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25. 18:23ㆍ역사속의 오늘
1966.6.25.-김기수 세계 챔피언 등극
1966.6.25. 밤 10시20분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이 탄생했다.
이날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주니어 미들급 경기에서 김기수는
이탈리아 출신의 숙적 니노 벤베누티를 맞아 2대1 판정승을 거두고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김기수는 6년 전 로마 올림픽에서 아마 전적 88전 중 유일한 1패를 안겨준 벤베누티에게
멋지게 설욕했다. 승리를 확인한 김기수는 귀빈석에 있던 박정희 대통령에게 달려갔고
대통령은 손수 챔피언 벨트를 채워줬다. 함흥에서 태어난 김기수는 1.4후퇴때 월남한 가난한 소년이었다. 성북고 2학년이던 1958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 출전에 월터급
금메달을 따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1965년엔 일본 가이즈 후미오를 KO로 물리치고
동양태평양 미들급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고,이후 1년만에 세계 정상의 자리까지 꿰찼다. 그의 성공기는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줬다.
주)김기수(1938년 9월 ~ 1997년 6월 10일)
전 대한민국의 권투선수로 한국인 최초의 WBA, WBC 세계 챔피언.
1938년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태어났다. 1951년 1.4 후퇴 당시 월남하였다. 이후 전라남도 여수시에 정착한 그는 1954년 여수 여항중학교 김기봉 교사의 호의로 학교에 들어가 육상부 단거리에서 활약하다 권투로 전향했다. 이후 서울 성북고등학교 복싱부에 들어갔다.
1958 도쿄 아시안 게임에서 웰터급 금메달을 딴 뒤 1961년에 프로로 전향, 1966년 장충체육관에서 이탈리아 출신의 주니어 미들급 세계챔피언 니노 벤베누티[1]를 상대로 15회 판정승을 따내 한국인 최초로 복싱 세계챔피언 자리에 등극했다. 그 시절 세계 챔피언을 한국으로 불러들여 타이틀 매치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터, 한국의 국민소득이 200달러 수준이었던 그 당시 벤베누티가 요구한 대전료는 무려 5만 5천 달러선으로, 경기를 성사시키기 위해 정부에서 지급 보증을 나설 정도였다. 이후의 전적이 홈에서는 모두 이기고 원정에서는 모두 진 것 같다면 눈의 착각 사실 산드로 마징기, 미나미 히사오 등 동시대에 김기수와 경쟁을 벌이던 선수들의 타이틀 매치 전적을 봐도 판정까지 간 경우에는 사정이 비슷하다(...). 그만큼 원정경기가 굉장한 부담이었다. 21세기에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1966년 12월 17일에는 미국의 스탠 해링턴을 장충체육관으로 불러들여 15회 판정승으로 1차 방어에 성공한다. 이듬해 6월 3일에는 다시 한 번 미국의 프레디 리틀을 동대문야구장으로 불러들여 다운을 당하는 등 고전 끝에 다소 논란이 있었던 스플릿 디시전 판정승으로 2차 방어에 성공한다. 하지만 결국 1968년 5월 26일 이탈리아 밀란의 산 시로에서 산드로 마징기와 가진 원정 방어전에서는 역으로 스플릿 디시전으로 판정패하며 타이틀을 상실한다. 이후 아직 보유중이던 동양 태평양 (OPBF) 미들급 타이틀의 방어에 나섰지만, 오사카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미나미 히사오에게 판정패해서 동양 챔피언 자리마저 내어주었다. 김기수의 프로 복싱 패전은 이렇게 딱 2회. 1969년 삼일절에 다시 미나미 히사오를 홈으로 불러들여 판정승으로 동양 타이틀을 되찾아온 뒤 미련없이 은퇴한다. 프로복싱 총 전적은 33승 (17KO) 2무 2패. 은퇴 후에는 명동에 다방 '챔피언'을 차렸고 제주도에서 백화점을 경영할 정도로 사업에도 성공했으나, 1997년 간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60세.
해태 타이거즈의 레전드 김봉연의 동서이자 이상윤의 장인어른이었다. 해태 타이거즈의 김응용 감독을 광주에 안착시켜준 인물로 같은 실향민 출신으로서 공통분모가 많아 함께 어울려 술을 자주 마셨다. 당시 감독 초년생이자 타향살이하던 김응용의 유일한 낙이 같은 광주에 살던 김기수와 술 한잔 걸치는 것이였다. 그러나 이상윤의 장인이였기에 선수단에서 "누군(이상윤) 장인 잘 둬서 맨날 주전이네.."라는 소문이 돌자 김응용은 오랜 친구와의 만남을 끊어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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