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 08:29ㆍ대한민국 山/경상도
如 犀 角 獨 步 行
>>>주흘산 돌아보기<<<
0. 일시: 2023. 7. 1.(토) 09:22~14:15 (4시간53분) * 단사모//주흘산 단독
0. 코스: 1주차장-1관문-여궁폭포-혜국사-샘터-주흘산-영봉-꽃밭서들-2관문-1주차장
0. 거리: 12.1km
오늘이 삼실 제대한지가 꼭 1년이 넘어가는 시간이다. 여차저차 시간이 역사속으로 사라져간다. 주흘산은 2008년에 오르고 거의 15년만에 오른다. 2021년 가을녘 조령산에서 마주한 주흘산을 언제적에나 오를까하고 마음속에서 그림만 그리던 산이었는데 오늘에야 올라본다. 같이한 산 대원들은 조령산과 신선암봉으로 향하고자 이화령에 하차하고 난 문경새재 주차장으로 이동해서 혼자 걷는다. 주차장을 출발 1관문에서 우틀하면서 산행을 시작된다. 어제께 비가 온 탓인지 계곡은 온통 물로 가득하다. 물소리가 더위를 날라버리는 느낌이고 여궁폭포에 다다르니 물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체험할 수가 있었다. 혜국사를 지나 한참을 오르니 시원한 물이 나오는 대궐터주변 샘터가 나와 한잔을 들이킨다. 출발지점에서 정상까지 4.5km정도 거리인데도 넘 힘이 많이 들고 후덥지근한 날씨탓에 땀도 엄청 많이 배출시킨다. 정상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을땐 바람이 불어 넘 시원하기도한다. 영봉을 돌아 꽃밭서들로 내려서는 계곡 또한 물 천지라 물이 가득하다. 물길을 이리저리 건너기를 10여차례...그러다보니 산길을 비에 전부 떠내려가고 돌만 앙상하게 남아 있어 걷기가 넘 불편하다. 겨우 2관문 조곡교에 도착 트레일 마사토길로 또 3km를 신나게 내달리니 애마가 기다린다. 잠시 후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곡 의 시원한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이 기분은 누구도 알지 못하지 싶다. 흘렀던 땀방울을 한방에 씻어지는것 같다. 또 차를 타고 일행들이 하산하는 수옥폭포(괴산)쪽에서 이동하여 조우하면서 긴 산길을 마무리한다. 날씨가 넘 더워선지 아마도 땀은 한바가지는 산길에 뿌렸지 싶다. 휴~~~~~(여름산길은 넘 힘든다.)
# 주흘산 한바퀴 오늘의 흔적
#1 들머리-문경새재 아리랑비에서 흔적을 남기고 바로 이동하면서 산행은 시작된다.(아래: 박물관)
#2 땡볕이 내리쬐는 문경새재 1관문인 주흘관을 뒤에다 두고~~
#3 산중턱에서 3거리 이정표-출발후 1.0km지난 지점
#4 바위를 부수면서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줄기 소리가 넘 커서 소음을 유발시키지만 그래도 시원한게 넘 좋다.
#5 여궁폭포-혜국사(惠國寺)는 주흘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문경 새재의 3관문을 품고 있는 주흘산은 문경의 진산(鎭山)으로 멀리서 보아도 절로 힘이 넘치고 험한 협곡끼리 서로 어우러져 그 비경이 매우 뛰어나다. 칠선녀가 구름을 타고와 여기서 목욕을 했다는 곳으로, 밑에서 쳐다보면 그 형상이 마치 여인의 하반신과 같다 하여 여궁 또는 여심폭포라 불려지고 있다.마을 사람들은 파랑소라고도 부른다.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으나, 실타래 한 개가 다 들어갈 정도로 물이 깊다고 전해진다. 여궁폭포는 용추와 연결되어 있어서 실타래를 넣으면 용추로 나온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수해가 나서 막혔다고 한다. 높이 20m의 장엄한 폭포는 수정같이 맑은 물과 노송의 멋, 기암절벽의 풍치 등과 조화를 이루어 경관이 수려하다.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가운데 가장 높고 험한 고개였다고 한다.억새풀이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우리재 사이, 새鳥로 된 고개라는 뜻으로 새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 이곳에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등 3개의 관문을 설치하고 국방의 요새로 삼았던 문경새재는 영남과 한양을 잇는 관문인 동시에 희망의 땅이었다. 조선 태종 때 열린 새재로 인해 귀한 물산이 이 고갯길로 오고갔고, 무수한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급제를 꿈꾸며 이 길로 한양으로 올랐다. 그 옛날 새재를 오고갔던 많은 사람들이 혜국사에 들러 무엇을 기원했을까? 위험을 무릅쓰고 험한 산길을 넘어야 했던 사람들에게 혜국사는 휴식처이자 기도처로 부처님 앞에서 너나없이 편안하였던 안심처였을 것이다.(펀글)
#6 혜국사-혜국사는 신라 846년(문성왕 8) 보조 체징普照體澄 (804~880) 스님이 창건했는데, 당시의 이름은 법흥사(法興寺)였다. 그뒤 고려 말 공민왕(재위1351∼1374)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 절에 피신했던 일이 있었다. 공민왕은 오래지 않아 개성으로 돌아갔고, 당시 절의 노고를 치하하며 왕이 재물을 내려주었다. 절에서는 이 재물로 가람을 중수하고 국왕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혜국사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1867년(고종 4)에 작성한 「혜국사중건기」에 전한다. 또 조선 세조 임금이 역시 여기에 머물었다고 하는데,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이 절의 승려들이 크게 활약하였고 왜란 당시에 청허(淸虛), 송운(松雲),·기허(騎虛) 대사 등이 이 절에 머물며 승병을 지도했다고 한다. 이후 쇠락하여 안적암에 속하였다가 1927년에 중건되었다. 「혜국사중건기」에 의하면 안적암은 혜국사의 속암(屬庵)으로 되어 있다. 동국지도(海東地圖)에 따르면(1750년 초,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1750년대에 혜국사(惠國寺)에 승려가 22명이 있었고 보제사(普濟寺)에 9명, 용화사(龍華寺)에 6명, 은선암(隱善菴)에 4명, 안적암(安寂菴)에 7명, 도합 48명이 있었다. 승려 수로 보면 혜국사가 가장 많고 용화사는 선방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대웅전과 선방은 1987년에 중건되었다.(펀글)
# 대웅전옆에서 대각선을 형성하면서 대웅전을 지키고 있나? 많이 기울어져 있어도 쓰러지지 않는게 신기!!!!
#7 주흘산(1,076m)정상- 넘 오랫만에 올라본다. 표지석이 조금 변경된듯하다. 주변이 안개가 많아서 산아래 출발지가 잘 보이질 않는다. 올라서니 벌써 고추잠자리가 엄청 많다.
#8 주흘산 영봉(1,106m)-정상이지만 주변 조망은 없이 정상석이 외롭게 자리를 잡아주고 있다.
#9 하산길의 너덜바위지대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돌탑이 가득하다.
#10 산수국꽃- 꽃은 그늘진곳에 자라고 있어도 아름답고 시원하고 청순함도 보여준다.
#11 제2관문앞 주흘산 안내판과 이정표
#12 조곡폭포- 산 어디에서 내려오던지간에 폭포수는 엄청 많게 뛰어내리는것 같다.
#13 용추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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