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9구간(신풍재-아홉재-하고개-백월산)

2017. 11. 12. 09:141대간 9정맥 산행/7. 금북정맥-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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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일시: 2017.11.11.(토) 9:1 ~ 16:31(7시간 30분, 휴게시간: 1.5시간)

0. 코스: 신풍재-생미재-아홉재-외계교-남산-하고개-백월산-까치재

0. 거리: 22.5km[(전체 286km 정맥22.5km ,총계:171.1(20.2)k,진도: 59.8(7.1)%)]

   오늘이 빼빼로데이라고 한다. 일행 중 한분이 무슨 날인지 알면 선물을 준다고 한다. 난 오늘이 11.12일인 줄 알았다. 어제 사무실에서 빼빼로를 받았기에~~ㅎㅎ

금북정맥 9구간 오서산도 지나고 곧 서해바다를 향하여 질주하는 구간인데 오늘은 임도랑 산같지 않는 산길을 하염없이 달렸다. 완전 동내뒷산이다.그리고 그 많은 축사들이 우린 반기고 고향의 냄새까지 맡을 수가 있었다. 백월산 정상에 오르니 홍성군에 있는 용봉산과 충남도청 소재지가 한 눈에 들어오고 주변은 암벽으로 기묘한 경치를 자아내고 있다. 지나면서 담 구간인 덕숭산과 가야산도 저멀리서 지켜 볼 수가 있었고 마지막 하산길엔 아직도 남은 아름다운 단풍이 우릴 송별하고 있었는데~~단풍이 아쉽다.ㅇㅇㅇ 

 

 

#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 33인중의 한분이신 한용운님  "님의 침묵"像앞에서(숙연) 

한용운.hwp

 

 

#1 초입지 신풍재

 

#2 윤익중님 외 3인(가족) 독립유공자들의 묘지-3.1운동떄 독립선언문을 가지고 여기로 내려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만세운동을 홍보하고 직접 운동에 참여한 형제3명과 사촌1명의 영전을 모신곳이라고한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마지막글)

 

#3 지나가는 중에 피어 있는 수수가 가을이 절정에 왔음을 알리고 있다.

 

#4 신동마을 앞 역사 홍보관 입구

 

#5 3.1운동 기념광장 입구-여기는 1919.3.1.이후로 만세운동에 여러곳에서 발생하여 많은 독립유공의 흔적이 산재한 지역중의 하나라고 한다.

 

#6 정곡3.1운동 기념비 앞

 

#7 철 잃은 장미꽃- 기상완화일까 대기 오염일까 아무튼~~

 

#8 운용리 마을을 지나면서- 주변엔 많은 축사와 많은 소들이 있고~

 

#9 아홉골고개- 출발후 7.5km를 지나고, 계속 임도 및 시멘트 포장도로를 달리듯이 걷고 있다. 충남 홍성군 광천읍과 홍등면의 경계고개다.

 

 #10 열녀 란향의 무덤-산을 많이 타봤지만 분명 기생의 이름이지 싶은데 열녀비가 있는것은 처음본다."열녀 蘭香은 평양기생으로 황규하의 애인이었는데 황규하는 숙종 4년에서 숙종 44년에 이르는 이조 문신으로 부친이 평양감사시에 책방도령으로 평양에 유할 때 사귀던 기생이였다. 규하의 부친이 내직에 등용되어 상경하자 부득이 작별하고 슬픈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수년이 지난 어느 날  신관 감사가 수청을 요구하자 자결을 결심하고 대동 우물에 투신하였다. 익일 새벽 동민이 물을 기르고자 두레박질을 하는데 물이 퍼지지 않아 날이 밝은 후 보니 웬 사람이 빠져있고 물이 말라있어 죽지도 않고 상처도 없이 살아 있었다. 건져 올리니 난향이었고 다시 물이 솟아 올랐다. 이 소문이 퍼지자 다시는 수청 요구가 없었다 한다. 그 후 낭군을 수년간 기다리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여 한양에 오니 낭군은 사임하고 홍주로 귀향한 뒤였다. 바로 발길을 재촉하여 홍주로 왔는데 발이 부르트고 발꿈치가 달아서 유혈이 낭자하였다. 그런데 이미 낭군은 죽어 장사를 지낸 후였다. 할 수 없이 묘소옆에 움막짓고 시묘살이를 하다 세상을 뜨니 그 묘옆에 장사하고 그 후 낭군묘는 자손이 고령군 원당면 1리로 이장되고 난향묘만 남았다. 남군의 유골이 운구되는 쪽으로 난향묘에서 무지개가 한참동안 뻗쳐 있었다 한다. 그 후 규하의 후계는 절손무후되니 후세 사람들은 이 묘를 열녀묘라 부르며 이곳을 무지개 언덕이라 부르고 있다".라고 비문에 적혀 있다.

 

#11 오랫만에 나타난 금북정맥 이정표

 

#12 장항선 철도- 필자의 뒷편은 당진으로 가는길이요 앞은 군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며 낙동정맥때 대구선을 넘어보곤 철도를 넘는것 2번째인것 같다.

 

 

#13 꽃조개고개-다리와 4거리로 혼잡하기 그지없고,,,여기서 뒤쪽을 돌아서 남산으로 오른다.

 

#14 만해 한용운님의 동상-일행 10명을 자동카메라로 담았는데 그런대로 나왔다.

 

#15 남산(222m)- 정상에 올라서니 건너편 홍성군 일대가 눈 아래서 맴돌고 있다.

 

#16 수리고개

 

#17 맞고개- 뒤편의 단풍과 나무로 꼭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 든다.

 

#18 하고개- 홍주(성)병오의병 주둔지로 의병활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여러곳의 의병들이 여기로 모여들어 일본군과 한판의 싸움을 벌였던 장소라고 한다.

 

#19 살포쟁이 고개

 

#20 일월산(394.3m)-올라서니 서해 바다랑 홍성군과 저멀리 용봉산, 담 구간에 진행하여야 할 덕숭산과 가야산이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는것이 지척에서 움직이는것 같다. 

 

#21 일월산 정상 아래 암벽에 박혀 살고 있는 소나무가 있다.

 

#22 일월산 또 다른 정상(암벽)위에서 한장

 

#23 오늘의 종착점인 까치고개 하산지점의 단풍

 

#24 오늘의 종착점인 까치고개

 

#25 까치고개의 이정표-홍성군 갈오리 입구

 

윤익중(尹益重.1896.4.27∼1963.2.10) 

   독립운동가. 일명 세중(世重). 1920년 3월 20일 구국민단사건(救國民團事件)으로 체포되었다가 1920년 10월 26일 예심 종결로 석방되었다.

   1921년 조선총독부 일본인 고관 암살계획과 혁신공보(革新公報) 간행이 발각되어, 같은 해 11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4개월 복역하였다. 1923년 김상옥(金相玉)·이혜수(李惠受) 등과 군자금을 모금하고, 그 중 일부를 김상옥에게 거사자금으로 지원하였으며, 그 뒤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투탄사건에 관련되어 같은 해 10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장기 2년, 단기 1년 6월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충남 홍성군(洪城郡) 광천면 광천리 출생. 1919년 휘문고보(徽文高普) 졸업반이던 그는 지하단체로서 김상옥(金相玉)이 주도하던 혁신단(革新團)에 가입하였다. 이 조직은 독립사상의 고취·선전을 목적으로 하였는데, 단원으로는 그를 포함하여 이춘식(李春植)ㆍ정설교(鄭卨敎)ㆍ전우진(全宇鎭) 등 9명이 있었다. 혁신단에서는 결성 목적의 실현을 위하여 기관지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간하였는데, 주요 기사로서 국내외에서 취재되는 독립운동전선(獨立運動戰線)의 소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논설 등을 게재하고 1회에 등사판 1천부씩을 찍어냈다. 그러나 9월이 되어서는 재정공급이 여의치 못하고 인쇄를 책임 맡았던 서대순(徐大順)이 피체되어 인쇄시설 일체를 압수당하게 되자 더 이상의 신문발행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는 1920년 3월 20일 구국민단(救國民團) 사건에 연루되어 피체되었으나, 10월 26일 예심종결로 풀려났다. 1921년에는 김상옥 주도의 암살단(暗殺團)에서 활약하다가 피체되어, 같은 해 11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년 4개월만에 가출옥하였다. 출옥 후 그는 김상옥·이혜수(李惠受) 등과 모의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1923년 1월 12일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사건에 연루되어 피체되었다. 그는 1923년 10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장기(長期) 2년, 단기(短期) 1년 6월형의 징역형을 언도받고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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