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16. 10:17ㆍ해외산&여행
◇◇◇◇中國 泰山(1,545m) ◇◇◇◇
양사언 泰山雖高是亦山 (태산수고시역산) 登登不已有何難 (등등불이유하난) 世人不肯勞身力 (세인불긍노신력) 只道山高不可攀 (지도산고불가반)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 만은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
양사언(楊士彦, 1517년 ~ 1584년)은 조선의 문신이며 서예가다. 안평대군, 김구, 한호와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이며, 호는 봉래, 봉래산인이고, 봉래시집(蓬萊詩集)이 있다. 산동성의 태산(1545m)은 안휘성의 황산,복건성의 무이산,강서성의 노산,사천성의 아미산과 함께 중국이 자랑하는 “5대명산”의 하나입니다.
또한 동악인 태산은 서악 화산(2,160m/협서성),남악 형산(1512m/호남성),북악 향산(2017m/산서성), 중악 숭산(1440m/하남성)과 함께 “5대 악산(岳山)에 포함된 5대 악산 중에서도 태산의 중국의 대표적인 성산(聖山)태산은 “오악지장(五岳之長)또는 오악독존(五岳獨尊)이라 불릴 만큼 천하제일의 명산으로 태산 등산이 아니라 ‘등천’이다. 하늘에 오르는 일. 태산(泰山) 등정을 현지인들은 이렇게 일컫는다. 진시황 이후 72명의 중국 황제들이 태산의 정상인 천주봉(天柱峰)에 올라 옥황대제를 모신 옥황정(玉皇頂)에서 하늘에 제를 올렸다. 이들은 한 해의 업적과 잘못한 일을 낱낱이 고하고 다음해 할 일을 허락받았다. 동악, 태악, 대종 등으로도 불리다가 춘추시대(BC 722∼BC 481)부터 태산이란 이름으로 정착했다. 만물이 생성되는 동쪽에 자리하며 가장 강한 기운을 뿜어내 신성한 산으로 여겨져 왔다.
#1 제27회 태산국제 등반대회 주차장에서 출발 남천문을 거쳐 정문 주차장까징 간다.
#2 우리가 올라가야할 龍脊 기암을 뒤에 두고~저 까마득한 산 8보능선을 넘어가야한다.
#3 저멀리 보이던 龍脊에서 옆 경사로가 크디큰 암벽 사면
#4 대천령을 뒤에 두고
#5 후석장- 정상근처에서
#6 장인봉--커다란 표시석이 힘에 지친 산꾼을 맞이한다.
#7 태산 정상(1,545m)인 옥황정
#8 옥황정 또 다른곳의 비석에서
#9 한무제가 세웠다는 무자비. 태산의 장엄한 풍광에 한 글자도 적지 못했다는 말이 전한다. 글자 한자 없는 비석도 있다.(좌측) 글고 보니 북경 명3릉에도 글자 없는 비석이 있었던 것 같다.
#10 공자소천하경 웅치 천동
#11 공복석-정상에서 사변으로 누워져 있는 자연석인데 위에서 보면 멀리 조망이 볼 수가 있다.
#12 대관봉이라고도 부르는 석각마애비로 비신에는 명문이 가득 음각되어 있으며 그 글귀에 금분을 붙여 놓았다. 많은 글귀 중 당나라 현종의 "기태신명"이 제1유명하다 한 다. 중국 황제들이 천하를 통일한 후 이곳 태산에서 천하가 평정되었음을 알리는 봉선의식을 거행하고 여기에다 글귀를 남겼나 보다 .
#13 오악 진형산 정상- 넓은광장 중간에 우두커니 서 있는 기념비인데 당췌 무신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다.
#14 天街부근-정문으로 내려가면서 옥황정을 뒤로하고
#15 남천문 계단-윗방향(대부분은 이쪽으로 진입하지만 우리는 하산)
#16 남천문 계단-아랫방향(우리가 내려가야할 방향)
#17 태산 표지석-원래는 이쪽으로 올라서 남천문 옥황정으로 오르지만 우린 뒷편에서 앞쪽으로 종주산행을 하였다.근데 무슨 계단이 그렇게 많은지,,헤아려보질 않았지만 그 사람 말에 의하면 9천여개가 된다는데 그보다 더 많을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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