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12구간(성연재-상왕산-금강산-북창4거리)

2017. 12. 24. 08:561대간 9정맥 산행/7. 금북정맥-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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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일시: 2017. 12. 23.(토) 8:49 ~ 16:37(7시간 48분, 휴게시간: 2시간)

0. 코스: 성연재-성왕산-윗갈치-금강산-장군산-물래산-팔봉中-굴포운하-북창4거리

0. 거리: 21.3km[전체286k 정맥21.3km, 총계:234.3(20.2)km,진도:81.9(7.1)%]

   날씨는 산행하기에 아주 적절한 기온이다. 우리를 실은 버스는 당진-포항고속도로 끝자락도 모자라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한참을 지난후에야 들머리에 도달한다. 내려보니 생각만큼 낮은 온도는 아닌것 같다. 여장을 준비하고 곧장 선두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첫봉우리 성왕산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사이 선두자가 바뀌면서 사단이 나기 시작하였다. 성왕산에서 조금 지나 정상코스는 좌틀해야하는데 아니다 다를까 길이 확 뚤린 직선길로 선두가 가버리고 없었다. 큰소리로 소리처도 보이질 않는다. 할 수없이 내동고개에서 기다리면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계속 전화 연락을 하면서 기다리기를 30여분 이미 다른 일행들은 저멀리 사라지고 보이질 않는다. 어디로 오라고 애기를 하고 한참 늦게 출발을 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서산 사격장(서녕정)을 지나면서 고민에 빠진다. 더 진행하면 1명이 동행하기가 어려워 낙오가 우려되고 동행도 힘들것 같아서 사격장 지나 500여 미터를 가다가 다시 돌아와 서녕정 고개에 기다리기로 했다. 1시간 여를 기다리니 땀을 흘리면서 나타났는데 얼마나 반갑던지,,,,간단한 인사만 하고 곧장 정상코스로 달린다. 그 쯤 시간은 12시를 넘어서고... 조금 진행하다 170봉에서 쉬면서 잠시 점심 후 쉴틈도 없이 후다닥 북창4거리까지 달려가니 땀으로 옷은 다 적시어져 있었다. 북창4거리에 도달하니 서산에 해가 힘없이 메달려 있다. 힘들었지만 무탈하게 한구간을 같이 끝낼 수가 있었기에 다행으로 여겨진다. 올 산행길은 쉬운 코스인데도 불구하고 일행을 잃어버려 넘 어렵게 진행하였던 구간인것 같다.

 

 

[돌고 돌아가는 길]-우리의 산길과 인생길

 

#1 들머리 성연고개 - 동넷길이라 아무것도 없다.

 

#2 산불조심 표시판

#3 성왕산(252.3m)- 오늘 첫봉우리로 여려 산꾼들의 시그널이 많이 달려있다. 잠시 촬영하고 애기하다보니 선두는 벌써 저멀리 가버리고 없다. 불길한 예감이 들고~~

#4 내동고개

#5 성왕사 3거리

#6 윗갈치(서녕정 입구)-1967년 6월 24일 당시 군수이던 이승규(李承圭)가 초대 사두(射頭)가 되어 서산 부춘산 옥녀봉 기슭에 사장(師場)과 관혁(貫革)을 마련하였다. 1971년 9월 4대 사두인 조승형(趙昇衡)이 유형수(柳亨秀) 등 30여 명의 협찬으로 서령정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후 생활 체육의 일환으로 국궁이 확대 보급됨에 따라 20대 사두 김종선과 21대·22대 사두 신우길의 노력으로 2002년 서산시 갈산동 61-8번지서령정을 신축했으며 신축을 기념하여 도민 체전을 개최하였다. 2004년 8월 13일 서령정의 모든 관련 시설을 부춘산 옥녀봉에서 현 서산시 갈산동으로 이전하였으며 현재는 서산 사격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7 서산시 사격장-원래는 국궁장소였지만 지금은 사격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알바한 일행을 저멀리 떠나가고  태풍님과 오돌 떨면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우린 여기서 산꾼을 1시간 정도를 기다렸는데 엄청 오래 기다린것 같다. 쉴때는 좋았는데  이 시간후가 문제다.

#8 금강산 2.3km 지점

#9 망일지맥 분기점-끝자락은 당진으로 연결되는 듯하고~

#10 금강산 진행중 아름다운 돌무덤이랑~

#11 금강산의 표준점과 정상석 - 북한에 있는 금강산을 옮겨놨나?ㅎㅎ 비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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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장군산(204m)- 출발후13.5km를 지나가는 지점인데 시간은 2시15분이다. 아직도 8km가 남았는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보통때 이정도 시간이면 16~17km는 지났어야하는 시간인데,,,,,69행님이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13 수량재-국도32호선을 지나고 여기서 물래산 방향으로 오른다. 마지막 산꾼이 또 지체를 하는바람에 20여분간 대기~~ 진행이 되질 않는다.ㅇㅇㅇㅇㅇ

#14 물래산(145m)- 가로질러 간다고 임도를 타고 정상까지 가니 길은 반대방향으로 나와있다. 되돌아서 1km정도를 진행하여 겨우 도착한 물래산정상...마음이 바쁘니 길도 헷깔리고~~정상 표시판에서 흔적만 남기고 또 줄행랑을 친다.ㅋㅋ

#15 32국도 굴다리- 팔봉중학교 바로 부근

#16 팔봉중학교- 시골학교지만 경관이 아담하게 잘 꾸며져 있다.

#17 굴포운하-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에 있었던 운하로서 고려에서 조선까지 수도가 개성과 한양에 설정됨에 따라 서해 연안 해로의 운송로 기능은 극대화되었다. 당시 세곡과 각종 공납품의 가장 중요한 공급지는 경상, 전라, 충청의 삼남 지방로서 물류의 대부분이 태안반도 연안을 경유하여 개성 혹은 한양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이 조운의 과정에서 태안반도 안흥진 앞의 안흥량은 전라 울돌목[鳴梁], 강화의 손돌목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위험 지역으로 해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이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운하를 개착하게 되었다. 고려 숙종[1096년~1105년], 예종[1106년~1122년] 연간에 운하 개착의 논의와 시도가 있었으나 운하의 개착 시도가 기록상 처음 등장하는 것은 1134년(인종 12) 7월의 일이다. 인종은 정습명(鄭襲明)을 파견하여 태안 및 인근 지역에서 수천 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운하를 파게 하였으나 암반이 물 밑에 있고 또 조수가 왕래하므로 파면 파는 대로 메워져 공사하기가 쉽지 않아 성공하지 못하였다. 1391년(공양왕 3)에 왕강(王康)의 건의에 따라 굴포운하 개착 공사가 재개되었으나 이 역시 성공하지 못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 1412년(태종 12)에 다시 운하 건설이 논의되었다. 하륜(河崙)의 건의로 종래의 관류식(貫流式)과 다른 일종의 갑문식(閘門式) 형태를 채택하여 1413년(태종 13) 1월에 착공하였다. 병조 참의 우부(禹傅)와 의정부 지인 김지순(金之純)의 감역 하에 인근 주민 5000명이 동원된 이 공사는 1413년 2월에 종료되었다. 1413년(태종 13) 완공된 이 태안조거(泰安漕渠)는 공사의 난관이 되었던 12㎞ 가량의 고지대 안부(鞍部)를 중심으로 남쪽 3개 처와 북쪽의 2개 처의 저수지를 계단식으로 조성하여 물길을 연결하는 일종의 갑문식으로 처리함으로써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저수지의 규모가 작아 소규모의 용선(用船) 능력 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일부 구간은 소선 한 척이 겨우 다닐 정도이며 조수 간만의 차로 인하여 실제 통선 가능 일수도 많지 않아 실제 그 기능이 미흡하였다. 굴포운하 개착 문제는 조선 현종 대에 이르러 논의가 재연되어 송시열(宋時烈)은 이른바 설창육수(設倉陸輸) 안을 제안하였다. 천수만 쪽 옛 순성(蓴城) 근처에 조선(漕船)을 정박시킨 다음 여기에서 조미(漕米)를 가로림만 쪽 영풍창(永豊倉) 옛터까지 육수(陸輸), 그리고 다시 선박으로 옮겨 실어 경창(京倉)으로 가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순성과 영풍창 옛 터 두 곳에 창고가 필요했다. 1669년(현종 10) 설창육수를 위해 안민창(安民倉)이 설치되지만 이 방안도 실제 번거롭기에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인평리와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간 약 7㎞에 달하는 운하 유적의 일부가 남아 있는데, 높이는 제일 낮은 곳이 3m이고 제일 높은 곳은 50m이다. 문화재 지정이 되어 있지 않고, 훼손이 진행 중이며 자연 하천, 논밭 등의 경작지로 되어 있는 부분도 많았다고 한다.(퍼온글) 늦었어도 흔적은 반드시 남긴다.ㅎㅎ

#18 도루자 5거리 진행 중 마을 수호신 느티나무

#19 북창4거리 벌팔 주변- 해질녘의 해는 있다 말다가를 반복하더니만 이내 사라진다. 사진을 박을려니 해가 구름속으로 쏙 들어가 버려 숨바꼭질의 연속이다.

#20 북창4거리- 참 어렵고도 힘들게 도착했다. 와서보니 허허벌판이고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여긴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도내리라고 한다. 지도를 보니 서해안 바로 근처인것 같다. 휴 오늘 산행길은 기다림과 달음박질의 연속이었다. 즐거웠지만~~~넘 힘들게 금북12구간을 마무리 하고 얼굴도 씻지 못하고 차에 타자마자 차는 집으로 향해 출발해버린다. 차에서 대충 옷을 갈아 입고 깊은 휴식에 들어간다.

나중에 이 글을 보면 또 웃음이 나오지 싶다. 담 구간은 일정이 있어 가고픈 좋은 산도 있는데 불참하니 아쉽고  다시 올려니 넘 멀어서 엄두가 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