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28. 09:55ㆍ역사속의 오늘
경술국치(庚戌國恥)·일제병탄(日帝兵灘)
0. 경술국치:1910.8.29.(올해 108년차)
일제의 한국 침략은 1904년 러일전쟁의 승리를 계기로 본격화했다. 일제는 강압적인 무력을 앞세워 1904년 2월 한일의정서, 그해 8월 한일외국인고문용빙에 관한 협정서(제1차 한일협약), 1905년 11월 을사늑약, 1907년 7월 한일신협약(정미칠조약)을 차례로 체결하여 한국를 식민지화하기 위한 조치를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그외에도 군대해산과 신문지법·보안법 등을 제정하여 일제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시키려 했다.
또한 1909년 7월 한국의 사법·감옥 사무을 일본 정부에 위탁하는 내용의 기유각서(己酉覺書)를 체결해 한국민의 저항을 제도적으로 막고자 했으며, 극비리에 '한국병합 실행에 관한 방침'을 각의에서 통과시켜 조만간 한국이 식민지화가 될 것임을 예시했다. 같은 해 9월 남한대토벌을 감행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난 정미의병의 항전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한편 1910년 3월 토지조사국을 설치하여 근대화란 미명하에 한국토지의 약탈을 준비했다.
1910년 5월 30일 일본 육군대신 데라우치[寺內正毅]가 3대 통감(統監)에 취임하면서 한일합병은 급속도로 추진되기 시작했다.그해 6월 30일 한국경찰제의 폐지를 결정하고, 일본헌병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헌병경찰제를 수립했다. 7월 12일 일본정부 각의에서 한국에서는 일본헌법이 아닌 초법적인 조치에 의해 통치할 것이며, 총독이 덴노 직속으로 전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7월부터 한국 내에서 모든 옥내외 집회가 금지되었으며, 신문·잡지가 엄중한 검열을 받는 등, 한국은 사실상 계엄상태에 들어갔다. 8월 16일 데라우치 통감은 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에게 합병조약안을 통보하고 밀모를 거듭했다. 그 결과 8월 18일 한국정부 각의에서는 합병조약안이 통과되었고,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 사이에 합병조약이 조인되었다.
조약은 전문 8조로 구성되었는데, 조약문에서는 우선 한국에 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또는 영구히 일본 덴노에게 양도한다는 것을 명백히 규정했다. 일제는 합병에 대한 한국민의 저항을 우려하여 조약조인 후에도 그 사실을 한동안 비밀에 붙였으며, 29일에 이르러서야 조인사실을 발표했다. 그리하여 통감부가 조선총독부로 대치되고, 데라우치가 초대 총독에 부임했다.
이로써 한국은 조선왕조 건국 27대 519년 만에, 대한제국이 성립된 지 18년 만에 합병의 형식으로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일제강점기(36년)-해방(1945.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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