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27. 11:13ㆍ1대간 9정맥 산행/8. 한남정맥-완주
>>>>>>한남정맥(8구간)<<<<<<
0. 일시: 2018.5.26. 04:19~14:30(10시간 11분, 휴게시간: 1시간)
* 출발시간: 5.25.(金) 24:00(무박산행)
0. 코스: 대능3거리-수안산-장승재-것고개(해병대입구)-문수산-보구곳리
0. 거리: 25km[전체176.3km 정맥 25.0km 총계:152.1km, 진도: 86.3%]
한남정맥이 완주되는 구간이다. 새벽에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풀을 헤치고 철책옆을 지나서 어렵고 힘들게 진행된 8구간,, 정맥이라고 할 정도인지도 의심과 의문으로 가득한 한남정맥길...그러나 끝나고 나니 성취감도 있지만 서운함마저도 든다. 오늘 문수산 정상에 올라서 한강을 건너 북한땅 개풍군을 내려보고 있으니 언제인가 우리가 아무런 꺼리낌없이 강을 건너서 갈 수가 있을려는지 분담의 아픔을 크게 느끼게 한 우울함이 머리속을 떠나질 않았다. 강물은 유유히 서울을 지나 서해로 흘러들고 있는데 짧은 거리는 1km도 체 안되지 싶은데도 갈 수가 없으니 아쉬움이 엄청 느껴진다. 강 주변엔 열병식을 하듯 철책선들이 줄로 서 있고 주변엔 초병들이 움직이는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튼 한남정맥 내가 겪어보지 못한 김포반도 일부분이라도 보고 느낄 수가 있어서 좋았다.그러나 가보고 싶은 애기봉을 가보지 못한게 아쉬움이 크다. 또 언젠가 애기봉도 가볼 숙제를 안고 한남정맥을 정리해본다.
* 돌아오면서 4차 남북정상회담을 통일각에서 실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보니 한강 건너 개성으로 들어갈 날이 올려나 기대가 엄청 커진다. 하루 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희망해본다.
[한남 정맥 완주 축]
# 문수산 정상(376m)- 여기서 온 길보다 앞을 내려다보니 한강과 강화도 그리고 북한땅 개풍군이 손에 잡힐듯 가깝게 있는데도 갈 수가 없으니 안타까움이 많이 느끼게 만들었다.
#1 초입지 대능3거리-무박 출발이라 잠에서 덜 깬 상태라 무념무상이다. 차량은 한대도 없고 깊은 잠에 빠진 개(犬)소리만 멀리서 많이 들린다.
#2 수안산 정상
#3 대곶신4거리-진행후 1시간 정도 지난 대구곶리 마을 주변(대곶주민센터 주변)
#4 팔거리마을 앞- 김포의 공장지대인듯 새벽볔인데도 아침식사를 할 곳이 많이 보인다.
반대로 애기하면 수요자가 많다는 뜻이 아닐까?
#5 뉴팜-아마도 건강식품(약)을 만드는 회사이지 싶고~
#6 뉴팜앞에 있는 차량의 광고판이"개판"이라고 특이해서 한장찍어본다.
#7 장승재고개-나무를 거꾸로 세워서 장승을 멋지게 만들어 놨다.
#7-1 것고개 가기전 군부대 주변 철책선도 지나가본다. 정맥길은 부대가 점령되어 우린 우회를 할 수밖에 없다.
#8 것고개 주변 -한반도 최초 벼 재배단지를 기념해서 만든 문화회관
#9 것고개-해병대 부대 입구로 아침이 되니 군인들이 외출 외박나오는 병사들이 많이 보인다.
(좌측진행: 강화도 우측진행:서울) 출발후 11km지난 지점
#10 문덕재-시조 최온(崔溫)은 널리 알려진 해동공자(海東孔子) 최충의 아버지로 해주 대령군 수양산밑에서 오래동안 살았다고 하며 그곳의 별칭이 고죽군이어서 고죽최씨라고도 한다. 시조 최온은 일찌기 해주 목민관(牧民官)으로서 선정을 베풀어 이름을 떨쳤으며 문장으로도 명성이 높았고, 뒤에 판사부사(判吏部事)를 지냈다. 이러한 모든 것이 해주에서 이루어졌고 또 여러 대에 걸쳐 해주서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해주로 하여 대를 계승하고 있다. 대표적 인물로는- 최충 : 최온의 아들. 동방 유학(儒學)의 비조(鼻祖)인 성제(惺齊) 최충, 그는 고려 목 종8 년에 문과에 장원, 문종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은퇴하여 開京에 최초의 사학(私學)인 구제학당(九齊學堂)을 열어 많은 영재를 배출하였다. 그의 두 아들 최유선(惟善)과 최유길(惟吉)은 모두 宰相의 자리에 올라 부자 2 대에 名門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게 된다.고려사열전(高麗史列傳)에 의하면 "동방 학교의 일어남이 최충에서 비롯되었고 최충의 자손으로 재상에 오른 사람이 수십명이 된다"고 했다. - 최경회(崔慶會) : 그 유명한 논개(論介)의 남편으로 전해진다. 논개는 사실 기생이 아니고 최경회의 부실(副室)로 남편이 진주에서 전사하자 기생을 가장, 왜장들의 승전축하연에 참석해 왜장을 안고 투신했다고 밝혀지고 있다.
#11 고정리 지석묘-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12 길 가다가 반사경에 나란히 모여들었다.
#13 태웅메티칼 앞----
#14 쌍용대로-문수산 오르기 전에 있는 도로로 주변엔 켐핌장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출발후 19.5km지점)
#15 문수산성-김포 문수산성(金浦 文殊山城)은 숙종 8년(1682)에 강화유수가 강화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하여 12년이 지난 숙종 20년(1694) 끝낸 석축산성이다.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른 곳이다. 순조 12년(1812)에 고쳐 쌓았다. 1694년(숙종 20년)에 축성된 문수산성은 강화 갑곶진(甲串鎭)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새이다. 명칭은 신라 혜공왕 때 정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산성은 1964년 8월 29일 사적 제139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20만 3511m2이고, 둘레는 약 2.4km이다. 잘 다듬어진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위에 몸을 숨기기 위한 방어시설인 여장을 둘렀다. 당시의 성문은 취예류·공해루 등 3개의 문루와 비밀통로인 암문 3개가 있었다. 이 중 취예루는 갑곶진과 마주보는 해안에 있었으며 육지로 나오는 관문의 역할을 하였다. 현재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는 없어지고 마을이 되었으며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벽만 남아있다. 1866년(고종 3)에 병인양요가 일어나 프랑스함대가 강화성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서울로 진격하는 길을 확보하려고 육전대를 투입해 문수산성을 공격해 왔다. 그러나 김포출신의 한성근이 이끄는 수비군에게 격퇴를 당하였다. 1871년에 신미양요가 일어나 미국함대가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와 광성진전투(廣城津戰鬪)가 벌어졌다. 그런데 강화 쪽의 광성보(廣城堡)·덕진진(德津鎭)과 함께 이곳 덕포진(德浦鎭 : 지금의 대곶면)에서 일제히 포격을 가해 그들을 격퇴시켰다. 그 뒤 미국함대는 인천방면으로 후퇴해 전열을 가다듬은 뒤 다시 북상해 해병대가 초지진(草芝鎭) 등을 함락시켰다. 이 두 양요를 겪은 뒤 1874년에는 덕포진에 안항동포대(鴈行洞砲臺)를 축조하였다
#16 문수산 정상(396m)- 앞면은 우리가 지나온 길이지만 뒷편은 한강 건너 황해도 개풍군이다.
북한땅이 고스란히 선명하게 보이면서 넘 가깝게 보이고 있다.
#16-1 한남정맥을 同苦登山한 대원 일동
#17 한강과 북한 개풍군을 뒷배경
#18 문수산에서 내려다본 강화대교와 마니산 정상
#19 문수산성 위에서
#20 문수산성터 위에서 한강과 개풍군을 배경 삼아서
#21 한남정맥 이젠 더 이상 갈래도 갈 수가 없다. 한강의 반은 우리 반은 북한구역이다.
뒤로 보이는 섬은 "유도"이다. 유도 건너편은 개풍군...
#22 보구곳리-한남정맥 최종점...근데 보구곳리는 여기서 북쪽으로 좀 더 진행되어야하는데 철책선이고 민간인 통제구역이라서 어쩔수가 없이 여기서 끝을 낸다.
주변 별외구간:언젠가는 가봐야할 곳
* 애기봉(愛妓峰)은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와 하성면 가금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기생의 이름인 애기에서 유래되었으며, 병자호란 당시 애기와 평양감사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愛妓峰의 유래는 서기 1636년 인조14년 청나라 태종이 10만 병력을 이끌고 침범한 병자호란때 평양감사가 가장 사랑하는 애첩“애기”를 데리고 수도 한양으로 피란을 가게 되는데 바로 강건너 개성 개풍군에서 감사는 청나라군에 붇잡혀 청나라고 끌려가게되고,애기만 혼자 김포시 조강리마을에 머물게 되었는데,애기는 매일 봉우리에 올라 북녘을 보면서 일편단심으로 감사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결국 병이 들어 죽어가면서 감사가 잘 보이는 이곳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하여서 그 이름을 기리고자 애기봉이라고 불리어진다고함. 이곳은 김포 해병대 2사단이 주둔하는 군사시설보호구역 내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출입시 신고서를 작성하고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1954년부터 애기봉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연말연시에 트리에 불을 켰다. 처음에는 소나무로 장식 트리를 만들어 썼으나, 1971년에 철탑으로 대체되었다. 애기봉에서 한강 하류의 북한지역인 북쪽 하안(河岸)까지 거리는 3 km 밖에 되지 않으며,밤에 등탑에 불을 켜면 전력 사정이 나쁜 북한측에서는 그 불빛이 약 25 km 떨어진 개성 시내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남북간 갈등을 야기해 왔다. 2004년부터 제2차 남북 장성급 군사 회담의 합의에 따라 점등을 하지 않다가, 2010년에 일어난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같은 해 12월 21일부터 다시 점등하였다.2011년에는 12월 23일부터 점등할 예정이었으나, 12월 19일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김포시에서 국방부에 점등 중단을 요청해 취소되었다.대한민국 해병대는 2014년 10월(10.15.-10.16.) 철탑을 철거하였는데, 국방부는 각급 부대의 대형 시설물 안전진단 결과 애기봉 철탑이 지반이 약한데다 철골이 오래돼 쓰러질 위험이 있는 D등급 판정을 받아 붕괴시 일반 관광객의 안전을 해칠 위험이 있어 철거하였으며, 철탑 철거와 남북 관계는 무관하다고 밝혔다.경기도와 김포시는 등탑을 철거한 자리에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을 조성하고 아파트 18층 높이인 54 m의 고층 전망대를 설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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