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11. 18:42ㆍ섬(島)나들이
如 犀 角 獨 步 行
>>>한라산 해돋이 산행<<<
0. 일시: 2020. 11. 11.(수) 03:30 ~ 11:37(8시간 7분, 휴식: 1.5시간) * 필자,이*성,이*희
0. 코스: 성판악-진달래대피소-정상-백록담-삼각봉휴게소-관음사주차장
0. 거리: 18km
한라산 해돋이 산행을 위하여 전날 19시 30분 비행기에 오른다. 비행기 밖으로 보이는 야경은 오색찬란하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제주공항에 도착 곧장 시내버스를 타고 서귀포 숙영지에 도착하니 밤 11시다. 주변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간단하게 씻고 내일 산행을 위해 일찍 잠을 잔다. 어렴풋한 인기척에 눈을 뜨니 새벽2시를 조금 넘기고 있다. 대충 준비를 해서 콜한 차를 타고 성판악에 다다른다. 주변은 넘 캄캄하다. 주변은 쥐 죽은듯이 조용하지만 우린 산길을 위해 재촉한다. 이른 기상인지라 머리가 많이 어지럽고 아프다. 정상까지 가면서 애를 많이 먹었지만 한라산 해돋이를 보니 아픈게 싹 없어지는 느낌이다. 주변을 돌아보면서 백록담도 즐겨보고 관음사 방향으로 내려오니 많은 산꾼들이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9시 조금 넘었지 싶다. 오르는 산꾼들은 우리가 내려오니 한목소리가 정상을 벌써 다녀왔는냐는 질문이다. 내려오다 쉬면서 올라오는 일행에게 켄맥1,초코렛2개를 드리니 고맙다며 방금 따온 귤이라면서 맛있다면 먹으라고 준다. 맛나게 먹고 관음사까지 지루한 돌길을 하염없이 내려오면서 해돋이 산행은 마무리 한다. 아무튼 갑자기 준비해서 오게된 한라산 해돋이 산길 재미나고 즐거웠던 하루일정인것 같다. 나중엔 또 상고대 산행길과 제주도 오름산길을 계획 해 본다.
# 한라산 정상(1,950m)- 참 오랫만에 오른다. 한라산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남쪽에선 제일 높은 봉우리이다. 정상에 지름이 500m정도인 화구호인 백록담은 고려시대 1002년과 1007년에 분화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었으며, 조선시대 1455년과 1670년에는 지진피해가 있었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이른 아침 해가 바다위로 얼굴을 내미는 장관을 보니 아름다운 자연의 멋을 느끼게 만든다. 공기가 넘 청명하다.
#1 초입지 성판악을 지난 지점- 새벽3시 40분을 가르키고 있지만 넘 어둡다.
#2 지속 어두음으로 사진을 찍을 쯔음 해돋이가 시작된다.
#3 서귀포 앞바다에서 해가 솟아나올 준비를 하는듯 주변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4 한라산 정상을 배경삼아 해돋이를 바라보면서 흔적을 남긴다.
#5 해돋이- 한라산은 많이 올랐지만 오늘처럼 해돋이 산길은 처음이라 엄청 기대를 했는데 날씨가 좋아서 제대로 된 해돋이를 보게됨을 천우신조들에게 감사를 전해본다.
#6 한라산 정상(1950m)-한라산의 백록담은 170만년전 분출을 시작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된게 약4~5천년 전이라고하며, 이에 백두산은 2840만년전에 분출을 시작 현재의 거대한 몸체를 형성한것은 61만~8만7천년 사이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백두산 천지는 삼국시대인 573년과 고려시대1215년 사이에 화산이 분출하면서 생겼다고 전해지고있어 백록담이 먼저 만들어졌다고할수가 있다.
#7 백록담과 주변 암릉들- 지금 물은 하나도 없지만 고라니 몇 마리가 한가롭게 자연을 즐기는것 같아서 유유자적해보인다. 가물어서 인지 물은 하나도 없이 모래만 보일뿐이다.
#8 백록담 구경
#9 고사되고 있는 주목-관음사 방향으로 하산하는 중에 말라 죽어가는 주목나무가 많아 안타까움이 생긴다. 얼마전에 TV에서도 한번 나온것 같다. 기온이 상승한것도 하나의 원인일까?
#10 용진각 대피소- 없어진가 한참이 지났어인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진만이 과거의 흔적을 재현하는것같다.
#11 용진각 현수교
#12 삼각봉-삼각봉휴게소 뒷편에 있는 봉우리이지만 송곳같이 뾰족하다.
#13 숯 가마터
#14 구린굴-구린굴은 한라산 북쪽자락 탐라계곡에 있는 총 연장 길이 442m 폭 3m인 자연굴
#15 관음사 탐방지원센터- 18키 돌 등산로로 지원센터를 나오면서 한라산 해돋이 산행을 마무리하고 곧장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한다.
#16 부종휴님 동상-일본 강점기 때 진해에 군항을 건설하면서 도시 미화를 위해 심기 시작한 왕벚나무는 해방 후 일본 식민지 잔재로 여겨져 심하게 훼손되기도 했다.일본의 상징처럼 돼버린 왕벚나무는 자생지가 일본으로 알려졌지만 1962년 박만규∙부종유 두 식물학자에 의해 제주도가 왕벚나무의 자생지로 밝혀졌다.현재 제주 신례리(천연기념물 제159호)와 봉개동(천연기념물 제156호), 해남 대둔산(천연기념물 173호)은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자생지를 보호하고 있다.또 1908년 프랑스인 타케(Taquet) 신부가 한라산(해발 600m)에서 채집한 표본을 1912년 독일 베를린대학교 쾨네(Koehne) 박사가 확인해 제주도가 왕벚나무 자생지로 알려졌다는 기록이 있다. 왕벚나무 자생지가 국내로 밝혀지면서 진해는 다시 화려한 벚꽃 도시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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