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공개바위-독바위

2024. 10. 6. 10:49대한민국 山/경상도

如 犀 角 獨 步 行

>>>함양 공개바위-독바위 산행<<<

0. 일시: 2024. 10. 5. 08:37 ~ 16:54 (8시간 17분) * 단사모 10인

0. 코스: 산청추모공원-꽃봉산-공개바위-배틀재-안락문-독바위-고열암터-솔봉-용유담-둘레길

0. 거리: 13.3km

함양의 바위산 독바위와 공개바위를 보러 산길에 나선다. 새벽녘에 출발이라 바깥은 깜깜하다.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에서 산길이 시작된다. 오르니 산죽과 거미줄이 산행을 막아선다. 바닥은 비가온것인지 습기가 많아서 엄청 미끄럽기까지한다. 공개바위를 보니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하고 독바위 상단에 오르니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덕분에 주변 아름다운 조망이 일품인지라 근처의 지리산군락지도 가까이에서 보인다. 내려오는길은 지리산둘레길 함양의 일부코스이지만 시멘트포장도로라서 둘레길이 선뜻 와 닿지 않는다. 산길을 타다보니 이정표 설치된 흔적만 남아 있다. 과거 잘 만들어진 안내판이 비탐방구간으로 만들어지면서 설치 흔적만 남기고 전부 사라졌다. 산길을 선녀굴 빨지산의 아지트를 직접 보지 못한게 많이 아쉬움이 든다. 어쨌던 즐겁고 무더웠던 산길인것 같았다.

 

# 오늘 여기저기 돌아다닌 흔적들

# 들머리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 산청・함양 양민학살 사건 (山清・咸陽良民虐殺事件)은 1951년 2월 7일 경상남도 산청군 ・ 함양군 주민에게 공비 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국군 에 의해 일어난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으로 당시 약 700여 명의 민간인이 피살당한 사건을 말하며 전쟁의 피해는 많은 세월이 지나도 늘 남아 있는것 같다.실제로 협력했던 사람과 하지 않았던 사람 모두 몰살을 시켰으니 한국전쟁으로 많은 민간인들 학살사건이 발생되어 역사의 아픈 현실인것 같다.

# 오늘 같이한 단사모 산꾼들

# 추모공원앞 저수지 물안개꽃

# 무인카페옆 공개바위를 안내판을 따라 힘든 산길이 시작된다.

# 꽃봉산-첫봉우리이지만 봉우리의 형태는 느낄수가 없다. 그래도 이름을 넘 멋지게 지은것 같다. (아래: 같이한 산꾼들캉)

# 공개바위- 산청군 방곡리 해발755m에 있는 공개바위는 흙속에 묻여 있었지만 풍화작용으로 주변의 흙이 떨어져 나가고 현재의 모습이 되었던것으로 추정하며, 5개의 육면체 바위가 석탑 모양으로 쌓여 있다. 규모는 높이12.7m 둘레가 12.4m정도라고 한다.인공 5층석탑을 모양과 흡사하지만 기울기가25~30도로 세워져 있어 예전부터 '한국판 피사의 사탑'으로 회자되고 있으며 지리산 마고할미가 공기놀이를 하다가 그 공깃돌 5알을 쌓았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고한다.(안내판의 내용)

*공개: '공기'의 경상도 서북부의 사투리임

* 공개바위 반대편에서 한장

# 와불산정상(1,214m)-1천미터이상의 산 봉우리이지만 평범한 산마루금형태라 봉우리 실감이 나질 않는다.

# 산죽군락지-산행중 제일 힘들게하는 요넘들이 산길을 가로 막고 있다.

#  안락문-지리산 석문(石門) 가운데 가장 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석문은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때 빨치산들이 이 문을 통과해서 하산하여 자수를 하면 안락한 생활을 보장받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아름다운 자연석을 관문을 통과하여 독바위로 향하지만 바위가 넘 멋있다.(위:입구 아래:내부)

# 독바위-안락문과 비슷한 형태의 독바위에서도 나타난다.

함양 독바위(1120m)-늙은 장수의 지휘소였고 그의 무덤이 있다하여 노장대(老將臺)라 부르기도 하는데 예전에 어떤 여자가 혼자서 기도를 드리던 곳이라고 독녀암(獨女巖)이라 불렀다는 유두류록의 기록이 있어 독(獨)바위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암벽을 타고 올라서니 일망무제다.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부풀은내마음~~~"의 이선희님의 "아름다운 강산"의 노래가사가 언뜻 지나간다. 넘 멋있는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강산임에 분명하다. 사실 이사진 찍으면서 다리가 후들후들했다.ㅎㅎㅎ(일부 펀글)

 

# 유슬이굴-이런 형태의 암릉사이 자연굴이 넘 많다. 

# 선녀굴- 이곳은 꼭 가고보 싶었는데 코스가 바뀌는 탓에 직접 보진 못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선녀굴은 빨치산 정순덕이 10여 년간 머물렀던 곳으로  6.25전쟁이 나기 1개월 전 1950년 5월 초 지리산 자락 산청군의 깊숙한 마을인 내원리에서 나고 자란 18살 처녀 정순덕은 옆동네 성석조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지만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그게 뭔지도 모르는 시골 벽촌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국군이 들어오면 환영을 하고 공산군이 들어와도 환영하는 시늉을 해야 했던 시절.신혼의 성석조는 어리버리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못하다가 인민군이 이곳 산청을 점령 할 때 인민군에 협조하여 면사무소(인민위원회)에서 근무를 하였는데 그 뒤 전세가 기울어 인민군의 후퇴로 이어지고 이 후 갈 곳이 없어진 성석조는 인민군 패잔병을 따라 지리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국군과 경찰은 빨치산들을 하나하나 소탕하는데 1952년 지리산 대성골에 토끼몰이식 전투에서 빨치산은 거의 괴멸하게 된다. 그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되는 빨치산과 군경의 대결은 결국 빨치산의 전멸로 끝나지만 지리산에는 3명의 빨치산만 남게 되는데 이 삼인조인 이은조, 이홍희, 정순덕은 그 뒤 빨치산이라기보단 강도로 변신하여 살아가기 급급한 형태로 지냈는데 전쟁이 끝난 10년도 더 지난 1963년 11월 18일 이은조는 1년 전 진작에 사찰경찰(위의 설명)에 의하여 사살되고 남은 두명은 정순덕이 태어나고 자란 내원마을에 식량을 구하려 갔다가 이 첩보를 입수한 경찰과 총격적끝에 이홍희는 사살되고 정순덕은 허벅지 관통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마지막 빨치산이자 여자 빨치산으로 간혹 미화되어 표현되기도 하는 정순덕. 그 뒤 총상을 입은 다리 하나를 절단하고 종신형으로 감옥에 살다가 21년 6개월의 형을 마치고 1985년 8.15 특사로 석방되어 미전향 장기수들의 뒷바라지를 해 주다가 2004년 세상을 떠났다.정순덕이 지리산에서 가장 오래 은거했던 선녀굴...결혼하고 남편과 지낸 시간은 불과 서너달..나머지 20대 불같은 청춘을 거의 이곳 선녀굴에서 지내면서 사람도 변하고 사상도 변하여 모든것이 짖밟혀버린 한 사람의 기구한 운명인 선녀굴~~~내용을 접하니 마음이 우울해집니다.(펀글)

# 솔봉-이곳으로 목적지가 변경되면서 바로 인근에서 못가서 아쉬움이 남는다. 또 언젠가 갈 날이 있을지도~~~몰따.

# 엄청 큰 소나무 보호수- 암벽위에 엄청 큰 소나무(수령 400여년)가 아랫마을을 호위하고 있는듯 말없이 지키고 있다.

# 날머리-지리산 힐링마을이자 지리산 둘레길 일부구간에 다다르면서 산길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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