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14. 10:01ㆍ섬(島)나들이
>>>통영 연화도+우도 나들이<<<
0. 일시: 2019.7.13.(토) 12:08 ~16:00(3시간 52분)
0. 코스: 연화도+반하도+우도
0. 거리: 8.5km정도
15여 전 여름날 연화봉에 오르면서 많은 땀을 쏟았던 연화봉. 같이 한 아들놈은 벌써 20대를 넘겼다. 그러고 보니 세월이 많이 지났다. 정상에서 바라봤던 용머리해안과 주변 섬들. 그 당신 반하도랑 우도는 갈 수가 없었지만 2018.6.19.개통된 현수교와 트러스트교가 설치되어 이젠 수월하게 건너갈 수가 있다. 세월이 지나니 주변 시설물도 많이 변화되어 차량이 다닐수 있는 신작로도 개설되었고 곳곳마다 상인들이 커피 등 장사를 하는 모습이 강산이 많이 변했다는 걸 실감할 수가 있었다. 출발부터 비는 부슬부슬 트레킹하는 내내 성가시게 내리고...덕분에 주변 날씨는 시원하기만한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한우 2마리가 소시적의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통영 욕지면 연화도 연화봉 아래에 위치한 연화사는 1988년 8월에 쌍계사 조실스님이신 오고산 스님께서 창건한 사찰로써 약 4,297m²(1,300여 평)의 대지 위에 연건평 396.69m²(120평)의 사찰로 대웅전, 3각9층석탑, 요사채 2동, 진신사리비, 연화사창건비 등이 있으며 지금부터 500여년 전 연산군의 억불 정책으로 한양에서 이곳 섬으로 피신하여온 스님이 부처님 대신으로 전래석(둥근돌)을 모셔놓고 예불을 올리며 수행하다가 깨쳐서 도인이 되셨다. 도인께서 돌아가실 때 유언으로 '나를 바다에 수장시켜 달라'고 고하여 제자들과 섬 주민들이 스님을 바다에 수장하니 그곳에서 커다란 연못이 떠올라와 승천하였다고 하여 그 때부터 섬이름을 연화도라고 하였고 돌아가신 스님도 연꽃도인이라 하였다. 그후 사명대사께서 이 섬으로 들어와서 연화도인 토굴터 및에 움막을 지으시고 대 해탈의 원을 세우고서 정진하던 중 마침내 큰 깨달음을 이루셨다. 얼마 후 사명대사를 찾아 연화도에 들어온 스님의 속가누님 등 여인 세분을 출가시켰으니 보원, 보련, 보월이라 했다. 임진년에 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받으니 사명 대사는 육지에서 승군을 일으켜 일본군을 막았으며 바다에서는 보운, 보련, 보월 세분 비구니 스님이 이순신장군과 거북선을 건조하여 일본근을 대적하니 승승장구 하였다. 이순신 장군께서 이 세분 스님을 일러서 자운대사라고 하였으며 거북선 도면을 이 세분 스님들이 전수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곳 연화도에는 지금도 연화 도인이 손가락으로 글을 쓰셨다는 비석과 전래석이 연화봉 산신각에 보존되어 있으며 연화도인과 사명대사와 세 분 비구니스님의 토굴터가 있다. 지금도 계속 관음전(보덕암) 불사가 계속되고 있으니 불사가 마무리되면 남해보리암에 버금가는 사찰 면모를 이루게 되며 통영팔경으로 그 이름이 난 연화도에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 더해지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시 스님들이 지은 4편과 富吉財(부유함과 길함.재물까지 안겨준다) 바위도 전해지고 있다.
# 연화도 연화봉(215.1m)-연화봉에 오르는 저멀리 용머리 바위랑 주변 섬들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1 통영항 여객터미널 입구
#2 연화도로 이동 중 갑판에서
#3 연화도 入島-환상의 섬 연화도와 연화도 설명 및 사명대사. 넷 스님들의 시
#4 연화봉 오름길에서 본 현수교(230m우측)과 트러스트교(79m좌측) 그리고 반하도,우도
(아래 사진 #22 참고)
#5 한가롭게 풀을 뜯는 한우-산꾼을 경계하는 듯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다.
#6 아미타 대불-먼 남쪽으로 응시하고~ 연화도 어느곳에서도 조망이 가능한 대불
#7 연화봉 정상(215.1m)과 용머리 해안 그리고 雲上亭
#8 사명대사 연화토굴 입구
#9 水菊-보덕암과 연화사를 잇는 도로 양쪽에 많이 피어 있는 수국은 6~7월경에 피는 꽃은 보통 초록색이지만 분홍색이나 하늘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열매는 잘 맺지 않으며, 원산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중국 또는 일본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전세계로 퍼져 수많은 품종들이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10 보덕암
#11 엉겅퀴 꽃- 주변 등산로에 엉겅퀴가 많이 보인다.
#12 용머리 해안을 뒤로하고 한장을 남겼는데 넘 흐리다.
#13 산나리꽃과 바다
#14 출렁다리 주변-촛대바위랑 암릉
#15 출렁다리-주변 절벽 단애를 연결한 다리로 절벽 해안구가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고 있다.
#16 출렁다리 주변 절벽 단애 위
#17 보덕암과 연화사 입구석
#18 연화장 세계문
#19 낙가산 연화사-욕지면 연화도 연화봉 아래에 위치한 연화사는 1988년 8월에 쌍계사 조실스님이신 오고산 스님께서 창건한 사찰로써 약 4,297m²(1,300여 평)의 대지 위에 연건평 396.69m²(120평)의 사찰로 대웅전, 3각9층석탑, 요사채 2동, 진신사리비, 연화사창건비 등이 있으며 지금부터 500여년 전 연산군의 억불 정책으로 한양에서 이곳 섬으로 피신하여온 스님이 부처님 대신으로 전래석(둥근돌)을 모셔놓고 예불을 올리며 수행하다가 깨쳐서 도인이 되셨다. 도인께서 돌아가실 때 유언으로 '나를 바다에 수장시켜 달라'고 고하여 제자들과 섬 주민들이 스님을 바다에 수장하니 그곳에서 커다란 연못이 떠올라와 승천하였다고 하여 그 때부터 섬이름을 연화도라고 하였고 돌아가신 스님도 연꽃도인이라 하였다. 그후 사명대사께서 이 섬으로 들어와서 연화도인 토굴터 및에 움막을 지으시고 대 해탈의 원을 세우고서 정진하던 중 마침내 큰 깨달음을 이루셨다. 얼마 후 사명대사를 찾아 연화도에 들어온 스님의 속가누님 등 여인 세분을 출가시켰으니 보원, 보련, 보월이라 했다. 임진년에 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받으니 사명 대사는 육지에서 승군을 일으켜 일본군을 막았으며 바다에서는 보운, 보련, 보월 세분 비구니 스님이 이순신장군과 거북선을 건조하여 일본근을 대적하니 승승장구 하였다. 이순신 장군께서 이 세분 스님을 일러서 자운대사라고 하였으며 거북선 도면을 이 세분 스님들이 전수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곳 연화도에는 지금도 연화 도인이 손가락으로 글을 쓰셨다는 비석과 전래석이 연화봉 산신각에 보존되어 있으며 연화도인과 사명대사와 세 분 비구니스님의 토굴터가 있다. 지금도 계속 관음전(보덕암) 불사가 계속되고 있으니 불사가 마무리되면 남해보리암에 버금가는 사찰 면모를 이루게 되며 통영팔경으로 그 이름이 난 연화도에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 더해지라라고 생각한다.
# 20 살아있는 자연- 거미 한마리가 집을 짓고 먹이 사냥에 열중이다.
#21 연화사 입구 도로가 출렁이는 바다 파도처럼 그려저 있다.
#22 현수교(230m)- 현수교는 연화도와 반하도를 연결하는 다리로 아래엔 대형 선박이 지나갈 수 있도록 높이가 엄청 높으며 지나가는데 좌우로 많이 흔들리도록 설계되었는지 꼭 한잔 먹고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어른어른하다. 주탑 중간에서는 연화봉 정상의 아티타불이 아른거리면서 보이기도한다.
#23 트러스트교(79m)-반하도와 우도를 연결하는 다리
'섬(島)나들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라산(성판악-백록담-관음사)해돋이 산행 (0) | 2020.11.11 |
---|---|
옹도와 간월암 (0) | 2019.09.01 |
사랑도 오르기 (0) | 2019.04.21 |
욕지도 둘러보기 (0) | 2018.10.28 |
제주 추자도 둘러보기 (0) | 2018.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