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1. 23:46ㆍ산따라 길따라
如 犀 角 獨 步 行
>>>홍천 수타사 산소(O2)길 걷기<<<
0. 일시: 2022. 3. 1.(화) 자유시간 * 100년지기
0. 코스: 공작산 생태숲 전시관-수타교-수타사-산소길임도-귕소-용담-월안쉼터-전시관 원점
0. 거리: 3.8km
공작산이 있는 수타사는 2009년도 함 들렀으니 13년의 세월이 지났다. 당시엔 뒷쪽에서 공작산을 오르는 코스라서 수타사는 방문하질 못했다. 주변의 아름다운 계곡수가 있어 여름날엔 또 다른 볼거리가 있지 싶다. 수타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영서지방의 사찰중 제일 오래된 절이라고한다. 수타사엔 "월인석보"가 소장되어 있으며 팔작지붕과 동종 3층석탑 후불탱화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수타사 산소길은 계곡을 한바퀴 돌아오는 코스로 많은 나무가 자생하고 있으며 단풍나무가 많아 가을철이 제격이지 싶다. 지금은 겨울날이라 계곡은 전부 얼음으로 얼어 있어 沼는 구경하기가 어렵다.
* 월인석보-1970년대 초 사찰 중수때 봉황문에 있는 사천왕상 복장유물로 발견되었는데 권17이 전부 완전하며,권 18과 은 제87장 하부 일부가 훼손되었으나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조선 1459(세조5년)에 임금의 명으로 고승 10명과 김수온 등이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하여 엮은 석가의 일대기를 훈민정음 창제후 처음 나온 불경 언해로서 매우 귀중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 壽陀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708년(성덕왕 7)에 창건되어 우적산(牛跡山) 일월사(日月寺)라 하였으며 영서지방의 명찰로 손꼽혀 오다가 1568년(선조 2)에 현위치로 이건(移建)하면서 수타사(水墮寺)라 하였다.그 뒤 임진왜란의 병화로 완전히 불타버린 뒤 1636년(인조 14)에 공잠(工岑)이 중건하였고, 1644년에 학준(學俊)이 당우(堂宇)를 확장하였다. 1647년에는 계철(戒哲)과 승가(僧伽)가 승당(僧堂)을 새로 건립하였고, 1650년(효종 1)에는 도전(道佺)이 정문(正門)을 세웠으며, 1658년에는 승해(勝海)와 정명(正明)이 흥회루(興懷樓)를 세웠다.1670년(현종 11)에는 정지(正持)와 정상(正尙)과 천읍(天揖)이 대종(大鐘)을 주조하여 봉안하였고, 1674년에는 여담(汝湛) 등이 사천왕상을 조성하였다.그 뒤에도 여민(汝敏)·지해(智海)·지행(智行)·성민(性敏)·찬징(贊澄)·선찰(善察)·성념(省念)·찬원(贊源)·상흘(尙吃) 등이 1683년(숙종 9)까지 계속하여 청련당(靑蓮堂)·향적전(香積殿)·백련당(白蓮堂)·송월당(送月堂) 등의 당우들을 차례로 중건하여 옛모습을 재현하였다.현재의 이름으로 바꾼 것은 1811년(순조 11)이다. 그 뒤에도 1861년(철종 12)에 윤치(潤治)가 중수하였고, 1878년(고종 15)에는 동선당(東禪堂)을 중건하고 칠성각(七星閣)을 신축하였다. 1976년 심우산방을 중수하였고, 1977년에는 삼성각을 지었으며, 1992년에는 관음전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을 중심으로 흥회루와 봉황문(鳳凰門, 또는 天王門)이 앞에 있으며, 좌측에 심우산방(尋牛山房, 또는 東別堂)이 있고 좌측에는 요사채가 배열되어 있다. 또한, 뒷편에는 삼성각(三聖閣)과 성황당이 있는데, 성황당이 있는 것은 특이하다.이 중 대적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의 다포집으로 1497년 공잠이 이건, 중창한 것이며,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도 보물 제745호로 지정된 『월인석보(月印釋譜)』 제17권과 제18권이 보존되어 있고, 기단부와 옥개석만이 남아 있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1호로 지정된 고려 말기의 3층석탑이 있다.또한 이 절을 거쳐간 고승 중 청송당(靑松堂)·기허당(騎虛堂)·서곡(瑞谷)·유화당(遊華堂)·중봉당(中峯堂)·홍파(洪波)·홍우당(紅藕堂) 등의 부도가 있으며, 사리탑비(舍利塔碑)는 서곡의 것만 남아 있다.총 2,999평의 대지에 171평의 건물을 갖춘 이 절은 풍수로 볼 때 공작포란지지(孔雀抱卵之地)라는 명당이며, 주위는 동용공작(東聳孔雀)·서치우적(西馳牛迹)·남횡비룡(南橫飛龍)·북류용담(北流龍潭)으로 표현되는 포근한 골짜기에 있다.
# 공작산 생태숲 안내판
# 자작나무로 만든 인형이랑 한장- 코로나 걸리지 말라고 내 마스크를 잠시 빌려주고 찍는다.
# 힐링이 필요할때- 전시관 입구에 걸게 그림으로 걸려져 있는데
# 수타교- 여기서 우측으로 진행하면서 수타사를 지나 산소길이 시작된다.
# 수타사 산소길 안내도
# 수타사
# 산소길 안내판
# 덩굴나무(다래)가 큰 나무위를 올라 큰나무를 성가시게 만든다. 물론 보는 꾼들이야 절경이지만 나무는 죽을 맛이지 싶다.
# 귕소 출렁다리- 오늘 출렁다리는 원없이 밟아본다.ㅎㅎ
# 귕소- 귕이란 아름드리 통나무를 파서 만든 소 여물통(구유)를 말하며 귕소는 계곡따라 펼처진 바위가 오랜 세월 세찬 물로 인하여 마치 귕모양으로 파여져 있으며 이것이 수타사 방향으로 흘러내려가고 있다.
# 태봉과 정희왕후 안내판
* 정희왕후-본관은 파평. 아버지는 판중추부사 윤번(尹璠)이다. 1418년(태종18년)에 태어나 1428년(세종 10) 수양대군(首陽大君)과 가례를 올리고 낙랑부대부인(樂浪府大夫人)에 봉해졌다.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을 제거하기 위해 거병하려던 계획이 누설되어 손석손(孫碩孫) 등이 만류했으나, 수양대군이 중문에 이르자 갑옷을 입혀서 군대를 일으키게 하여 계유정난이 성공도록 했다. 그 공으로 1455년(세조 1) 세조가 즉위하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1457년 자성(慈聖)으로 존호(尊號)되고, 1469년(예종 1)에 흠인경덕선렬명순휘의(欽仁景德宣烈明順徽懿), 1471년(성종 2) 원숙신혜신헌(元淑愼惠神憲)의 존호가 더해졌다.1468년 예종이 즉위했으나 14개월 만에 죽고, 이듬해 성종이 13세로 즉위하자 7년 동안 수렴청정했다. 불교를 비호하여 예종이 왕위에 있을 때 상원사에서 태종 때 만든 버려진 산산제언(蒜山堤堰)을 부수어 농장으로 경영하는 것을 유신(儒臣)들이 문제로 삼았으나, 하사(下賜)를 확인해주었고 염분세(鹽盆稅)까지 면제했다. 덕종·예종·의숙공주(懿淑公主) 등
2남 1녀를 낳았다. 陵은 광릉(光陵)이다.
# 용담과 안내판
# 찬탈의 흔적-오늘이 3.1절이다. 공교롭게도 수타사를 방문하니 입구의 많은 소나무가 일제때 찬탈을 당하여 껍질이 벗겨나간 상태로 역사의 아픈 상흔이 보여주고 있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그 흔적은 지울 수가 없는듯 아픈 소나무는 아무말도 없이 묵묵히 버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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