으며, 다음 날에 다시 내수 보통학교 학생 80여 명과 같이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1919년 5월 6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괴산군에서는 국권회복과 민족의 정통성을 이으려는 선열의 우국충정을 길이 전하고자 1984년에 높이 3m, 너비 2.5m 규모의 유적비를 건립하였다. (표지석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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